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4/12 문화의 빈곤이 주는 피로 (1)
  2. 2006/10/30 불여우 vs IE 논쟁의 사회적 의미 (14)
미국에 있을 땐 TV를 참 열심히 봤다. 요새 국내에도 미드가 많이 소개되는데 참 볼만한 것들이 많았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Deadwood, The Wire, Firefly 같은 프로그램에서부터 국내에도 꽤 많은 팬을 확보한 House, Dexter 까지. 거기다 시사 코메디쇼인 Jon Stewart Daily Show나 Colbert Report도 거의 매일 꼬박꼬박 챙겨봤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끄는 24(처음 세시즌은 열심히 봤다), Lost, Prison Break 등은 그다지 재미있는 줄 모르겠다.

확실히 내 취향은 한국인의 대중적 취향과는 빗나가는 것 같다. 미국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는 볼만한 TV 프로그램이 정말 없다는 거다. 요새 열심히 챙겨보는 TV 프로는 끽해야 100분 토론이다. 특히 정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딴나라당의 딴소리에 혈압 오르는 재미가 너무 쏠쏠해서 도저히 못 끊겠다, 이건. ㅡㅠㅡ 그 외에는 채널들 돌려봐야 뭐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는 그나물에 그밥 버라이어티쇼들만 넘쳐난다. 근데 이게 뭐 그냥 사람들 여럿이 앉아서 잡담만 한다. 버라이어티쇼에 버라이어티가 없다. orz TV를 보는 일이 피로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한국은 내수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한국 경제의 활로는 수출에 있다는 말들을 자주 한다. 국내 내수시장 규모로는 현재의 국민총생산량을 소비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갑이 A라는 물건을 만들어 파는데, 동네에 A가 필요한 사람이 5명 밖에 없더라는 거다. 그러면 해법은 두가지가 있다. 5개를 만들어서 5개만 파는 방법이 그 하나다. 다른 한 가지는, 굳이 10개 판 돈을 벌어야겠다면, 옆동네에서 A가 필요한 사람을 5명 더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갑이 물건 10개를 팔아서 번 돈으로 같은 동네 사람들이 만든 다른 물건을 사서 쓸 경우, 결국 그 동네는 A 5개 만큼의 경제적 부를 축적한다는 이야기다. 즉, 더 많은 돈을 벌고자 한다면--내수시장이 엄청나게 낭비를 하지 않는 한--수출을 해야만 한다.

좁아터진 내수시장의 결정적인 문제는 그 시장 내의 소비자에게서 선택의 여지를 박탈해간다는 거다. 뭔 말인고 하니, 동일한 아이템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생산자가 n명이 있다면, 각 생산자에게 시장의 규모는 평균적으로 총시장의 1/n로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이때 n이 꽤 크다면 시장의 규모가 너무 협소해서, 생산비가 많이 드는 생산자는 경쟁에서 패할 수밖에 없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생산자의 수는 내수시장의 규모에 비례하게--꼭 정비례는 아니더라도 양의 상관관계를 갖게--마련이고, 작은 시장 내부의 소비자는 소수의 생산자들에게서 제공되는 제품들 중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민국 문화산업의 비극이 숨어있다. 사실 텔레비전, 전화기, 냉장고,  세탁기, 심지어는 옷이나 집 까지도 남들이랑 다 똑같은 걸 사용하더라도 삶이 근본적으로 빈곤해지진 않는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TV 프로그램, 영화를 보고,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시장 경제체제하에서 이런 컨텐트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애초에 이런 것들이 많은 소비자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본은 컨텐트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자본의 유일한 고민은 더 큰 자본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다. A가 잘 팔리면 A만 만들면 그뿐이지, A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B까지 만들어줄 이유 따위는 없다. 이런 체제는 다수의 취향과 다른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소비할 문화를 남겨주지 않고, 결국 시간이 지나다보면 취향이 다른 소수자들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반강제적으로 같은 문화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다수의 취향을 닮아갈 것이다. 자본은 기본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으로 표현되는 양성 피드백을 통해서 몸집을 불려나간다.

경쟁적 자본주의를 숭배하기는 미국이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못하지는 않다. 그리고 그 결과로 미국도 최근에는 대중의 입맛에 맞는 reality tv show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가지 차이라면, 미국은 절대 다수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라 할지라도 이를 생산해내고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시장의 규모가 있다는 거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 중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을 선택할 여지가 있고, 이때 자신과 취향이 동일한 소수자들끼리 연대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세력화를 통해 꾸준히 자신들이 즐기는 문화를 누군가는 생산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거다. 시장의 규모란 소비자의 머릿수로 결정될 뿐, 전체 시장 규모에 대한 비율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비록 전체 국민의 극히 일부만이 소비할 뿐이라 할지라도 이를 생산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시장의 규모가 없는 한국에서 문화적 다양성이 자리잡을 여지란 쥐똥만큼도 없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자본주의 체제 하에선 말이다.

