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MB가 '취업 안 되는 젊은이들 기술 교육 시키자'는 발언을 했는데, 이에 대한
이택광님의 반응은 조금 과민반응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이 발언과 이 해석이 실험이 좀 딜딜 말리는 타이밍에 나와버리니 꽤나 의미심장하다. 내가 하는 일이란 게, 정말 딱 인문학만큼 경제적 가치 창출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하는데, 비용은 그에 비해 천문학적으로 많이 드니 사실 경제적으로 쓸모없기로 말하자면 내가 인문학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다.
사실 어디가서 물리학한다고 나에 대해 소개하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어떤 걸 연구하냐?'는 질문에 가차없이 따라 오는 게 '그래서 그걸 어디에 쓰냐?'는 질문이다. 그럴 때면 정말 과학과 기술이 동치인 시대를 살고 있구나란 실감이 난다. 나는 물론 꽤나 자랑스럽게 '써먹을 데 없다'고 대답하지만, 대부분 내가 무언가를 숨기고 있거나, 대답하기 귀찮아한다고 생각하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어딘가엔 사용할 수 있으니 연구할 거 아녜요'라며 집요하게 캐묻는다.
물론 이에 대한 모범답안이 몇가지 있긴 하다. '지금은 뭐에 써먹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아직 모르는 걸 더 많이 알고 있는 후세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기술일 수 있다'거나 '그저 인간의 지식의 지평을 넓히는 순수한 호기심의 발로다' 따위가 그거다. 이런 수사들을 누가 언제 처음으로 읊조렸는지는 알 수 없다만, 그 최초의 누군가는 그 당시에 이런 수사들로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었거나, 나름 섹시해 보였을 수도... 그렇지만 요샌 사실 좀 진부하다. 가끔은 나조차 믿지 않으면서도, 더 좋은 답이 없어서 아무생각 없이 내뱉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더 나은 답이 없다는 거, 그보다는 더 나은 답이 없을까 별로 고민해보지 않는다는 거,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사실 교육기관과 학문의 발전 과정을 보면, 근대 과학의 시초가 된 대부분의 아이디어들은 근대 이전의 봉건제시절에 탄생했는데, 당시 교육의 기회라는 건 대부분 노동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지배계급에게 한정돼 있었다.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이 분명한 봉건제도 하에서 노동계급은 노동하는 동안 지배계급은 남는 시간 동안 만물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거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을 품는 것을 노동계급에게 정당화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과학이든 철학이든, 혹은 예술이든 '나한텐 재미있으니까'라는 순수한 관심 이외의 그 어떤 목적을 갖지 않아도 됐다.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의 단 하나의 잣대로 세상사를 가늠하는 천민자본주의가 인문학이나 순수 과학, 혹은 인간성을 죽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사실 이들을 죽이는 건 자본에 힘을 실어준 자본주의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의 개념 위에서 출발한 민주주의일 거다. 무슨 이야기냐면 '만인이 평등하다'는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당위성은 봉건제 하에서의 그것과 완전히 달라야만 한다는 이야기다. 만인이 평등하다면 특정 집단의 노동의 결과를 다른 집단이 정당한 댓가없이 취할 수 없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 노동하는 동안, 나는 내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데에 일년 365일을 다 사용하느라 노동을 하지 않았/못했다면, 누가 잘못한 걸까?
물론 오늘날 소위 지식인들에게 있어서 지식의 생산은 노동이다. 대부분의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에게 물어도 자신이 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농부가 1년 내내 땅을 일궈 쌀을 생산하듯, 책, 실험기구, 악기 등과 매일 씨름하며 인간의 지식의 지평을 넓히고 새로운 예술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고 할 거다. 그렇지만 문제는 "누구를 위해서?"인가 이다.
