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5/19 중앙은행과 통화공급
  2. 2010/05/17 창조적 파괴
관련글
창조적 파괴
돈의 가치, 그리고 부(富)

일반적으로 노동자가 실질적으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원은 자신의 노동력뿐이다. 그 노동이 광산에서 석탄을 캐는 것일 수도 있고, 카페에서 커피를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동사무소에서 민원을 받는 것일 수도 있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일 수도 있듯이, 그 형태는 다양하지만, 결국 그 결과는 무형의 노동력이 유형의 상품이나 무형의 서비스로 변환된다는 거다. 돈이라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의 교환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 등장한 또 다른 형태의 자원(resource)일 뿐. 돈이 등장하기 전에도 물물교환을 통한 상거래는 언제나 있어 왔다는 걸 상기하면 되겠다.

결국 한 사회나 국가의 부(富)란 그 사회에 돈이 얼마나 많으냐가 아니라,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노동력이 얼마나 생산성이 높으냐, 즉, 일정량의 노동으로 얼마나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해내느냐에 달린 셈이다. 여기까지만 써 놓으면 사실 맑스의 노동 이론이랑 통하기 때문에, 자본가는 결국 노동자들의 노동력으로 일군 결과 중 일부를 정당한 이유없이 착취한다는 결론이 나는데, 여기에 '시간 선호도(time preference) 및 위험 감수(risk taking)'의 개념이 들어가면 자본가의 역할이 꽤나 중요해진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게 될 테니 일단은 맑스의 노동 이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가 보자.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부유한 사회는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에 비해 노동력의 가치가 높은 사회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선진국에 가면 인건비가 비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이유가 정확히 이거다. "잘 산다 = 노동력이 가치가 높다 = 인건비가 비싸다"인 거다. 그리고 이 '인건비가 비싸다', 이 부분에서 돈의 개념이 다시 들어온다. 앞서서 돈은 다양한 상품과 재화의 가치를 교환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했는데, 이를 위해 교환 가치를 정량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 배 한개로 사과 두개를 맞교환할 수 있다면 배는 사과 2배의 가치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시장에 나와 있는 상품과 서비스의 종류가 많아지면, 매번 한 가지 상품에 대한 다른 상품의 가치를 매기는 일은 성가신 일이다. 이를 위해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의 균일한 척도로서 돈이 등장한다. 즉, 배 한개와 사과 두개의 가치가 같다고 말하는 대신, 배 한개는 천원, 사과 한개는 오백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원'이라는 가치의 척도가 있다면, 이를 통해 다양한 상품의 교환이 훨씬 용이해진다. 그렇지만 이는 대단히 임의적인 가치의 척도로, 한국에서는 '원'이라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달러'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위안', 일본에서는 '엔', 유럽에서는 '유로'라고 하는 서로 다른 척도를 사용한다. 즉, 배 한개는 천원이기도 하고, 백엔이기도 하며, 1달러이기도 하다. 우리는 오늘날 원, 달러, 유로 등의 법정 불환 통화(fiat money: 쉽게 말해 종이로 된 돈)이라는 가치의 척도를 이용하지만, 예전에는 은화와 금화 따위를 이용했었다. 그리고 여기에 인플레이션의 비밀이 있다.

이미 몇차례 언급했지만, 부라는 건 노동력이 다른 자원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배력을 갖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에르메스별의 화장지 회사 예를 들면서, 화장지의 가격이 떨어짐으로써 에르메스별 사람들이 더 부유해진다고 했는데, 이때 화장지의 화폐 가치가 떨어진 이유는 노동의 화폐 가치를 고정시켜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세계에서는 역사적으로 노동의 화폐 가치가 고정돼 있던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이유인즉슨, 금과 은을 화폐로 이용하던 시절, 중상주의 경제학 하에서 사람들은 금과 은이 많으면 부자가 된다고 믿었기에 끊임없이 금과 은을 찾아 헤맸다. 그 결과 노동생산성이 증가하여 상품과 서비스의 질과 양이 다양해짐에도 불구하고, 금과 은의 양도 같이 늘어났기 때문에 상품 가격의 하락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비교적) 고정된 상품의 화폐 가치에 비해 노동의 화폐 가치, 오늘날로 말하면 임금이 꾸준히 늘어난 거다. 결국 유통되는 돈/통화의 양이 사회 전체의 부를 결정한다는 착각 때문에 늘어나는 노동 생산성과 맞먹는 통화 공급이 꾸준히 있어 왔다. 오히려 통화 공급량이 생산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양보다 많아서 이들의 가격이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일어나는 일이 많았다.

