'MB'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6/02 촛불을 밝힌 서울의 풍경 (12)
  2. 2008/05/18 미국산 쇠고기와 정부의 실책 (6)
  3. 2008/05/15 MB님의 국민사랑 2 (4)
  4. 2008/04/15 MB식 선진국 따라잡기
어제는 서울에 올라간 김에 저녁에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 참가했다. 미국 가 있는 동안 효순/미순 추모회, 탄핵, 김선일 사건 등을 모두 바다 건너에서 지켜보기만 해야했던 내게,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3월 20일에 있었던 가장 크고 조금은 과격했던 반전 시위 이전에 수차례의 반전시위가 있었음) 시카고에서 펼쳐진 반전 거리 시위 이래로 처음으로 참가한 대규모 시위였다.


1.

내가 미국과 한국에서 경험한 두번의 집회는 모두 평화적인 가두행진이란 점에서는 같았지만, 경찰의 대응법은 크게 달랐다. 지금의 어렴풋한 기억으로 시위는 미시간 애비뉴와 와커 드라이브가 만나는 곳에서 시작해서 시카고 다운타운을 크게 한바퀴 돌고 끝났다. 시위 출발지에 도착해보니 시위대의 동선은 이미 결정돼 있었고, 이에 대한 경찰과의 사전 조율이 있었는지, 시위가 지나는 곳은 차량 통제를 이미 해둔 상태였다. 동선을 따라 좌우로 경찰이 간헐적으로 눈에 띄긴 했지만 이는 운동 경기장이나 콘서트장 등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안전을 위해 약간의 경찰을 배치해두는 이상은 아니었다.

반면에 서울의 경찰은 괴상한 집시법--정확한 집시법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 찾아보기 조금 귀찮기도 하고--을 핑계로 불법 시위 단속이란 핑계로 닭장차와 전경을 배치, 거리 곳곳, 특히 청와대로 향하는 길을 막아놓고 시위대를 사냥감 몰 듯 살살 몰아서 가둬둘 생각이었던 듯하다. 그러다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길 바란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물론 그게 안 되자 살수차와 특공대가 동원되는 엽기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이쯤에서 '근조, 대한민국' 한번.


2.

2003년의 시위에 절박함은 없었다. 부시 정부에 대한 불신과 염증이 있었지만, 당시에 정부가 행사하는 폭력의 대상은 지구 반대편에 있었다. 그 전쟁에 반대하던 우리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다'는 책임감을 느꼈을지언정 이게 정말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라는, 이 전쟁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없었다. '나는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지는 않았다'는 자기만족 따위를 느끼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시위에 두번 다시 나갈 수 없었다.

어제의 시위는, 길거리에 자리 깔고 앉아 떡, 김밥, 맥주를 까먹으며 소풍 나온 듯한 사람들, 유모차를 끌고 미는 젊은 부부들, 십대의 반항기를 분출할 더없이 좋은 출구를 찾은 듯 신나 보이던 교복 차림의 학생들, 그리고 이번 시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예비군 등 다양한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웃고 즐기느며 거리를 활보하는 여유로운 모습 속에서도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이들에게는, 그리고 내게는 이명박의 백기투항 내지는 퇴진을 향한 진심어린 염원이 있었다.


3.

이쯤에서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는 간단한 사실은 날 항상 걱정스럽게 만든다. 이는 만명이 있으면 만가지 의견이 있는 게 정상이라는 내 평소 지론과 맞물려, 나로 하여금 항상 여론의 왜곡에 대한 불안(?)을 갖게 만든다. 뭐, 아주 간단한 예로 내 주변에는 한나라당 지지자만큼이나 민노당이나 진보신당 지자자들이 많지만, 국민 여론의 현실은 이런 내 주변 상황과 전혀 다르다. 따라서 나와 정치적 목적을 공유하는 흐름을 읽게 되더라도 이게 전체 여론의 어느 정도를 반영하느냐의 의문을 달고 살 수밖에 없다. 물론 어제처럼 수만명의 사람들이 한가지 목적을 위해 운집하기 위해서는 (경찰 추산 4만, 집회 주최측 추산 10만이라는데 내가 봤을 땐 5만명에서 7만명 사이였을 것 같다. 시카고 마라톤시 출발점에 3만 5천명 정도가 운집하는데, 그 두배를 넘을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집회 추최측 또한 경찰측이 거짓말을 하는 것과 똑같은 동기로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불신을 갖고 있다. 내가 항상 객관적이지 않듯이, 나와 정치적 목적이 같은 사람들이 매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과 정치적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그보다 수십-수백배 많아야 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의 의중을 헤아리는 일은 항상 조심스럽다.