이건 자본주의가 지식과 진리, 문화를 상품화하거나 돈거래로 만드는 것과는 관계 없는 문제다. 내가 A만 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서 B를 생산하여 '먹고 살기'위해서는, 누군가는 내게 B의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즉, 나는
A의 결과물 B를 누군가에게는 자본 혹은 B가 아닌 다른 어떤 재화와의 교환 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야 가능한 거다. 여기서 B가 무엇이냐, 그리고 댓가를 지불하는 그 누군가가 누구냐는 전혀 상관없다. 지식/문화 생산을 취미활동이 아닌 직업으로 만드는 순간, 지식/문화의 상품화는 일어났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는 그 가격을 누가 어떻게 매기느냐의 차이일 뿐...
이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모든 인간이 평등하긴 한데,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는 당연히 상품화되는 거고,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는 상품화하기에는 너무나 고귀하다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실제 문제는 지식의 상품화가 아니라, 지식의 가치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본주의에서 시장이 지식의 교환 가치를 너무 싸게 매겨 버린 거다. 그런 현실에서 이공계/인문학 기피와 맞물린 한/치/의/법/경영대로의 급속한 인력 이탈 현상은 놀랄 일이 아니다.
과학하는 사람들이 '과학은 중요하다', 인문학하는 사람들이 '인문학은 중요하다'고 믿는 건 당연하다. 과학이 혹은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과학을 하고 인문학을 하고 있는 거잖은가? 그런데 시장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결국 정부의 역할은 때로는 시장의 횡포 때로는 시장의 삽질을 바로 잡는 건데, 어라, 정부는 꼼짝도 않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게 빠졌는데, 정부가 이 중개자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정부는 시장과는 다른 가치 판단의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의 철학과 정책, 매스미디어의 포지셔닝 등이 모두
나름의 역할이 있는 건 맞다. 그렇지만 이런 가치 판단의 기준은 어디선가 저절로 나타나지 않는다. 내가 흥미로워하는 것을 남들이 흥미로워하지 않을 때, 그게 흥미로운 일이란 걸 납득시킬 책임은 전적으로 내게 있다. 그럼에도 정작 학계에서 과학을, 인문학을 살리라고 하면서 정작 뱉어내는 수사들은 '음식이 육체를
살찌운다면, 문화는 정신을 살찌운다', '돈이 행복을 살 수는 없다' 따위 뿐이라면--이런 주장들이 왜 참인지를 효과적으로
납득시킬 능력이 없다면--딱, '하느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거다'라고 주장하면서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만큼의
설득력을 가질 뿐이다.
노동계급이 사회 대부분의 부를 생산함에도, 정작 그 부의 대부분을 누리는 게 소수의 지배계급인 사회 구조에서, 지배계급이 지식과 문화의 대부분을 생산하고 동시에 이를 누리는 건 당연하다. 오늘날의 과학자, 인문학자, 예술가들이 그 당시의 지배계급이 향유했던 그 특권을 부러워하는 것 역시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한 낭만에 사로잡혀 자본주의와 정부의 어리석음을 향해 손가락질한다면, 이는 집단 이기주의에 기반하여 내게도 그 당시 그들이 누렸던 '특권'을 달라는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쌀 농사꾼이 고객을 상대로 빵 대신 밥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그럴 듯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하듯, 우리는 핸드백 하나를 사는 것보다 책 10권을 읽는 게 더 좋은 이유, 혹은 아이폰 같은 신제품 하나 더 개발하는 것보다 초유체의 신비를 규명하는 게 더 좋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유가 단순히 '책 10권 안에는 새 핸드백 하나로는 누릴 수 없는 즐거움이 있다'라면 '나는 새 핸드백 하나 사는 게 책 10권 읽는 것보다 좋던데?'라고 되돌아오는 한마디만큼이나 허탈하잖은가.
