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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10/17 한국은 없다 (4)
스카이 광고와 관련하여 인종차별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게 된 김에 인종차별 이면에 숨은 순혈주의/민족주의의 실체에 대해서도 논의를 해보는 게 건전하다고 판단 예전에 쓴 글을 옮겨본다.

2006. 3. 20

대한민국 헌법 제 13조 3항을 보면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근대 형법에 있어서 기본이랄 수 있는 형사처벌 개별화의 원칙에 따르면 너무도 당연한 이 조항은 제 5공화국에 들어서 8차 개헌을 통해 12조 3항에 삽입되었다가 현행헌법인 9차 개정 헌법에서는 13조 3항으로 옮겨진 조항이다.

냉전 시대에 남북이 대치한 현실은 정부의 반공주의를 통한 국민 통제의 유용한 도구로 쓰였다. 이는 '연좌제'와 맞물려 정부가 '사상범'에 대한 막강한 억지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현실'은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가 국민에게 휘두르는 연좌제라는 '특수한 권력'에 둔감하게 만든 거다.

그렇지만 '특수한 권력에 대한 둔감함'은 불행히도 '대한민국민'만의 일이 아니다. 연좌제가 실시된 기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찾아볼 수 있으며, 이가 제도적으로 금지된 오늘날에도 의식적 연좌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제노사이드나 인종차별, 종교전을 비롯한 모든 집단분쟁의 뿌리에는 연좌의식이 깔려있다. '집단'분쟁은 태생적으로 내가 속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이 규정할 때에야 일어나게 마련이고, 이런 집단의 규정은 연좌의식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동족, 동향사람, 동문, 동창 등등 '동질감'을 일깨우는 집합명사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은 연좌성이고, 이는 애국심, 애향심, 애교심 등 우리가 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소위 긍정적 가치를 생산해낸다. 근데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는 우연적 연좌가 '특별한' 애정을 낳는다는 데에 있다. (애교심의 경우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연성이 덜 하기는 하다.)

우리는 인종차별이, 성차별이 나쁘다고 배우고,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인류 역사의 과오라고 배운다. 그 이유는 우리는 개인에게 선택권이 없는 외부적 조건들로 그 개인을 재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열등한' 유대인으로 태어나기를, 혹은 '우월한' 아리아인으로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내 어머니가 유대인인 것은 네 아버지가 독일인인 것만큼이나 우연에 불과하다.

집단적 특성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김치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고, '많은' 프랑스인들이 점심시간을 2-3시간씩 즐기는 것도 사실이며, '많은' 콩고인들이 가난한 것 또한 사실이다. 중동에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유럽에 기독교인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는 '많은' 한국인들이 특별히 평화를 사랑하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집단도 그 집단의 구성원이 '모두' 착하거나, '모두' 나쁘지 않으며, '모두' 똑똑하거나, '모두' 멍청하지 않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이란 게 있다면 말이지)을 일으킨 한국인은 우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 중에는 우수한 사람이 많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며, 그래서 '한국인은 우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비록 그게 칭찬일지라도 '유대인은 열등하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일이다. 내 아버지가 빨갱이라고 내가 반드시 빨갱이인 것이 아니듯, 많은 한국인들이 우수하다고 내가 필연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높은 개연성과 필연성은 그 결과의 발현에 있어서 무척 유사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매우 다르다.

우리는 국가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라고 배운다. 그렇지만 한국의 필리핀 노동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한국인을 '특별히' 사랑하기 때문에 생긴다. 우리가 특별히 더 사랑하고 가까이 해야할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 이타적인 한국 사람, 정직한 한국 사람, 자기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한국 사람이며, 이타적인 외국 사람, 정직한 외국 사람, 자기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외국 사람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사람들은 외국 사람이 아니라 이기적인 외국 사람, 부도덕한 외국 사람, 무책임한 외국 사람이며, 이기적인 한국 사람, 부도덕한 한국 사람, 무책임한 한국 사람이다.

자기 이익만 챙기는,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한국 사람은 이타적이고 정직하며 책임감 있는 외국인들보다 더 위험하기 마련이다.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야욕에 반대한 일본인보다 한국인 친일파가 더 위험했듯이...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은 국가라는 모호한 개념이나 '무조건 한국인'이 아니라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한국이 또 다시 누군가의 침략을 당한다면 이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는 '한국'을 지켜야하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죄없는 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침략 행위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한국이 누군가를 부당하게 침략한다면 이에 역시 맞서 싸우는 것 또한 도리.

다른 말로 하자면, '같은 한국인끼리 서로 위하는 게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면 '같은 지구인끼리 서로 위하는 것 역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나'라는 개인이기 전에 한국인이라면, 나는 한국인이기 전에 '지구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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