이런 나의 불안을 어제 저녁 택시 기사 아저씨와 다른 사람들도 아닌 내 가족들을 통해 환기해야만했다. 철저하게 체제순응적인 어머니는 내가 광화문 앞에 있단 사실을 알고는 성을 내며 얼른 귀가 명령(?)을 내렸다. 생까고 버텨볼까 하다가 계속되는 귀가 강요 전화(?)에 결국은 경복궁 앞에서 전경과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를 뒤로 하고 시위장을 떠났다. 자정을 넘어 시위가 슬슬 과격해지는 조짐을 보이던, 진짜 사람 머릿수 하나라도 더 보태야할 타이밍이었던 터라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렇게 광화문 앞에서 택시를 잡아탔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는 '집회도 아니고, 데모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거리들이냐'며 무척이나 짜증을 내셨다. 그렇게 고모집에 돌아가서 만난 내 가족들 중 그 누구도 내편이 아니었다. 특히나 전경 출신인 사촌동생은 쌍욕까지 섞어가며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쏟아냈고, 울 엄마나 고모는 그런 사촌동생의 불만에 적극 동조하셨다.

엄마나 고모, 사촌동생 중 그 누구도 지금 이명박이 잘 하고 있다고 여기진 않으신다. 아마도 택시 기사 아저씨도 이명박이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으시리라. 그렇지만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들을 보호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 누군가는 정부라고 믿고 있다, 정부에 '반항'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집회에 안 나가고 가만히 있었으면 왜 살수차를 뿌리고, 왜 연행하겠냐는 거다.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를 체제 전복을 꿈꾸는 데모꾼들의 사치품 정도로 믿는 이들에 맞서 나는 무기력했다. (자유와 권리라는) 사회적 이상이 아무리 고매할지언정, (통제된 도로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택시를 몰거나, 전경 출신이라는, 혹은 전경의 고충을 모성애를 통해 경험하는) 개인의 체험을 넘어서는 사회적 이상을 갖기란 그렇게나 어려운 거다.


4.

이들의 모습위에 포개지는 지금 떠오르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명박이 자신의 하야 여부를 국민투표에 붙이자는 제안을 하는 것. 이렇게 될 경우, 사실 지금의 촛불 집회 세력이 분열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의 실망스러운 정책들로 국민들에게 불만이 쌓여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모두 이명박 퇴진을 원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중들보다는 아무래도 조금 치우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로는, 이명박의 강수에 움찔하며 그 자리에서 집회에서 이탈하는 세력이 조금 나올 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제로 국민투표를 한다면 그 준비한답시고 최소 2주는 걸릴 텐데, 그 사이에 집회를 계속 할 수도 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집회를 계속할 경우, 방금 언급한 두 세력이 '국민투표하기로 했으면 되지 왜 계속 저래?'라며 반정부 집회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될 수 있다는 거. 반면에 그 기간 동안 집회를 쉰다면 반정부 정서가 냉각될 수도 있다는 거. 물론 전제 조건 하나는 그 2주 가량 이명박이 납작 누워 자살골을 넣지 않아야겠지. 워낙에 무식한 양반이라 그 정도도 못참을지 모르긴 하지만, 참모진이 조금만 똘똘하다면 그 정돈 통제하겠지. 사실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생각하면 의외로 국민들 사이에서 '국정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 '아무리 무능해도 없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어'라는 감성적인 사고는 안타깝게도 전염성이 강하다. 대통령의 하야를 국민투표를 통해 할 경우, 그 정치적 책임이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그리하여 국민투표 결과 이명박을 붙여놓자는 결과가 나올 경우, '거봐라, 그렇게 반대하고 날뛰더니 결국 한줌밖에 안 되는 놈들이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냥 날 뛰는 바람에 괜히 쫄았다'라며, 앞으로 모든 정책을 강행할만한 강력한 핑계거리를 제공하게 된다는 거다. 그 이후로는 모든 국민적 반대가 소수의 날뜀으로 치부될 테니까... orz 정말 불도저를 보게 될 거다. 지금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 가장 강경한 주장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실질적으로 조정이 필요한 세부 정책 문제에 대한 물타기를 하는, 아주 고도의 정치적 움직임이다.