이렇게 인플레이션에 길들여진 이상, 이를 되돌리는 일은 쉽지 않다. 이유인즉슨,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에 익숙해 있다면 매년 그와 맞먹거나 그보다 더 빠른 소득 증가를 기대한다. 그런데 어느해에 갑자기 소득이 줄어든다고 하면, 상당한 불만/불안심리가 생겨날 거다. 통화 공급의 축소로 소득 뿐만이 아니라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같이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를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수긍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부의 척도는 화폐의 양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미 부=화폐라고 수백년간 길들여졌기 때문에 이 심리적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말이다. 1920-30년대의 대공황의 원인 중 하나로 바로 이 통화 공급 부족을 꼽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당시에도 이미 지폐와 동전을 돈으로 사용하긴 했지만, 그 당시의 지폐는 금본위제를 따랐다. 즉,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이 원하면 언제든지 그 돈을 은행에 갖고 가서 정해진 양의 금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오늘에도 돈을 금으로 바꾸는 건 가능하지만 그 양은 금의 시세에 따라 변한다. 금본위제에서는 금의 시세라는 게 없이 이미 약속된 양이 있기 때문에 돈=금인 셈이다.) 그런데 금이란 건 금광을 찾아 캐내야 하는 것이다보니, 그 양이 쉽게 늘었다 줄었다 하지 않기 때문에 금의 양이이 노동 생산성을 따라 같이 움직이지 못하다보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제멋대로 일어날 수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결국 금본위제는 폐기되기에 이르렀고, 오늘날의 중앙은행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오늘날 이들의 역할은--역사적으로는 다양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차례 변해왔지만--꾸준한 통화 공급 조정을 통한 인플레이션 조절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이들에게 '공짜로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권한'을 쥐어준다. 이들이 이 권한을 이용해서 어떻게 통화 공급을 조절하는지는 내일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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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이 1999년 야심차게(?) 내놓은 유로화가 근 10년만에, 그리스의 재정 위기로 휘청거리더니 유로화가 죽네 사네 하는 바람(관련기사)에 한국 증시 및 환율이 미친년 널 뛰듯하고 있다. 이 기회에 예전에 시작했다가 중도 포기해버린 경제 이야기를 다시 조금 시작해볼까 한다. 최종 목적지는 도대체 유럽은 무슨 생각으로 유로를 만들었고, 최근 몇년, 잘 나갈 때는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로서의 지위를 뺏어올 수도 있을 것 같더니, 이제 와서 왜 죽는 소리를 하는지, 유로화의 미래는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다.

현재 계획은 하루에 한편씩해서 4-5편 정도로 이번주 안에 이야기를 끝내는 건데, 두고 봅시다. ㅡㅠㅡ 아무튼 일단은 유로화랑은 아무~ 상관 없어 보이지만, 개인적으로 돈과 부(富)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이게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바, 창조적 파괴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려 한다. 예전에 썼던 글 "우리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나"와도 일맥상통하는 글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는 이 창조적 파괴로부터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중앙은행의 존재와 역할, 유로화의 탄생과 몰락의 순서로 이야기를 진행할 계획.

자, 그럼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앞서 우주 저편의 은하계의 행성에 생명체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백만명 살고 있다고 해보자. 이 생명체는 번식도 하지 않고, 늙거나 죽지도 않지만 그 외의 하는 짓은 인간과 무척이나 닮았다고... 이 행성의 이름은 에르메스. 에르메스에는 은행이 없어서 이곳 사람들은 저금도 안 하고, 대신 돈을 빌리지도 않는다. 소득에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일인당 1년 소득은 5천만원으로, 늘 자기가 번 돈만큼만 딱 털어서 쓴다. 에르메스의 경제는 완벽한 평형 상태(equilibrium state)에 있다.

이 에르메스에 아누스(Anus, 낄낄낄)와 크레피투스(Crepitus)라는 두루마리 화장지 회사가 2개가 있는데 에르메스의 화장지 시장을 정확히 2등분하고 있다. 두 회사는 1년에 각각 5백만 두루마리씩, 총 천만 두루마리의 화장지를 생산(에르메스 사람들은 연간 1인당 10두루마리의 화장지를 소비한다)하며, 두 회사의 화장지 모두 두루마리당 500원으로, 연간 총매출이 25억이다. 두 회사 모두 각각 40명씩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이들의 평균 연봉은 4천만원으로, 1년에 인건비가 16억, 그외 원자재, 공장 가동비 등의 기타 생신비로 5억이 든다. 결국 각 회사의 순이익인 4억이 두 회사의 주인 갑(아누스)과 을(크레피투스)에게 돌아가는 셈.

갑과 을은 모두 자동차 광으로 이들은 매년 5억 중 3억을 자동차를 사서 모으는데 사용해 왔다고 하자. 그러던 어느해에 갑이 자동차를 사는 대신에 공장에 새로운 기계를 설비하기로 결심한다. 갑이 자동차를 사지 않기로 함에 따라 갑이 자동차를 사오던 회사의 매출은 3억원 줄어들게 된다. 회사는 어쩔 수 없이 3억원 어치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연봉 7500만원짜리 직원 4명을 해고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서는 걱정마시라. 갑은 이들 4명이 갖고 있는 다양한 기계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를 이용하기 위하여 이들에게 3억원을 주고 공장에 새로운 생산장비를 설계, 설치하게 시킨다. 새로운 장비의 도입으로, 이듬해 아누스의 화장지 생산성이 높아져서 40명의 직원이 1년에 천만 두루마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화장지의 생산 단가가 낮아짐에 따라 아누스는 화장지의 가격을 500원에서 300원으로 낮춘다.

