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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3 노회찬과 민주주의 (6)
  2. 2008/04/06 왜 멀쩡히 살아있는 표를 죽었다 하나 (4)
기사 : 진보학자 6인 "노회찬 완주는 진정한 고뇌와 결단"
기사 : 비난 폭주 "노회찬, 완주해서 만족스러우신가"

물론 노회찬을 칭찬한 진보학자 6인과 노회찬을 비난하는 네티즌들이 같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선거 전후로 입장의 차이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원래 인간이란 결과를 놓고 원인을 다시 재단하는 삽질을 끊임없이 하는 동물이니까... 게다가, 결과적으로는 심상정이 물러난 경기도에서는 단일화 효과를 못 봤고, 노회찬이 완주한 서울에서는 비단일화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점에서... 게다가 그 효과는 사실 한나라당이 봤으니, 반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이제와서 노회찬한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그 심정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한명숙이 진 게 노회찬 때문이라고?

사실 한명숙이 오세훈에게 진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간편한 타겟이 노회찬일 뿐이다. "노회찬이 사퇴했더라면 한명숙이 이겼을 것이다"가 참이라고 해서 "한명숙이 진 것은 노회찬 때문이다"가 참이 되진 않는다. 오세훈이 사퇴했더라도 한명숙이 이겼겠지만, 오세훈이 사퇴를 안 했기 때문에 한명숙이 진 건 아니잖아. 그거랑 그건 다른 문제라고? 논리적으론 똑같다. 오세훈 사퇴가 한명숙 패배의 원인이 아니라면 노회찬 사퇴도 한명숙 패배의 원인은 아니다. 한명숙에게 표를 던진 자신과 노회찬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이 다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같은 공동의 목표--한나라당 반대--를 갖고 있을 거라는 자기 중심적 전제가 있기 때문에 노회찬이 미운 것 거지.

다만 그 공동의 목표가 있다는 전제가 잘못됐을 뿐. 정말이지, 한나라당의 표는 우리표가 아니지만, 진보정당의 표는 표면적으론 아니더라도 사실은 우리표라고 믿는 맹랑한 권리의식(sense of entitlement)은 어디서 나왔나 몰라. 정말 그런 공동의 목표가 있다면, 노회찬이 출마했더라도, 유권자들이 노회찬 대신 한명숙에게 표를 던져서라도 한명숙이 이겼을 거다. 결국 한명숙 패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들은 그런 공동의 목표 없이 노회찬을 찍은 유권자들이어야잖은가? 그러면 왜 노회찬을 찍은 유권자들을 비난하는 대신에 노회찬을 비난할까?

노회찬이 원인 제공을 했다고? 그러면 노회찬의 완주 결정은 아무런 원인없이 허공에서 튀어나왔나? 민주당이 자신들의 왼쪽을 끌어안으려는 노력 부족, 대한민국 전반에 걸친 진보 정치에 대한 무관심 등 다양한 원인들이 있을 텐데, 왜 그 원인들은 비난하지 않나? 사회 모든 현상은 어떤 현상의 원인인 동시에 다른 현상들의 결과다. 그런 복잡한 인과관계를 다 걷어치우고 한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건 대단히 간편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단히 멍청한 일이다.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 2아웃,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노히트 노런을 앞둔 투수가 또 다시 볼넷을 내줬다. 평소의 한계 투구수에 이미 육박한 상황. 다음 타자에게 초구로 직구를 던졌는데 홈런을 맞고 2:1로 역전패를 했다면, 패배의 원인이 뭐임? 직구 승부? 그전의 볼넷? 고작 1점을 올린 타선? 투수 교체를 안 한 감독? 결과를 놓고 보니 A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B 또한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해서, B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A를 피하는 것뿐만 있는 건 아니잖은가.

노회찬에게 표를 던진 3.3%의 유권자들에게는 한나라당 심판보다도 더 급한 우선순위가 있었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더 급한 우선순위가 뭐든 간에, 결국 한명숙이 패배한 것은 노회찬이 사퇴하지 않은 것도 변수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3.3%의 유권자들에게 왜 한나라당 심판이 그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인지를 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게 끊임없는 사표논란의 본질인데, 노회찬이 가져간 3.3%는 사표가 아니라 캐스팅 보트라고 하는 거다.

결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건 사표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잃은 표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는 신성불가침의 대의와 명분이 있다고 믿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대신, 단지 쉽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들이 지지한 후보를 비난한다면, 앞으로도 그 3.3%의 표는 그들이 버리기 전에는 절대로 찾아올 수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3.3%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선택의 여지를 제거함으로써 내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3.3%의 사람들이 가진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는 민주주의여야 한다. 내 대의명분은 워낙 훌륭해서 너의 "하찮은" 선택권 따위 묵살해도 좋다고 믿는다면, 무슨 놈의 민주주의가 그러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진짜 적은, 소위 반민주적이라는 한나라당이 선거를 이기는 것보다, 한나라당을 이겨야 한다는 명분으로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뺏어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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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마다 나오는 사표 논쟁. 우리는 보통 선거의 판세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표를 '죽은 표'라 부르며 낭비된 선거권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럴 바에는 최악을 피해 차악에 표를 던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견 일리도 호소력도 있어 보이는 이 주장은 사실 심각한 도덕적 결함을 갖고 있다.

내가 행사한 한표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 한표는 '당신이 내 한표를 흡수하기를 원한다면 나에게도 손길을 뻗쳐야 한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고 내 표를 가져가려고 '사표' 운운하는 것은 인생을 날로 먹겠다는 도둑놈 심보에 불과하다. 지금 당장의 선거에서는 내가 던진 한표가 힘을 발휘할 수 없겠지만, 그 한표 때문에 역사는 또 한걸음 발전하는 법이다.

민주주의는 의견의 무게가 동일한 개개인이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혹은 상대방에게 설득당하거나'를 통해서 작동한다. 반드시 지켜내야 할 것만 같은 신념이 없다면 설득당하면 그뿐인 거고, 신념이 있다면 계속해서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면 된다. 그 결실을 언제 맺느냐, 그건 민주주의 본질과는 전혀 다른 문제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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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사표, 총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