다행히도, 어쨌든 이 시나리오는 이명박 입장에서 위험 부담도 그만큼 크다.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하면 정말 쪽박. 이제 겨우 취임 100일에 좀 심한 강수이긴 하다. 그런데 앞으로 퇴진 압력이 정말 강력해지면, 바로 하야하는 대신에 국민투표를 제안할 가능성은 충분. 그때가면 밑져야 본전이니까.


5.

한때는 내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무게감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내 개인의 힘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서 개인의 힘은 아무리 크다해도 충분히 크지 않다. 대통령 조차도 결국은 저지경으로 코너에 몰리고 말았잖은가. 지식인이랍시고 펜을 아무리 휘갈겨도 그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경우는 없다.

4.19도, 6월 항쟁도 어느 강력한 개인의 의지나 필력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건 개개인이 자신의 미약한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각오하고도, 그 힘을 보탤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의 현실이 답답하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하는 거다.

4.19 때나 6월 항쟁 때 본인은 손가락 하나 까닥 안 하고도, 그 열매를 얻어먹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그런 경험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라는 생각을 키우게 만들었을 거다. 조금 패배주의적이기는 하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움직이기 싫다면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그것 또한 그들의 자유다. 그렇지만 그 작은 힘을 보탤 용기를 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만은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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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운동이 식을줄 모르는 가운데 그간의 간헐적 정부 똥침 놓는 발언에서 한발 더 나아가 왜 사태가 이 지경으로 치달았는지 짚어보자.


사건의 발단: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

뭐, 사건의 발단은 아주 간단하다. 한미 정상 회담을 위해 MB님께서 미국에 가 계시던 지난달 18일 조금은 급작스레 미국산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자, 그런데 뭐가 문제였을까?


정부의 실책 1: 국민성 vs 국민성

2MB 정부의 정책시행 방법의 가장 큰 특징은 논리성이 결여된 밀어부치기라는 거다. 2MB님께서 대운하 공약을 내세우면서 꼬박꼬박 하던 이야기는 '경부고속도로와 청계천을 보라'였다. 이 논거의 핵심은 여론보다 한발 앞서가는 정부의 선견지명이 국민/시민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엔 오류가 숨어있다. 20문항짜리 시험을 본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몇문제를 맞춰야 100점을 받을까? 뭐, 당연히 20문항을 다 맞춰야 한다. 1번부터 5번까지 문제를 풀고 보니 내가 다 아는 문제라고 해서 나머지는 풀지도 않고 '내가 푼 다섯 문제를 다 맞췄으니 이로부터 나머지 문제도 다 맞출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면서 100점을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어부친 정책 몇가지가 성공적이었다는 것과 여론의 반대에 부딪친 다른 정책들 또한 반드시 성공적일 것이라는 판단 사이에는 논리적 개연성이 없다. 그건 마치 20문항짜리 시험을 보면서 다섯문제만 풀고는 100점을 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각 사안에 따라 '여론이 왜 반대하는지, 그리고 그 반대가 왜 부당한지에 대한 꼼꼼한 검토후 그 반대 의견의 맹점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을 때에만 그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지 무조건 '전에도 내(혹은 박정희의) 말이 맞았으니 앞으로도 내 말은 다 맞다'고 우기면 곤란하다. 그런데 2MB님은 늘 이런 식으로 국민을 곤란하게 만드신다.

물론 이런 2MB님의 밀어부치기 정책은 흔히 말하는 냄비식 국민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월드컵, 노무현 탄핵, 황우석, 디워 그리고 이번 쇠고기 사태에서 나타나듯이 대한민국 여론의 관성은 솔직히 놀랍도록 작아서 아주 쉽게 일치단결했다가도 순식간에 흩어져버린다. 이런 국민성은 정책 입안자들의 실수에 쉽게 분노하지만 그만큼 용서 또한 빠르다는 특성이 있다.

정부측에서 기대한 바는 우리의 이런 국민성이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 개방시 약간의 반대 여론에 부딪치더라도 일단 쇠고기가 유통되기 시작하면 이 여론이 굉장히 쉽게 사그라질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오히려 '아니, 먹어보니 멀쩡한데 왜 호들갑들은 저렇게나 떨어대면서 반대했을까'라고 여론은 아주 빠르게 역전됐을 것이다. 광우병 잠복기가 10년이란 사실을 생각하면서 10년 후에나 판단할 인내심은 대한민국엔 어차피 별로 없으니까 말이다.