내가 생산하는 지식과 문화를 단순히 돈으로 교환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그 진정한 가치에 대해 세상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한 자본주의가 세상을 망친 게 아니라, 내가 생산하는 지식/문화는 천박한 자본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게 고귀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에 눈이 멀어서, 그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한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지식인들이 자기 무덤만 파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거다. 원래가--인류의 지식/문화는 돈으로 매길 수 없다는 믿음처럼--나한테는 너무도 당연한 게, 남들한테는 완전 딴 세상 이야기이게 마련이다.
@ 언제나처럼 답은 없이 문제제기만...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난 내가 하는 일에 왜 국민의 혈세를 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포기한지 오래. 그냥 나는 이거 하고 싶은데, 국가가 (국민들을 대표해서) 이 일에 돈 들이겠다면 땡큐고, 싫다면 그게 정상이지 싶음... -_-a 진리를 밝혀내기 위한 인간의 무한한 호기심이란 따지고 보면 무한한 호기심이 있는 인간들도 더러는 있다는 얘길 아전인수식으로 비틀어 버린 것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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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또.. 스타트렉 보면 돈 없는 사회가 나오는데 말야? -ㅂ-
농담이고. "통화의 필요성"을 역설하신 다음 곧바로 자본주의 디펜스를 연결하셨는데, 실은 마르크스 본인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 벌어진 온갖 생쑈에도 불구하고 소위 사회주의 경제학에서 '화폐' 개념이 부인된 적은 없지. 아니 오히려 자네가 묘사한 "실물가치와 등가 교환되는" 화폐야말로 마르크스적 화폐상품론에 가까운 시각인 것 같은데.
사실 알다시피 나도 뭐 잘 몰라서 이게 정확한 지는 확실하지 않네만.. 내가 아는 한, 자본주의 경제 vs. 사회주의 경제는 물신숭배에 대한 철학적 시각차나 화폐의 사용 여부 따위가 아니라네. 그보다 소위 화폐란 녀석이 "미래 수익에 대한 추상적 청구권"으로서, 잉여 가치의 소비가 연기되면서 이윤을 통해 축적되는 기작 = 자본의 집중을 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있는 거지. 물론 이렇게만 쓰면 너무 중립적이니까 --코렁탕 먹을 지도 모르니까-- 소위 사회주의 경제체제, 혹은 "공산주의"랍시고 현실에 등장했던 모든 케이스들이 다 병맛 날리고 망했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겠군; 중국? 아 거긴 일당독재 자본주의 체제. -ㅅ-
어쩌면 근본적으로 용어나 개념에서부터 꽤 혼란이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는데.. 이를테면 정치적 프레임으로서의 사회주의, 이를 바탕으로 기술된 경제이론인 마르크스의 자본론, 이걸 다시 정치적으로 써먹으면서 현실화된 특정 정치경제 체제인 공산주의 등 -- 이거 사실은 다 다른 얘기들이라능?;
그러니, 자네의 불편한 심기 혹은 고발의 타겟에 관해서라면.. 뭐랄까 사격 방향이 좀 엉뚱한 듯 싶군; 소위 자본주의, 혹은 더 좁혀서 신자유주의나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이들 중에 뭐 화폐 없애자거나 기타 뭔가 엎어버리자는 식으로 환타지 쓰는 양반들은 별로 없겠고, 그보다는 더 구체적/현실적인 문제를 논하는 경우가 많겠지. 아니 그렇게 급진적인 주장은 내가 아는 한, 언젠가 딱 한 번 토마스 모어 선생이 소설로 쓰신 적은 있는 거 같지만..? :)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실천 가능한 (혹은 사람들이 적어도 몇만명 이상의 대규모 사회에서 실천을 시도한) 제3의 체제가 딱히 없어서 그냥 자본주의가 아닌 그 무엇의 개념으로 사회주의란 말을 갖다 쓴 바람에 약간 혼돈이 온 것 같군요.
