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6/03 노회찬과 민주주의 2 (5)
  2. 2010/06/03 노회찬과 민주주의 (6)
  3. 2006/10/03 색깔이 위험하다고? (2)
노회찬 이야기는 이미 한번 했지만, 아침에 뉴스 접하고 생각나는대로 갈겨 쓰고는, 아고라에 올릴 겸 오후에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서 김에 한번 더. 뭐, 따지고 보면 같은 내용.

보통 선거에서 '되지 않을 사람에게 투표하는 건 바보짓'이라는 소위 사표론이 있다. 2004년 유시민이 민노당 사표론을 말해서 시끄러운 적이 있었는데(관련기사), 그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이번에 펑~하고 제대로 터졌다. 사표론의 핵심은 어차피 개인의 표는 적게는 몇십, 많게는 몇억 중에 하나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 한표는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다는 거다. 그 표들이 충분히 모여 당선자를 만들어낼 때에, 그 한개의 표는 그중의 하나로서 유효한 가치를 갖는다는 논리다. 뭐, 일견 그럴 듯한데, 이는 사실 전형적인 강자의 혹은 독재의 논리다.

사표론에 따르면 자기 표가 유효하려면 될 사람을 뽑아야 된다. 이렇게 되면 자기 생각에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뽑아야 된다. 어라, 뭔가 좀 이상하잖아? 보통 선거전 여론조사를 하면 지지후보도 묻지만 동시에 누가 당선될 것 같은가도 묻는다. 만약 사표론에 충실하자면, 이 당선 가능성에 대한 조사 결과가 선거 결과와 같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왜?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에 이야기를 살짝 바꿔 보자. 선거와 자식 성별은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런데 선거의 결과가 예측하기 어렵다면 선거 전에 누구에게 던진 표는 사표고, 누구에게 던진 표는 사표가 아닐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정보의 문제다.

요새야--이번 같은 황당한 경우를 제외하고는--여론조사도 비교적 정확하고, 그 결과도 투명하게 공개가 되니까, 선거의 결과를 예측하는 게 가능하지만, 정보를 수집하는 건 물론이고, 그 정보를 유통시키는 것도 어렵다면? 결국 선거 결과에 대한 예측을--주변 사람들과 이야길 나누고, 길가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길 줏어듣는 등의--철저하게 사적 경험인 경험을 통해서 하게 된다. 이 경우 샘플링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예측과 실제 결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 표가 죽을지 살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 그러면 요새처럼 정보가 범람하는 세상에선 어떨까? 정보가 범람한다고는 해도, 사실 선거 전에 선거의 판세를 그나마 가장 정확히 예측하는 건 여론조사다. 선거전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세훈과 한명숙의 지지율 차이가 두자릿수가 났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사표론에 따라 투표를 한다면, 자기 표가 죽는 걸 막기 위해 전부 오세훈에게 투표를 해서 오세훈이 90% 이상의 지지율로 당선이 됐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왜?

나의 표는 소중하니까.

그렇다, 당선 가능성과는 별개로 민주주의에서 투표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표현하는 행위다. 남들의 희망 사항과는 별개로 나의 희망 사항을 표현하는 행위다. 사표론에 선행하는, 투표를 통해 실현하는 정치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정치적 신념이 비슷하고, 나의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집권하기를 바라는 희망의 표현이다.

물론 "지금 노회찬을 찍은, 사표를 던진 사람들이 아니라, 그 동기 부여를 한 노회찬을 비난비판하는 것뿐이라고"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표를 던진 사람의 심정이나, 당선이 안 될 걸 알고도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이나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적 신념의 표현이란 의미에서 그 본질은 마찬가지다.

오세훈과 한명숙의 지지율이 불과 0.6% 차이라고 하지만 표수로 2만 표가 넘는다. 당신의 한표는, 적게는 투표를 한 서울의 유권자 약 450만분의 1, 많이 쳐줘도 바로 그 0.6% 차이에 해당하는 약 2만6천분의 1의 가치밖에 없다. 당신의 에고(ego)가 얼마나 크던간에,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한표가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었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단 한명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공휴일인데도 어디 놀러가지 않고, 임시공휴일이지만 출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귀찮음을 무릎쓰고 투표를 한 건, 내 한 표가 나한테는 2만 6천분의 1이라는 보잘것없는 수치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당선될 리가 없으니 선거에 나오지 말라는 말, 그 사람에게 던진 한표는 사표니 그 사람을 찍지 말라는 말은, 내 한표는 선거 결과에 영향이 없으니 투표하지 말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당선될 리도 없고, 별 의미없이 버려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향하는 게 민주주의라면 존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는 늘 단 한명의 후보만이 서있을 테고, 민주시민에게 그것보다 비참한 건 없다.