게다가--더러 편집증적인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도 없잖아 있지만--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전불감증을 갖고 있다. 자신에게 즉각적으로 위협적이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경우에 경계를 풀고 산다. 모든 종류의 위협에 대해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주 피로한 일이기 때문에 이것도 일종의 자기 방어 기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시작되면 쇠고기 소비가 급감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약간의 불신을 안은 채 투덜대더라도--쇠고기 소비는 점차 회복될 거고, 그와 동시에 광우병에 대한 걱정도 점차 사그라들 거다.

그런데 정부가 간과한 것 한가지는 우리 국민이 건강 문제에는 또 굉장히 민감하다는 것. 이 땅에 넘쳐나는, 몸에 좋다면 양잿물도 떠먹을 사람들에게 광우병이라는 정체 불명의 질병에 대한 공포가 초기에 빛의 속도로 번져나가 버렸다, 헉. 협상 타결부터 수입고시까지는 고작 20일, 그런데 그 사이에 일이 이렇게까지 번질 줄이야, 아차차!


정부의 실책 2: 정치적 문제엔 정치적 해법이

갑자기 8-90년대 영국 수준으로 광우병이 창궐하지 않는 한 지금 정도의 수입 조건만으로도 미국산 쇠고기가 갖가지 중국산 식료품보다는 안전하리라 본다. -_-,, 정부 입장에선 사실 그게 기분 나쁜 거다. 자기들 딴에는 늘상 해오던 뻘짓을 한 것 뿐인데 왜 이번엔 갑자기 자기들을 무능력자로 몰아붙이며 호들갑이냐는 거다. 뭐, 그 말도 맞다. 그래서 그들에겐 '괴담'과 '음모론'이 피어난다.

사실 머잖은 미래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현실화될 일이었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어라라, 어쩌다 이렇게 갑자기?' 싶은 그 타이밍. 한미 FTA 비준을 위해 미국에서 쇠고기 수입 협상을 선결 조건으로 내걸은 미국측의 그간 입장을 고려했을 때, 그리고 FTA에 목숨 건 2MB님의 성향을 고려했을 때, 결국은 FTA 비준을 위한 양보가 아니었냐라는 의혹을 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명분은 국민들에게 값 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보급하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오이밭에서 신발끈을 고쳐매면 오이 도둑으로 몰리게 마련이다. 결국은 졸속 협상에 대한 의혹을 거둬내기 힘든 타이밍이었고, 정부측에서도 이런 의혹이 불거지리란 예상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를 예상한 것이 정부의 두번째 실책이다.

대한민국 정부에게 있어서 가장 강력한 아군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각오하는 이 나라의 국민정서이다. 이 국민정서는 정부에게 경제 성장률이라는 단 한가지 지표로 개개인의 주머니를 불리고자하는 욕망을 억제할 수 훌륭한 패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내 주머니가 아닌 남의 주머니라면 사실 채워지는 주머니가 누구의 주머니인지 알 길이 없다. 바로 그 현실 세계의 무지를 이용하면 공동의 이익을 경제 성장률로 치환할 수 있고, 이로써 몇몇 소수자들의 다수에 대한 착취가 정당화된다.

한미 FTA는 이런 토양 위에서는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FTA가 경제 성장률을 끌어올릴 유일한 수단으로 둔갑시키기만 하면, FTA 반대 세력은 국익에는 관심이 없고 개개인의 이익만을 좇는 탐욕스러운 세력으로 몰아세울 여지가 생긴다.

쇠고기 협상을 타결하는 시점에서 정부는 반대 세력의 공세를 예상하며, 그들은 이런 쇠고기 개방 배경과 타이밍에 주목하기를 원했을 거다, 특히 국민적 거부감이 강한 민노당이. 왜냐하면 그렇게 될 경우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을, 정부가 시도했던 '광우병 괴담' 내지는 '배후 음모론'으로 무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엔 그게 될줄 알고 '괴담' 내지 '음모론'을 이야기해봤다. 그런데 그랬더니 어라라, 불난 집에 기름부은 꼴이 되네. 정치적 문제인줄 알고 정치적 해법을 찾았는데, 막상 뚜겅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네. 아참, 미치고 환장할 노릇. 어쩌겠어,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것을, 쯧쯧.