맑시즘과 고전주의 경제 이론 사이에서 사회 전반의 부를 축적하는 방법론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건 알고 있지요. 제일 큰 차이라면, 자본의 집중보다도 조금 더 뿌리 깊이에는, 정당한 노동의 가치가 뭐냐는 노동 이론의 시각 차이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맑스의 노동 이론의 씨앗이 리카도의 노동 이론이란 건 꽤나 아이러니하지요. 암튼 이야기의 핵심은 이게 아니니, 이 이야긴 다음 기회에...) 그것 때문에, 결국 계급 문제도 튀어 나오고, 토지 따위의 생산 시설 공동소유 따위의 소위 공산주의 해법이 나오는 거고...
사실 제가 하려던 이야기는 특정 체제를 옹호하거나 특정 체제를 비판하려는 게 아니고, "사람들은 체제가 인격이나 인성에 도대체 얼마나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들 하시는지?", 그게 궁금하단 이야기였는데, 뭐, 언제나처럼 글로 쓰다보니 산으로 가버렸달까나. ㅡㅠㅡ 체제가 인격에 영향을 줄 리가 없잖아라는 의미로 반문하는 게 아니고, 그냥 정말로 궁금하다는 이야기. 화폐까 없는 세상 이야기가 나온 건, 그런 정말로 다른(엉뚱한?) 세상을 상정해보면 정말 세상이 달라질까? 뭐, 그런 맥락에서... 그렇지만 사실 사고의 프레임이 현존하는 체제 내에서 형성됐으니, 그런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알 길이 없기도 하지요.
에헤 그 점에 관해서라면.. 언젠가 자네가 올렸던 모 동영상의 케인즈 선생 얘기가 생각나는군? "Practical men, who believe themselves to be quite exempt from any intellectual influences, are usually the slaves of some defunct economist."
인격/인성이란 게 결국 사회에서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방식 혹은 그 판단준거의 문제라고 한다면, 인간의 사회성에서 교육의 비중을 고려할 때 -- 특히 유소년기에 주입/각인되는 특정 정치경제 체제의 기초적인 사고방식은 분명 큰 영향을 끼치겠지. 아시다시피, 북한은 전적으로 이 방식에 크게 의존해서 사회주의 국가 사상 최초로 세대간 권력승계를 달성한 = 절대왕정 전환한 사례라능? :)
다만 역시 또 애매한 포인트가 남았는데.. 자네가 "야만스럽게"라고 표현했던 부분은 말 그대로 인성/인격 이전에 인간 본성의 문제라네. 이렇게까지 하위 레벨로 내려가면 ㅇㅇ 어떤 체제도 이걸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겠지. 자 그래서, 인간 사회는 약육강식인가? 아니 적어도 "물리적 힘"에 관해서는 통제되고 있는 편이고, 아마 다들 이런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듯 한데. (아님 말고? ㅋ)
그럼 이제 "물질만능주의"를 보세. 간단히 말해서 "돈이면 다 돼"라는 얘기지? 이런 사고방식이 나타나는 기본적인 이유는, 현 시스템에서 축적된 자본의 힘이 다른 모든 것의 힘을 압도하기 때문이라네. 대표적인 예로는 작년 말의 소위 "원포인트 사면" 사태를 들 수 있겠군; 이런 시스템을 다른 말로는 "금권에 의한 약육강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 아닌가? :)
나도 물론 체제가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는 식의 환타지는 안 가지고 있삼. 그렇지만 뭔가 인간다운 가치라는 건 종종 본성에 반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본성/본능적 충동을 제어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결국 온갖 제도와 체제의 목적이잖아?
그러니 누군가 신자유주의나 물질만능주의 따위를 비판할 때, 이건 당연히 인류보완계획 따위 얘기가 아니지; 또한 아예 자본주의를 때려치우자는 얘기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겠고. 그냥 좀 이게 너무 "야만적"이라능? :) 우리가 물리적 힘을 자제하고 약육강식 상황을 벗어난 것처럼, 같은 식으로 더 나은 제도들을 고안/수정하도록 노력하자고 한다면 -- 글쎄 뭐 이게 그렇게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