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8/03/29 해롤드 워싱턴과 바락 오바마 (3)
  2. 2008/03/28 바락 오바마의 명연설 (2)
  3. 2006/10/17 한국은 없다 (4)
  4. 2006/10/16 스카이 광고가 일깨우는 것 (4)
오바마의 연설문을 소개하기에 앞서, 오바마라는 정치인의 탄생 배경(?)을 조금 이해할 필요가 있기에 오늘은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19세기말, 20세기초 시카고,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 미국 대도시들의 정치판은 political machine이라고 표현되는 지독한 정경유착과 보스 중심의 정당정치로 구조화되어 있었다. 1940년대에 대대적인 시민운동으로 대부분의 머신들은 와해되었는데, 이런 움직임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아남은 머신이 바로 시카고 머신이다. (참고로 시카고에는 머신이 아직도 조금 살아있다.)

이 당시 시카고 머신의 가장 큰 폐단은 극단적인 인종차별과 흑백분리 정책이 횡행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1970년대에 백인 선거구의 실직률은 0%에 근접한 반면에, 흑인 선거구의 실직률은 25%에 달했다. 또, 흑인 선거구에서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데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해줘야 할 는 쓰레기 치우는 일조차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1976년 당시 20녀 이상 장기집권 중이던 시장 리처드 조세프 데일리--현 시카고 시장인 리처드 마이클 데일리의 아버지이기도 하다--가 사망한다. 차차기(차기의 오타가 아님) 시장 선거에서 반머신 정치인이었던 제인 마가렛 번이 시장에 뽑히면서 시카고 머신이 와해될 기회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번은 당선 후 태도를 돌변 시카고 머신의 똥구멍을 핥기 시작하며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린다. 그렇게 그녀의 임기가 끝나가는 1982년의 민주당 경선. 이때에 등장한 인물이 시카고 최초의 흑인 시장이 될 해롤드 워싱턴이다.

경선 과정에서 온갖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과정하며 결국은 소득세 연말정산을 하지 않았다--세금을 내지 않았다가 아니다!--는 이유로 잠시 감옥에도 다녀오고, 미혼인 사실을 들먹이며 동성애자라는 근거없는 소문도 나돌은 데다가, 게다가 변호사직을 박탈당한 이력(변호사직을 박탈당한 이유는 모름)까지 거론이 되는 악재 속에서도 직설적이고 호소력 있는 언어로 흑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I can't believe there's no redemption. But that redemption is not gonna come out in hatred, it's gonna come out in positive attitude toward our fellow man. We've come into the 1980's with an understanding that we have not just a right but a responsibility to give the best that we have to a society. We wanna give it. And we're gonna give it if we have to beat'em across (중략) even if we have to knock'em down and make'em take it, we're gonna give it to'em.

그런 와중에 현재 시카고 시장인 리처드 마이클 데일리가 경선에 출마하면서 당시 시장이던 제인 번과 백인표를 나눠먹는 덕분에 워싱턴은 경선에서 가까스로 승리한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이 강세를 보이는 시카고에서 민주당 경선 승리는 시카고 시장 당선과 같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시장 선거가 펼쳐지자 백인 민주당 지지자들이 대거 민주당을 이탈하여 공호당 후보에게 표를 던질 정도로 당시 시카고의 흑백 갈등은 심했다. 간신히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워싱턴은 시카고 머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나가며 인종간의 갈등을 풀어나간다.

워싱턴이 비록 시장이 되었다고는 하나 당시 시의회는 대다수가 백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를 철저하게 따돌림으로써 그의 인사와 정책에 사사건건 딴지를 걸기 시작한다. 그 속에서도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공명정대했다는 것이다. 일례로 흑인 선거구에도 백인 선거구와 똑같은 횟수로 쓰레기를 치워주는 정책을 시행하려고 하면 시의회에서 딴죽을 건다. 그럴 경우 그는 백인 선거구를 찾아가 왜 멀쩡히 잘 치워지던 쓰레기가 치워지지 않는지 시민들에게 설명을 함으로써 시의회를 궁지로 모는 것이다. (물론 그는 자신의 반대 세력 시의원들을 한명씩 차례로 설득해 나가는 노력도 빼먹지 않았다.) 그런 그의 태도가 백인들에게 먹힐 수 있었던 건 그가 흑인거주지역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면서도, 흑인들에게 특별한 혜택을 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단지 그 동안의 불이익을 해소하는데 힘썼을 뿐이다.

