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회적 폐단의 기저에는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이중잣대가 깔려 있다. 사실 이게 어쩔 수 없는 것이 '너'와 '나' 사이의 간극은 어마어마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를 통해서만 그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너의 행위'에 비해,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그 의도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나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잣대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는 깐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너그러울 수밖에 없고, 이는 이기심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어제 저녁의 일이다. 오랜만에 엄마, 고모, 누나, 사촌동생들과 가볍게 그리고 즐겁게 맥주 한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결혼 적령기에 여자친구조차 없는 처지다 보니 식구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나오게 마련이고, 누구와 어떻게 결혼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흘렀다. 엄마와 고모께 있어서 배울만큼 배운 나는 부족한 것 없는 사람을 만나 서울에 내집 하나 정도는 마련함으로써 강원도라는 촌에서 나고 자란 내 신분을 한단계 발전시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신들께서 스스로 '신분상승을 해야 한다'고 표현하실 정도로 당신들의 욕망은 노골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기이한 모순이 내재돼 있다. 사실 난 좋은 집안이란 게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게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내가 우리 집안보다 나은 집안의 어떤 아가씨와 결혼함으로써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면, 역으로 우리 집안보다 못한 어떤 집안의 아가씨가 나와 결혼함으로써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내가 우리 집안보다 못한 집안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내가 특별히 손해보는 건 없는 거다. 고로 이를 기를 쓰고 반대할 이유 역시 없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우리 집안보다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내 수준을 낮추는 일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면, 결국 내가 더 나은 집안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품위를 떨구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 나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
결국 내가 보다 나은 집안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허락할 수 있지만, 그 반대를 허락할 수 없다는 주장에는 이중잣대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이로 인한 격렬한 이기심이 깔려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입장만을 고려하게 마련인지라 그런 모순에는 관심이 없고, 이기심을 이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여기에 '약간의'--강한 자 앞에서조차 뻣뻣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진 못한--에고가 더해지면 약한 자 앞에서 강해지는 비열한 행태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강렬한 신분상승욕구를 지닌 분이셨다. 친가 가족들은 거의 대부분 그 욕구를 공유했고, 여전히 하고 있으며, 나도 한때 그 욕구를 공유했다. 다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신분상승은 자본의 형태를 띄기 쉬운데, 나의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는 단 한번도 재물의 형태를 띈 일이 없다.
나에게 있어서 신분상승은 언제나 유명세 혹은 명예를 통한 자아의 확인이자 내 자아에 대한 상대에 대한 강요(?)였어야 했다. 조금은 특이하게도 그 유명세는 항상 뉴튼이나 아인슈타인 정도의 누구나 알만한 역사적인 과학자로서의 유명세여야 했다. 물론 꽤나 오래전 이야기였고, 어느때부터인가 그런 강렬한 욕구가 피곤해졌다. 그렇지만 그 신분상승에 대한 강렬한 욕구에 대해서는 지금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그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조금은 철이 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지만은 않은가보다.
결혼이 신분상승의 도구여서는 안 되고, 나와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 분수껏 살면 된다는 내 주장에는 '아직은 젊어서 뭘 모르고 그런 소리를 하는데, 혈기만 믿고 어리석게 굴지 말고 세상을 더 산 어른들의 지혜에 귀기울이라'는 냉소 섞인 답변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무조건 어른 말을 들으라며 권위로 윽박지르던 예나, 너희도 철이 들면 무슨 얘기인지 이해할 거라며 미래의 불확실성 뒤에 숨는 지금이나, 어른들은 참으로 비겁한 형태로 논쟁을 한다.
어제 저녁의 일이다. 오랜만에 엄마, 고모, 누나, 사촌동생들과 가볍게 그리고 즐겁게 맥주 한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결혼 적령기에 여자친구조차 없는 처지다 보니 식구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나오게 마련이고, 누구와 어떻게 결혼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흘렀다. 엄마와 고모께 있어서 배울만큼 배운 나는 부족한 것 없는 사람을 만나 서울에 내집 하나 정도는 마련함으로써 강원도라는 촌에서 나고 자란 내 신분을 한단계 발전시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신들께서 스스로 '신분상승을 해야 한다'고 표현하실 정도로 당신들의 욕망은 노골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기이한 모순이 내재돼 있다. 사실 난 좋은 집안이란 게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게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내가 우리 집안보다 나은 집안의 어떤 아가씨와 결혼함으로써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면, 역으로 우리 집안보다 못한 어떤 집안의 아가씨가 나와 결혼함으로써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내가 우리 집안보다 못한 집안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내가 특별히 손해보는 건 없는 거다. 고로 이를 기를 쓰고 반대할 이유 역시 없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우리 집안보다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내 수준을 낮추는 일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면, 결국 내가 더 나은 집안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품위를 떨구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 나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
결국 내가 보다 나은 집안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허락할 수 있지만, 그 반대를 허락할 수 없다는 주장에는 이중잣대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이로 인한 격렬한 이기심이 깔려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입장만을 고려하게 마련인지라 그런 모순에는 관심이 없고, 이기심을 이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여기에 '약간의'--강한 자 앞에서조차 뻣뻣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진 못한--에고가 더해지면 약한 자 앞에서 강해지는 비열한 행태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강렬한 신분상승욕구를 지닌 분이셨다. 친가 가족들은 거의 대부분 그 욕구를 공유했고, 여전히 하고 있으며, 나도 한때 그 욕구를 공유했다. 다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신분상승은 자본의 형태를 띄기 쉬운데, 나의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는 단 한번도 재물의 형태를 띈 일이 없다.