정부의 실책 3: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

사람의 생명이나 건강을 확률 싸움으로 변질시킬 수 없다는 원칙은 꽤나 아름답지만 정책 입안자들에게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원칙은 아니다. 정책을 시행하는 데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효과가 있는 반면에 그로 인한 부작용 또한 항상 존재한다. 그런데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안 담굴 수 없듯, 부작용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효과마저 백지화하자는 논리는 별반 설득력이 없다. 사고 나는 게 무섭다고 비행기 안 띄울 수는 없잖아.

결국은 어떤 정책이든 그 정책을 통한 효과와 부작용을 정확히 확인한 후에, 효과를 최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함으로써 효과대 부작용의 비율이 합리적인 수준에 다다르게끔 노력을 집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자, 그러면 이쯤에서 살펴보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효과라면? 당연히 값 싼 쇠고기의 보급이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부작용으로 국내 축산 농가는 틀림없이 타격을 입는다. 그리고 대중이 광우병에 대한 위협에 지금보다 조금 더 노출된다.

일단 축산 농가를 보호할 대책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orz 우리 한우 농장의 경쟁력을 '이제부터' 키우면 된다는 MB식 적자생존의 사고에는 원래가 정부의 국민 생존권 보장을 위한 역할이란 개념 탑재가 안 돼 있는 걸 어쩌겠는가. 정말이지 평생 소 키워 팔아먹던 사람들 장사에 범국가적으로 태클을 걸기로 했으면, 소 파는 일에 실패할 경우에 대한 대책쯤은 세워주는 게 정부의 할 일 아닌가? 혹시 살아남는 한우 농가는 계속 한우 팔아먹고,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은 이제 대운하 파는데 동참하라는 걸까? 뚜둥!

그런데 지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의 무능력/무책임함에 대한 비판/비난 여론이 너무 부족하다. orz 사실 이 부분은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국내의 몇 안 되는 정통(?) 좌파 세력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사실 이들을 걱정하는 건 시장의 소비자 역할이 아니기도 하고... 사실 그래서 시장이 보호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라고 정부가 있는 건데 우리 정부는 시장을 너무 좋아해서, 삐질... -_-,, 아무튼 이 부분은 국민들의 무관심에 기댄 정부가 애초에 외면한 부분이니 정부의 실책이랄 건 없다. 오히려 그들의 정확한 상황판단에 감탄해야할 지경, 꾸엑.

자, 그러면 시대의 쟁점으로 떠오른 광우병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앞서 말했듯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일단 그 싼 가격 면에서 요새 미친 듯이 뛰는 물가를 감안하면 확실히 서민 경제에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여기엔 논란의 여지가 없는데 정부가 여기에 한가지 토씨를 더 달았다. 바로 값 싸고 질 좋은 미국산 쇠고기가 국내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게 정부의 마지막 실책이다. 미국에 틀림없이 질 좋은 쇠고기가 존재한다, 그것도 제법 많이. 그리고 고기 값은 확실히 싸다. 그렇지만 '미국에 값 싸고 질 좋은 쇠고기가 많다'라는 주장과 '미국산 쇠고기는 값 싸고 질이 좋다'는 주장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국민들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은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해야 하는데, 대단히 안타깝게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 '미국에 값 싸고 질 좋은 쇠고기가 많다'라고 할 때에는 한국 정부의 역할이 미국산 쇠고기 중 값 싸고 질 좋은 쇠고기를 엄격한 기준으로 가려내서 들여오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그런데 '미국산 쇠고기는 값 싸고 질이 좋다'라고 주장할 경우에 한국 정부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바로 이 차이가 기분이 나쁜 거다, 국민들은. 30개월 미만의 소만 받아들였으면 이 정도로 뭇매를 두드려맞진 않았을 텐데...

물건 파는 사람이 자기네 물건 좋다고 하는 건 당연하다. 그건 동네 노점상도 마찬가지고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도 마찬가지다. 그 말을 무엇을 토대로 믿을 것인가는 물건 사는 사람의 역할이다. 물건을 사고 보니 약속한 물건과 다를 경우 환불을 요구할 책임 역시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있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 정부는 물건 파는 사람 말만 철썩같이 믿고 아무것도 안 하나? 그게 기분 나쁜 거다. 검역주권 이야기는 그래서 나오는 거다.