I say it again, every group when they get population ascendancy, as night follows day, they decide, without malice to anybody, not angry to anybody, that it is their turn! Period! That's all. Ain't nothing wrong with that. I made that statement two months ago and they said it was racist. But they left out most of the statement that Irish do it, Polish do it, Jewish do it, and every intelligent group on earth, which is every group, does it. And we do it. And we should do it. It's just that simple. I hope the press gets it right this once.

머신 정치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자신이 속한 정치세력에게 공적사업을 맡기는 등의 관행을 통해 그 세력에 사회/경제적 부가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런 풍토 속에서 그의 참모들은 그가 흑인 지역구에 보다 많은 혜택을 돌려주리라 기대했으나 그는 그런 그들의 기대를 철저하게 저버린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주변에 포진해있던 흑인 정치인들은 그런 그의 태도에 실망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했으나, 흑인 서민층은 그를 전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받아온 불이익이 워낙 많았기에, 그런 불이익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이미 그에게 보낸 지지에 대한 보상이 충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공명정대함이 백인들이 막연하게 갖고 있던 흑인 정치세력의 성장이 보복정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그리고 오바마는 시카고의 이런 토양 위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1983년, 워싱턴이 시카고 시장으로 취임한 해에 컬럼비아를 졸업한 오바마는 뉴욕에서 일을 하다가, 워싱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2년 후, 1985년 시카고로 가서 community organizer로--아직도 풀뿌리 민주주의의 개념이 없는 국내에는 다소 생소한 개념/직책이다--정치활동을 시작한다.

워싱턴은 데이빗 액셀롸드라는 정치 고문을 두고 재선에 도전, 성공하지만 그의 두번째 임기가 시작하고 몇달 후, 1987년 11월 심장마비로 급사하고 만다. 그가 자신의 계획(?)대로 시카고 시장을 20년간 했더라면, 시카고는 물론 미국의 정치 풍토가 대대적으로 뒤바뀌었을 것이고, 그는 오바마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수 있었으리라.

그렇지만 워싱턴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1996년부터 일리노이 주의원으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돌입한 오바마는, 2004년 일리노이주 미국 상원의원 민주당 경선에서, 워싱턴이 초선에서 백인표의 8%, 재선에서 20% 밖에 얻지 못했던 시카고 북서부의 10여개 선거구 중 단 한곳만 빼고 모두 승리하며, 워싱턴이 시카고에 남기고 간 유산을 남김없이 물려받으며 그의 정치적 후계자로 자리매김한다. 흥미롭게도 현재 미국 대통령 후보 민주당 경선을 치루고 있는 오바마의 정치 고문 역시 데이빗 액셀롸드이다.

인종차별의 벽을 허무는 것은 모든 흑인 정치인에게 중요한 과제이지만, 워싱턴을 보며 정치인으로 커온 오바마에게 시카고에서 워싱턴이 해낸 일을 미국 전역에서 자신이 할 차례라고 믿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배경 위에서 이번 필라델피아 연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참고자료: This American Life 2007년 11월 12일 방영분,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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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를 상대로한 초반의 약세를 뒤집고 선전 중인 오바마를 둘러싸고 최근 인종문제가 떠올랐다. 오바마가 다니는 시카고에 있는 교회의 목사가 수차례에 걸쳐 미국 정부와 사회--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백인주류사회--를 강하게 비판하며 자신의 설교에 오바마를 이용한 내용이 언론에 흘러나가면서 오바마의 정체성에도 문제제기가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18일 오바마가 필라델피아에서 미국의 인종차별문제를 짚은 연설을 했는데, 비록 그가 선거에 떨어지더라도 이는 미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명연설이다. 언제 기회가 있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해서 소개해 올릴까 했는데, 오늘 100분 토론에서 나경원의 뻘소리를 듣노라니 답답한 마음에 일단 연설문의 끝부분만 소개해본다.