나에게 있어서 신분상승은 언제나 유명세 혹은 명예를 통한 자아의 확인이자 내 자아에 대한 상대에 대한 강요(?)였어야 했다. 조금은 특이하게도 그 유명세는 항상 뉴튼이나 아인슈타인 정도의 누구나 알만한 역사적인 과학자로서의 유명세여야 했다. 물론 꽤나 오래전 이야기였고, 어느때부터인가 그런 강렬한 욕구가 피곤해졌다. 그렇지만 그 신분상승에 대한 강렬한 욕구에 대해서는 지금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그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조금은 철이 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지만은 않은가보다.
결혼이 신분상승의 도구여서는 안 되고, 나와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 분수껏 살면 된다는 내 주장에는 '아직은 젊어서 뭘 모르고 그런 소리를 하는데, 혈기만 믿고 어리석게 굴지 말고 세상을 더 산 어른들의 지혜에 귀기울이라'는 냉소 섞인 답변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무조건 어른 말을 들으라며 권위로 윽박지르던 예나, 너희도 철이 들면 무슨 얘기인지 이해할 거라며 미래의 불확실성 뒤에 숨는 지금이나, 어른들은 참으로 비겁한 형태로 논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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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어른들만 그런것도 아니고 우리 세대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이겠지. 그 신분상승의 "신분"이라는 것이 서울 시내의 아파트 (혹은 강남의), 결혼할때 다이아 몇부에 다른 보석 몇세트, 애들을 조기유학 보낼 돈, 이런식으로 규정지어지는 걸 보면, 내가 이제 타자의 시선을 견지하게 되어서인지 난 웃음이 나더라. 얼마나 소시민적인가. 결혼을 통해 신분(whatever it is)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너무나 소시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한국에 살지 않아서인가. 나야말로 외국인과 결혼함으로서 한국의 결혼과 그 주변에 엮인 모든 신분제도 내지는 메리트의 showdown을 비겁하게(?) 피해간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한국의 줄세우기에서 영원한 열외자가 되어서 맘은 편하다만. -_-;;;;
나는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하려는 것이 지극히 동물적이고, 야생적인 행동양식인것 같기도 한데..이기적인 유전자의 표출? ㅎㅎ
난 너를 결혼적령기라고 생각하신다는 게 제일 놀랍다.;
queeny // 웃음이 나다니요. orz
noohik // 실제로 모든 욕망은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듯하다.
벨로 // 누난 이미 넘었지요. :p
돈 많은 집안 처자와 일류대를 나온 청년의 결혼은 서로 주고 받는게 있는 거래 아닌가? 청년은 신부 집안의 돈으로 경제적인 안정을 추구할 수 있고 처자는 나는 일류대 나온 사람의 아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고(여기에 시간이 지나면서 나타나는 <경제적인 안정 + 좋은 학벌> 시너지 효과로 더욱 공고해진 새로운 집안의 사회/경제적 안정이 구축될 것이고) 서로서로 득이 되는 윈윈 게임인것 같은데.
결혼이 집안끼리의 결합 거래인 한국의 현실에서 먼저 산 사람들의 충고(협박?)를 비웃는 청춘이라. 그 청춘 부럽다.
글쎄요, 문제는 경제적 안정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데에 있겠죠. 저는 월세든 전세든 형편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두다리 뻗고 잘 자리가 있고, 입에 풀칠할 수 있다면 그 이상의 경제적 능력은 기호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기호에는 많은 돈이 필요가 없다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면 '아직은 세상을 몰라서 그렇지, 조금 겪어봐라. 애 낳고 키우기 시작하면 후회한다' 등의 소위 '일반적인 지혜'에 기대서 이런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잖습니까?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된다는 높은 개연성과 모든 사람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필연성 사이에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즉, 차후에 너가 후회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할 경우, 그렇게 되지 않게 지금의 마음가짐을 견지하도록 도와주는 것도 좋은 것이라는 거죠.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그런 방식들 중 어느 것이 옳고, 어떤 게 틀렸으니 나는 이렇게 살아가겠다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지향하는 삶의 방식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듯, 상대방도 제게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는 원칙의 문제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