에르메스에서는 아누스의 화장지 가격이 더 싸지자 아누스 화장지를 찾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결국 천만 두루마리를 모두 판매한다. 결국 아누스는 더 낮은 화장지 가격에 불구하고, 총매출은 30억원(천만 두루마리 곱하기 300원)으로 늘어나게 된다. 여기서 잠깐! 어차피 은행도 없고, 가진돈을 톡 털어 쓰는 게 습관이 된 에르메스 사람들이 화장지 값이 500원에서 300원으로 줄어들었다고 굳이 일년에 2000원(200원 곱하기 10두루마리)을 아끼려 할 이유가 없지 않나? 어차피 이 2000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옳으신 말씀.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해명(?)을 할 테니 잠시 기다리시라.

이제 크레피투스를 살펴보자. 뭐, 사실 살펴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 게, 아누스가 천만 두루마리의 화장지를 파는 바람에 크레피투스는 그해에 쫄딱 망했고, 을은 물론 나머지 40명의 직원들도 실업자가 됐다. 그리고 앞선 자동차 공장에서 실직한 4명도 아누스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짐에 따라 실업자가 총 45명이 발생했다. 아누스가 기술 개발한 결과로 채무도, 채권도, 실업자도 없던 평화로운 에르메스에 갑과 아누스의 욕심 때문에 실업자가 45명이나 발생했단 말이야? 이럴 수가!

그러나~ 이야기의 끝은 이게 아니다. 다시 아누스로 돌아가보자. 아누스의 경우 매출이 25억에서 30억으로 늘어남에 따라, 갑이 40명의 직원들의 연봉을 4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올려준다. 즉, 회사의 인건비가 16억에서 20억으로 늘어난 셈. 그렇지만 그러고도 갑의 몫인 순이익이 5억이 남게 된다. (30억 빼기 20억 빼기 5억(원자재 및 공장가동비 등의 기타 생산비).) 그래서 갑은 올해에는 3억짜리 자동차 대신에 4억짜리 자동차를 사기로 결심한다. 또한 아누스의 직원들에게는 천만원이라는 잉여 자금이 생겼다. 물론, "이 돈을 뭐에 쓰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동안 일년에 4천만원을 벌어 딱 4천만원씩 쓰면 됐는데 말야.

이렇듯 경제에서 평형 상태가 깨지면 실업자가 되거나 소득이 주는 것처럼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고, 소득이 늘어나는 것과 같이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돈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듯 소득에 잉여가 생긴 사람들은 소비든 투자든 어떤 형태로든 이 돈을 쓸 곳을 찾게 된다.

갑의 경우 소득이 4억에서 5억으로 1억, 아누스의 직원 40명은 소득이 4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4억(천만 곱하기 40명) 늘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에르메스별의 사람들은 모두 화장지 값으로 연간 2000원만큼의 돈을 아끼게 됨으로써, 잉여가 20억(2000원 곱하기 백만명)이 발생했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25억으로 크레피투스가 그동안 매년 올리던 매출과 같은 양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요세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의 핵심이다. 갑의 기술개발이 얼핏 보기에는 50억짜리 화장지 산업을 30억짜리 산업으로 거의 반토막 내버린 걸 보면 언뜻 보기엔 파괴적이지만, 기존에 존재하던 산업의 파괴가 새로운 산업 창조의 씨앗이 된다는 이야기.

25억의 잉여자금이 발생함에 따라 이 자금을 이용하여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산업, 예를 들면 컴퓨터의 개발 따위가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자금 못지 않게 중요한 건, 이런 새로운 산업에 일할 노동자--앞서 말한 45명의 실업자--역시 생겨난다는 거다. 물론 화장지와 자동차를 생산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스위치 하나 딸깍 켜듯이 컴퓨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다만 창조적 파괴의 과정에 대한 예를 들고자 했던 것 뿐이다.

앞선 예로는 화장지 이야기만 했지만,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산업 별로 생산성이 향상된다면 끊임없이 자본과 인력의 잉여가 발생하게 되고, 이렇게 발생한 잉여인력이 잉여자본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산업이 등장한다. 지직거리면 그저 손으로 탕탕 두드리면 해결되던 브라운관 흑백 TV도 한 동네에 간신히 하나씩 있던 시절이 고작 한 세대 전인데, 집집마다 TV가 벽에 걸리고, 30년 전만 해도 구경하기 힘들던 컴퓨터를 가방에 넣어 갖고 다니고, 10년 전만 해도 생소하던 mp3 플레이어가 워크맨, CD 플레이어를 대체하는 이 모든 게 창조적 파괴의 결과다.


@ 한가지만 짚고 넘어가자면 갑과 아누스의 직원이 더 벌어들인 잉여는 5억으로 이는 흔히 분배, 파이를 나누는 효과이고, 에르메스별의 사람들의 소비가 줄어듦으로써 발생한 잉여 20억은 흔히 말하는 성장, 파이를 키운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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