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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0/08 고통을 극복하는 법: 변화는 희망이랬다
가끔 명상을 할 때가 있다. 뭐, 깨달음을 얻어야겠다거나 존재의 실체를 파해쳐보겠다는 둥의 거창하다 못해 황당한 목표를 위해 매일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명상을 하다보면 신기한 경험을 하게 돼는 게 재밌어서 가끔 뜬금없이 하곤 한다.

신기한 경험이란 게 뭐냐면 눈을 감고 좌선한 채로 심호흡을 하다보면 문득 스스로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오곤 하는데, 이때 외부의 물리적 세계의 변화에 대한 자각이 없어지면 시간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다. 눈을 뜨고 보니 30분이 후딱 가버리는 일도 있고, 1분을 간신히 넘긴 경우도 있고...

수업 시간에 아주 깜빡 졸았다고 생각했는데 수업이 끝나버린 경험, 혹은 아주 긴 꿈을 꾸고는 한참 자고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30분간 잠깐 눈만 붙인 거에 지나지 않았던 경험... 모두 비슷한 맥락이다. 내부적 정신 세계는 '물리적으로 가능한 주기적 변화'를 통해 규정되는 시간이라는 관념과는 철저하게 분리돼 있는 거다.

뭘 해도 재미없는 것이, 꽤나 지루하게 요며칠을 보냈다. 몸은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바삐 보낸다고 보냈음에도, 시간이 어찌나 더디게 가는지 좀처럼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자기가 당면한 고민, 고통의 실체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다면 고통은 극복될 수 없지만, 지나치게 고통에 집중할 때 스스로의 내부로 침전하고 만다. 외부 세계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기 자신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버린다면, 역시나 고통의 극복은 요원한 일이다. '변화'가 부정됐을 때는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이 고통이 사라질 수 있다는 아주 간단한 진실이 부정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일체가 모두 고통이라고 했고,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죄라고 말한다. 종교는 그 태생적인 성격상 인간의 고민과 번뇌, 고통을 통해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종교가 인간에게 다시 그 고민과 번뇌와 고통을 되새김질시키는 것은 종교의 자기증식 기제인 걸까? 아니면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이 진실이기 때문일까?

불행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고, 누구나 행복을 끊임없이 갈망함에도 세상에는 언제 어디나 불행한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의 진실을 내포하고는 있는 것 같다. 뭐, 사실 어느 쪽이어도 상관은 없다, 종교가 인간에게 고통이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일체가 개고라고 하지만 일체는 유심조이기도 하지 않은가!

주인장이 늘상 하는 이야기지만 행복은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 않는데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스스로의 불행에 너무 몰두하면 이들에 양성 피드백(positive feedback)을 주고 말 뿐이지만, 스스로의 불행과 고통의 본질을 직시하는 건 중요하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듯, 외면한다고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그 고통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 또 한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고통을 인정하되 '변화'에 희망을 걸고, 그냥 살면 된다.

2005.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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