자본주의가 문제점도 많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작동하는 이유는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기 때문이다. 쏘나타가 좋다고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도, 모든 사람에게 쏘나타가 적합한 건 아니다. 그걸 간파한 누군가는 마티즈가 필요한 사람에게 마티즈를 제공한다. 물론 차체 디자인, 재질, 엔진, 시트 등을 완전히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정도의 선택권을 제공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그 이전의 어떤 시스템보다 소비자들에게 많은 선택권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선택권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옷을 사러 갔는데, 옷 가게도 하나뿐, 옷 브랜드도 하나뿐인데다가, 똑같은 디자인의 청바지에 하얀 면티밖에 없는 세상을 떠올려 보라. 그 청바지, 그 면티의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 삶이 그다지 풍요롭다는 생각은 안 들 거다. 그게 바로 우리가 흔히 경계하는 독점이란 거다.

유권자가 서로를 다그치며 서로의 선택권을 줄여 나가다보면 남는 건 독재자다. 우리가 노회찬에게 물어야 하는 건 "왜 끝까지 남았냐?"가 아니라, 지상욱, 노회찬, 한명숙, 오세훈 모두에게 "저 사람들과 차별되는, 당신만이 우리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뭐냐?"여야 한다. 우리의 고민은 3%니까 그냥 없애는 낫지 않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3%를 30%로 만들 수 있을까여야 한다. 그들에게서 듣고 싶은 답변이 없다면 "다른 사람 또 없어?"여야지 "너, 너, 너는 어차피 안 되니까 껃여"라고 다 처내다보면, 남는 건 정치적 독과점이다. 이걸 다른 말로는 독재라고 부른다.

@ 물론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다. 자본주의와 달리 대부분의 대의민주주의는 승자독식 시스템이기 때문에, 다양한 선택권이 항상 실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다양성은 여전히 "이번엔 뽑아주지만 실수하면 다음번엔 너 말고도 사람 많아"라는 형태로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충술히 수행한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기사 : 진보학자 6인 "노회찬 완주는 진정한 고뇌와 결단"
기사 : 비난 폭주 "노회찬, 완주해서 만족스러우신가"

물론 노회찬을 칭찬한 진보학자 6인과 노회찬을 비난하는 네티즌들이 같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선거 전후로 입장의 차이를 일으키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원래 인간이란 결과를 놓고 원인을 다시 재단하는 삽질을 끊임없이 하는 동물이니까... 게다가, 결과적으로는 심상정이 물러난 경기도에서는 단일화 효과를 못 봤고, 노회찬이 완주한 서울에서는 비단일화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점에서... 게다가 그 효과는 사실 한나라당이 봤으니, 반한나라당 지지자들이 이제와서 노회찬한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그 심정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한명숙이 진 게 노회찬 때문이라고?

사실 한명숙이 오세훈에게 진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 가장 간편한 타겟이 노회찬일 뿐이다. "노회찬이 사퇴했더라면 한명숙이 이겼을 것이다"가 참이라고 해서 "한명숙이 진 것은 노회찬 때문이다"가 참이 되진 않는다. 오세훈이 사퇴했더라도 한명숙이 이겼겠지만, 오세훈이 사퇴를 안 했기 때문에 한명숙이 진 건 아니잖아. 그거랑 그건 다른 문제라고? 논리적으론 똑같다. 오세훈 사퇴가 한명숙 패배의 원인이 아니라면 노회찬 사퇴도 한명숙 패배의 원인은 아니다. 한명숙에게 표를 던진 자신과 노회찬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이 다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같은 공동의 목표--한나라당 반대--를 갖고 있을 거라는 자기 중심적 전제가 있기 때문에 노회찬이 미운 것 거지.