결론

이게 워낙에 드문 상황이라 앞으로의 정국이 어찌 정리될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 6월 항쟁 이후로는 가장 큰 반정부 시위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MB 정부에게 재협상이란 없을 것 같다. 사나이 가는 길에 이 정도 장애는 언제나 있는 법, 남자 자존심이 있지, 지금 굴복할 수는 없잖아. -_-,, 멍청~. 좀 멍해지긴 하는데, 2MB님께도 믿는 바가 없진 않다. 한나라당이 이명박과 별거를 하지 않으면 당의 지지율이 회복이 안 될 정도로 추락하는 등 한나라당에 대한 여론이 급격히 나빠지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이 과반을 차지한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할 일은 없다고 봐야 한다. 때마침 17대 국회가 담주면 쪽나는 상황. 18대 국회가 열릴 다음달 5일까지 시간이 좀 비는 덕분에 당 지지율이 곤두박질 치기 전에 여론이 제풀에 나가 떨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쇠고기 수입 협상 문제로 탄핵은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정치적 입장 차이를 탄핵 사유로 만들어 버리면 대한민국의 대의 민주주의의 미래는 암울하다. 물론 그 정치적 입장 차이라는 게 대다수 국민과의 차이라는 점에서 좀 문제가 있지만 대의 민주주의에서 민의의 왜곡은 발생할 수 있다. 그 정도가 심하고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면 독재라고 판단해야겠지만 취임 4달만에 탄핵은 조금 거칠다. 건전한 사회는 자신에게 돌아온 부당한 불이익에 분노하듯, 자신이 받은 부당한 이익에도 분노해야 한다. 4년전 노무현 탄핵이 말이 안 됐다면, 지금의 이명박 탄핵도 명분이 아직은 부족하다. 벌써부터 슬슬 기미가 보이고 있는 언론 통제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면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 탄압이란 맥락에서 탄핵 여론이 탄력을 받는 게 바람직하겠만, 어차피 정통-_- 언론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눈 보수층이 언론 통제 문제로 움직일 것 같지는 않다.

어찌됐든 놈현의 몰락과 함께 바닥을 치고는 이런 호기에도 올라가지 않는 민주당의 지지율을 보면 이번 상황의 최대 수혜자는 역시 소위 여당내 야당-_- 바끄녜. 대안없는 비판의 달인인 이 아가씨-_-께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상황이 어디 있으리오. 어차피 서로 날을 세울 대로 세운 상대인 2MB 각하께 '졸속 협상 반성하고 재협상하라'고 일침을 놓을 절호의 찬스인데다가, 자신에겐 정치적 책임도 없는 문제, 치고 빠지면 그만. 어디까지 양보를 하고 어디까지 다시 뺏어오라는 구체적 제안 따윈 없다. 그냥 재협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문장을 하나 만들기만 하면 그 한마디로 '국민을 사랑하는 박여사' 이미지는 더더욱 공고해진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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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MB님께서 월말엔 중국에 가신다. 이번에도 외교의 원칙은 실용외교. 이번에 중국에 가셔선 우리 국민들을 위해 어떤 획기적인 일을 벌려주실지 벌써부터 기대. ㅡㅠㅡ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값 싸고 질 좋은 중국산 계란 전면 개방.

물론 계란이라면 이 정돈 돼야지.
http://www.freeegg.com/contents/movie_view.egg?contentsIdx=89121

그게 아니라면 값 싸고 질 좋은 중국산 만두 전면 개방.

물론 만두도 이 정돈 돼야 만두랄 수 있겠지.
http://www.ytn.co.kr/_ln/0104_200801311850455961


@ 글이 좀 자극적이고 감정적인가? ㅋ, 인정. 그렇지만 미국에 값 싸고 질 좋은 쇠고기도 있다는 것과 미국산 쇠고기가 값 싸고 질 좋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명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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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잡겠다고 50개 품목 선정하라고도 하고, 경제 성장률 7% 달성하자고 경기 부양하자고도 하고... 이거 어째 아무것도 못할 거 같다. 경기부양 실컷해서 물가는 올리고, 경제 성장률은 4%대 정도 찍어주는 거 아닌가 몰라. 아무래도 다른 경제지표는 단기간 내에 안 되겠고, 취임 1년내에 물가부터 선진국을 따라잡자는 거 아닐까?

@ MB식 전시행정에 어울리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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