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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23 비겁한 어른들 (6)
모든 사회적 폐단의 기저에는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표현으로 상징되는 이중잣대가 깔려 있다. 사실 이게 어쩔 수 없는 것이 '너'와 '나' 사이의 간극은 어마어마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를 통해서만 그 의도를 파악해야 하는 '너의 행위'에 비해,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그 의도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는 '나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은 훨씬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잣대는 항상 다른 사람에게는 깐깐하면서 자기 자신에게는 너그러울 수밖에 없고, 이는 이기심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어제 저녁의 일이다. 오랜만에 엄마, 고모, 누나, 사촌동생들과 가볍게 그리고 즐겁게 맥주 한잔을 마시고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결혼 적령기에 여자친구조차 없는 처지다 보니 식구들이 모이면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나오게 마련이고, 누구와 어떻게 결혼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흘렀다. 엄마와 고모께 있어서 배울만큼 배운 나는 부족한 것 없는 사람을 만나 서울에 내집 하나 정도는 마련함으로써 강원도라는 촌에서 나고 자란 내 신분을 한단계 발전시키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신들께서 스스로 '신분상승을 해야 한다'고 표현하실 정도로 당신들의 욕망은 노골적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기이한 모순이 내재돼 있다. 사실 난 좋은 집안이란 게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그런 게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내가 우리 집안보다 나은 집안의 어떤 아가씨와 결혼함으로써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면, 역으로 우리 집안보다 못한 어떤 집안의 아가씨가 나와 결혼함으로써 신분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내가 우리 집안보다 못한 집안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내가 특별히 손해보는 건 없는 거다. 고로 이를 기를 쓰고 반대할 이유 역시 없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우리 집안보다 못한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내 수준을 낮추는 일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면, 결국 내가 더 나은 집안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품위를 떨구는 일이 된다. 그렇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 나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

결국 내가 보다 나은 집안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허락할 수 있지만, 그 반대를 허락할 수 없다는 주장에는 이중잣대에서 발생하는 모순과 이로 인한 격렬한 이기심이 깔려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입장만을 고려하게 마련인지라 그런 모순에는 관심이 없고, 이기심을 이기심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여기에 '약간의'--강한 자 앞에서조차 뻣뻣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진 못한--에고가 더해지면 약한 자 앞에서 강해지는 비열한 행태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는 강렬한 신분상승욕구를 지닌 분이셨다. 친가 가족들은 거의 대부분 그 욕구를 공유했고, 여전히 하고 있으며, 나도 한때 그 욕구를 공유했다. 다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신분상승은 자본의 형태를 띄기 쉬운데, 나의 신분상승에 대한 욕구는 단 한번도 재물의 형태를 띈 일이 없다.

나에게 있어서 신분상승은 언제나 유명세 혹은 명예를 통한 자아의 확인이자 내 자아에 대한 상대에 대한 강요(?)였어야 했다. 조금은 특이하게도 그 유명세는 항상 뉴튼이나 아인슈타인 정도의 누구나 알만한 역사적인 과학자로서의 유명세여야 했다. 물론 꽤나 오래전 이야기였고, 어느때부터인가 그런 강렬한 욕구가 피곤해졌다. 그렇지만 그 신분상승에 대한 강렬한 욕구에 대해서는 지금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그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조금은 철이 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지만은 않은가보다.

결혼이 신분상승의 도구여서는 안 되고, 나와 뜻이 맞는 사람을 만나 분수껏 살면 된다는 내 주장에는 '아직은 젊어서 뭘 모르고 그런 소리를 하는데, 혈기만 믿고 어리석게 굴지 말고 세상을 더 산 어른들의 지혜에 귀기울이라'는 냉소 섞인 답변밖에 돌아오지 않았다. 무조건 어른 말을 들으라며 권위로 윽박지르던 예나, 너희도 철이 들면 무슨 얘기인지 이해할 거라며 미래의 불확실성 뒤에 숨는 지금이나, 어른들은 참으로 비겁한 형태로 논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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