영어 원문을 읽을 사람은 클릭


완전영도의 한글번역본은 여길 클릭



@ 연설문 전체에서의 맥락이 중요한데 이부분만 떼어내니 확실히 감동이 덜하구나. 오늘은 일단 자야겠고, 다음에 이 연설문이 나오게 된 보다 자세한 배경과 맥락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to be continued...
@@ 총선이 코앞인데 남의 나라 대선 후보를 보며 부러워만 해야 하다니...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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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광고와 관련하여 인종차별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하게 된 김에 인종차별 이면에 숨은 순혈주의/민족주의의 실체에 대해서도 논의를 해보는 게 건전하다고 판단 예전에 쓴 글을 옮겨본다.

2006. 3. 20

대한민국 헌법 제 13조 3항을 보면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근대 형법에 있어서 기본이랄 수 있는 형사처벌 개별화의 원칙에 따르면 너무도 당연한 이 조항은 제 5공화국에 들어서 8차 개헌을 통해 12조 3항에 삽입되었다가 현행헌법인 9차 개정 헌법에서는 13조 3항으로 옮겨진 조항이다.

냉전 시대에 남북이 대치한 현실은 정부의 반공주의를 통한 국민 통제의 유용한 도구로 쓰였다. 이는 '연좌제'와 맞물려 정부가 '사상범'에 대한 막강한 억지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분단이라는 '특수한 현실'은 국민들로 하여금 국가가 국민에게 휘두르는 연좌제라는 '특수한 권력'에 둔감하게 만든 거다.

그렇지만 '특수한 권력에 대한 둔감함'은 불행히도 '대한민국민'만의 일이 아니다. 연좌제가 실시된 기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찾아볼 수 있으며, 이가 제도적으로 금지된 오늘날에도 의식적 연좌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제노사이드나 인종차별, 종교전을 비롯한 모든 집단분쟁의 뿌리에는 연좌의식이 깔려있다. '집단'분쟁은 태생적으로 내가 속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이 규정할 때에야 일어나게 마련이고, 이런 집단의 규정은 연좌의식에 뿌리를 두기 때문이다. 동족, 동향사람, 동문, 동창 등등 '동질감'을 일깨우는 집합명사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은 연좌성이고, 이는 애국심, 애향심, 애교심 등 우리가 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소위 긍정적 가치를 생산해낸다. 근데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는 우연적 연좌가 '특별한' 애정을 낳는다는 데에 있다. (애교심의 경우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연성이 덜 하기는 하다.)

우리는 인종차별이, 성차별이 나쁘다고 배우고,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인류 역사의 과오라고 배운다. 그 이유는 우리는 개인에게 선택권이 없는 외부적 조건들로 그 개인을 재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열등한' 유대인으로 태어나기를, 혹은 '우월한' 아리아인으로 태어나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내 어머니가 유대인인 것은 네 아버지가 독일인인 것만큼이나 우연에 불과하다.

집단적 특성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김치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고, '많은' 프랑스인들이 점심시간을 2-3시간씩 즐기는 것도 사실이며, '많은' 콩고인들이 가난한 것 또한 사실이다. 중동에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유럽에 기독교인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는 '많은' 한국인들이 특별히 평화를 사랑하는 것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집단도 그 집단의 구성원이 '모두' 착하거나, '모두' 나쁘지 않으며, '모두' 똑똑하거나, '모두' 멍청하지 않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이란 게 있다면 말이지)을 일으킨 한국인은 우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인 중에는 우수한 사람이 많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며, 그래서 '한국인은 우수하다'고 말하는 것은 비록 그게 칭찬일지라도 '유대인은 열등하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일이다. 내 아버지가 빨갱이라고 내가 반드시 빨갱이인 것이 아니듯, 많은 한국인들이 우수하다고 내가 필연적으로 우수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높은 개연성과 필연성은 그 결과의 발현에 있어서 무척 유사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매우 다르다.