다만 그 공동의 목표가 있다는 전제가 잘못됐을 뿐. 정말이지, 한나라당의 표는 우리표가 아니지만, 진보정당의 표는 표면적으론 아니더라도 사실은 우리표라고 믿는 맹랑한 권리의식(sense of entitlement)은 어디서 나왔나 몰라. 정말 그런 공동의 목표가 있다면, 노회찬이 출마했더라도, 유권자들이 노회찬 대신 한명숙에게 표를 던져서라도 한명숙이 이겼을 거다. 결국 한명숙 패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 제공자들은 그런 공동의 목표 없이 노회찬을 찍은 유권자들이어야잖은가? 그러면 왜 노회찬을 찍은 유권자들을 비난하는 대신에 노회찬을 비난할까?

노회찬이 원인 제공을 했다고? 그러면 노회찬의 완주 결정은 아무런 원인없이 허공에서 튀어나왔나? 민주당이 자신들의 왼쪽을 끌어안으려는 노력 부족, 대한민국 전반에 걸친 진보 정치에 대한 무관심 등 다양한 원인들이 있을 텐데, 왜 그 원인들은 비난하지 않나? 사회 모든 현상은 어떤 현상의 원인인 동시에 다른 현상들의 결과다. 그런 복잡한 인과관계를 다 걷어치우고 한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건 대단히 간편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단히 멍청한 일이다.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 2아웃,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노히트 노런을 앞둔 투수가 또 다시 볼넷을 내줬다. 평소의 한계 투구수에 이미 육박한 상황. 다음 타자에게 초구로 직구를 던졌는데 홈런을 맞고 2:1로 역전패를 했다면, 패배의 원인이 뭐임? 직구 승부? 그전의 볼넷? 고작 1점을 올린 타선? 투수 교체를 안 한 감독? 결과를 놓고 보니 A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B 또한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해서, B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A를 피하는 것뿐만 있는 건 아니잖은가.

노회찬에게 표를 던진 3.3%의 유권자들에게는 한나라당 심판보다도 더 급한 우선순위가 있었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 더 급한 우선순위가 뭐든 간에, 결국 한명숙이 패배한 것은 노회찬이 사퇴하지 않은 것도 변수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본질적으로, 3.3%의 유권자들에게 왜 한나라당 심판이 그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인지를 설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게 끊임없는 사표논란의 본질인데, 노회찬이 가져간 3.3%는 사표가 아니라 캐스팅 보트라고 하는 거다.

결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건 사표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잃은 표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는 신성불가침의 대의와 명분이 있다고 믿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대신, 단지 쉽고 간편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과 다른 사람들이 지지한 후보를 비난한다면, 앞으로도 그 3.3%의 표는 그들이 버리기 전에는 절대로 찾아올 수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3.3%의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선택의 여지를 제거함으로써 내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3.3%의 사람들이 가진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방법을 모색하는 민주주의여야 한다. 내 대의명분은 워낙 훌륭해서 너의 "하찮은" 선택권 따위 묵살해도 좋다고 믿는다면, 무슨 놈의 민주주의가 그러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진짜 적은, 소위 반민주적이라는 한나라당이 선거를 이기는 것보다, 한나라당을 이겨야 한다는 명분으로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뺏어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자유민주주의는 만인은 평등하다는 정신에 기초한다. 이는 개개인은 누구나 의사 결정과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갖고, 이에 기초해 표현된 의사에 대해 어떤 특정 개인의 의견도 다른 특정 개인의 의견에 대해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모든 개개인의 의견은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독점적 권위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개인과 개인간의 갈등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다수가가 선호하는 가치에 소수자는 '한시적'으로 따르기로 동의함으로서 중재된다. 여기서 '한시적'이라고 함은 개인의 의사 결정의 '자유'로 인해 다수의 의견이 불변성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로, 소수자는 의사 표현의 자유가 부여한 권리를 통해 타인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도록 끊임없이 설득함으로서 자신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이 되도록 노력할 수 있다.

어떤 개인의 의견도 의견 그 자체로는 아무런 권위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과 대치되지 않는 한 어떤 사상도 민주주의나 체제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는 사회주의여도 상관이 없고, 친북노선이어도 상관이 없다. 민주주의에 대한 유일한 위협은 다수의 동의를 통하지 않은 특정 개인의 의견이 권위를 가질 수 있다는 독재의 가능성에 침묵하는 것 뿐이다. 그 이외의 주장에 대해서는 그 내용의 합리성을 논해야할 뿐, 그 주장이 민주적 가치에 부합하느냐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런 관점에서,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에 진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색깔이 민주주의를/한국사회를 위협한다'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은 정녕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색깔은 최악의 경우에도 고작 눈을 아프게 할 뿐이다.

2006. 5. 28.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