우리는 국가를 사랑하고 민족을 사랑하라고 배운다. 그렇지만 한국의 필리핀 노동자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한국인을 '특별히' 사랑하기 때문에 생긴다. 우리가 특별히 더 사랑하고 가까이 해야할 사람들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 이타적인 한국 사람, 정직한 한국 사람, 자기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한국 사람이며, 이타적인 외국 사람, 정직한 외국 사람, 자기 행동에 책임질 줄 아는 외국 사람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사람들은 외국 사람이 아니라 이기적인 외국 사람, 부도덕한 외국 사람, 무책임한 외국 사람이며, 이기적인 한국 사람, 부도덕한 한국 사람, 무책임한 한국 사람이다.

자기 이익만 챙기는,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한국 사람은 이타적이고 정직하며 책임감 있는 외국인들보다 더 위험하기 마련이다.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 야욕에 반대한 일본인보다 한국인 친일파가 더 위험했듯이...

우리가 사랑해야 할 것은 국가라는 모호한 개념이나 '무조건 한국인'이 아니라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한국이 또 다시 누군가의 침략을 당한다면 이에 맞서 싸워야 하는 이유는 '한국'을 지켜야하기 때문이 아니라 '많은 죄없는 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침략 행위가 부당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한국이 누군가를 부당하게 침략한다면 이에 역시 맞서 싸우는 것 또한 도리.

다른 말로 하자면, '같은 한국인끼리 서로 위하는 게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면 '같은 지구인끼리 서로 위하는 것 역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나'라는 개인이기 전에 한국인이라면, 나는 한국인이기 전에 '지구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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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의 Must Have 광고 논란이 한창이다. 뭐, 논란이랄 것도 없다. 워낙 그 색채가 분명해서... 광고 카피를 보고 나서 너무 놀라서 눈알이 튀어나오는지 알았다. 저렇게 선명한 인종차별이라니... 너무도 당연하게 네티즌들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스카이가 그들의 포화를 맞고 사과문을 내보내고, 광고를 바꾸는 걸 보며, '우리는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스카이의 잘못된 인식 이상으로 우리들의 잘못된 인식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저런 광고가 우리에게 통할 거라고 판단했다는 생각, 아찔하지만, 곰곰히 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 유학 나오기 전의 일이다. 출국전에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다니느라 강릉에 계신 고모부 사무실을 찾아갔다. 어릴때부터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같은 동네에 살면서 무척이나 가깝게 지내왔던데가 워낙이나 정이 많으신 분인지라, 내가떠난다고 하니 무척이나 섭섭하셨는지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사무실에 있던 물건들을 이것저것 꺼내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는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머리 노랗고 눈 파란 여자 델고오면 족보에서 파버릴 거야'라는 한마디를 잊지 않으셨다. '네'라며 그냥 껄껄 웃기는 했지만, 사실 우리 집안 어른들,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보수성을 잘 보여주는 한 사건이다.

미국에 와서 이곳 친구들과 연애 이야기를 하다가 '한국인과 외국인 중 딱히 선호도가 있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별로 상관을 안 하는지라 '맘에 드는 사람 만나면 그만이지, 뭐'라 답하고는, 그렇지만 한국 사회는 무척이나 폐쇄적이란 이야기를하면서 고모부 이야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친구 중 한명이 대뜸 'He's a racist'라고 하는 거다.

'인종차별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이 가진 단일민족성에 대한 자긍심이다'란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곰곰히 생각해보니 두개의차이가 없는 거다. 그동안 순혈주의 혹은 단일민족주의를 단순히 폐쇄적 사회성, 또 그와 연관된 사회의 보수성 측면에서만인식해왔던 터에, 인종차별은 나쁘다고 배우면서도 단일민족임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라 가르치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충격적인 상황인식에 멍해졌다. 제대로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우리 사회는 인종차별을 단순히 보수성으로 인식할만큼 곪아 있다는 사실에...

물론 이번 스카이 사건과는 약간 성격에 차이가 있다. 스카이의 경우에는 백인우월주의적 관점에 우리 스스로를 투사시키는 조금 더 비굴한 성격의 인종차별인데 반해, 고모부 이야기는 순혈주의에 입각한 '우리'를 제외한 모든 인종에 대한 배타성에 뿌리를 둔 조금 더 오만한 성격의 인종차별이다. 그렇지만 어느쪽이든 상관없다. 어차피 양쪽 모두 우리가 타파해야할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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