@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름끼치게 획일적이냐면, 이런 얘기만 해도 빨갱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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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양한 의견이 개진된 주제에 뒷북을 치며 합류할 때에는 그간 쏟아져 나온 의견들을 종합하여 조금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이슈를 바라보며 건설적이고 차별화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한 자세이겠지만, 그럴 역량도 기력도 없는 상태에서 몇자 멋대로 끄적여본다. -_-a

이 블로그에서도 몇차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주인장, 블로그라는 도구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기대가 꽤나 크다. 민족적 단일성이 굉장히 큰 자랑거리라고 생각하는 한국사회에서 개개인은 이런 단일성에 기반한 획일화된 가치체계를 자연스럽게 강요받아온지라, 우리 모두는 다양성의 부족에서부터 자연스레 파생하는 문제ㅡ다양성이 발생(?)했을 때 이를 수용/수렴하는 절차에 대한 이해 부족ㅡ를 안고 있다. 일인미디어가 제공하는 표현의 자유는 그간 매스미디어를 통해 통제되어온 획일화된 가치 체계를 와해시키는 촉매가 될 수 있고, 이에 따라 개개인이 다양한 의견을 접하면서, 서로 다른 의견간 충돌을 일으킬 때 이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느냐에 대해 고민할 여지를 마련해줄 것이라 믿는다. 뭐, 믿는다기보다는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불여우(Firefox) 대 인터넷익스플로러 논쟁은 두가지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첫번째는 논쟁이 불여우 사용자는 IE 사용자를, IE 사용자는 불여우 사용자를 적대시하는 기이한 대결구도로 발전하면서 앞서 언급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성에 대한 몰이해를 아주 구체적으로 표면화시켰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일은 일인미디어 시대 이전부터 비일비재해왔지만, 특정 개인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적대감을 이렇게 공개적이고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던 창구가 그간 많지 않아왔단 점에서 '구체적으로 표면화'시킨 주목할만한 사건으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문제는 의견 개진의 자세에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기본 자세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지만, 다름틀림을 구별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다름과 틀림은 어떻게 다를까?

다름이란 사람들이 내 생각에 동의해주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희망은 사실관계에 기반한 논리정연한 사고와 논거를 통해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즉, "내 생각은 너와 다르다. 그 이유는 이러저러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상대방의 의견은 존중하되 그들이 그런 의견을 개진하는 데에 사용된 논거를 공략하는 데에 있다.

반면에 틀림이란 이런 거다. "네 생각은 틀렸다. 그 이유는 이러저러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고와 논거가 사용됐을지라도, 이런 형태의 의견 개진은 상대방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다른 말로 하면 이렇다. 나와 너 사이의 의견이 갈린 상황에서 대부분의 경우 '나'는 당연히 '나의 논거'가 '너의 논거'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너의 논거'가 '나의 논거'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면 애초에 이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여기서 '너'와 '나'를 뒤바꿔 버려도 논리적 모순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 생각이 '틀렸다'고 믿는 것은 '너'와 '나'를 바꿨더니 논리적 모순이 발생한다는 착각에 기반하며, 이 착각이야 말로 이 모든 논쟁의 구조 속에 담긴 유일한 논리적 모순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에게는 내 판단의 우월성을 확립시키지만, 상대방에게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런 경우에 양자가 대화를 통해 합의에 이르지 않는다면 어떤 경우에도 내 주장의 논리적 우월성은 확보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이야기를 나눠도 끊임없이 평행선을 달릴 경우, '우리는 정말 생각이 다르구나'라고 받아들이고 넘어가면 된다. 사회 구성원 간에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는 해악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개개인이 하나의 의견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획일주의적 사고방식에 너무 익숙한 것 뿐이다. 홍세화 선생 덕분에 너무도 유명해진 볼테르의 한마디를 곰곰히 되새겨볼 때다. '나는 당신의 견해에 반대한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그 견해를 지킬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다.'

물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 있고, 이때에는 우리는 '다수결'을 통해 이런 갈등(?)을 해결한다. 그렇지만 그 경우에도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의견과 더 적은 사람이 동의하는 의견이 있을 뿐이지 옳은 의견과 틀린 의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실'은 옳고 그름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의견'은 옳고 그름을 확인할 수 없다. 옳고 그른 것은 어떤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의견을 갖는 데에 사용된 논거의 사실관계들이다. 예를 들어 보자. 신이 존재한다는 의견과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 인간의 몇천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분쟁을 제공한 주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이야기를 나눠왔고 다퉈왔고 피를 흘려왔지만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때 신의 존재를 다수결로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신이 존재한다'는 의견이나 그 반대의 의견에 대한 옳고 그름은 사실 확인되지 않는다.

불여우 vs IE 논쟁이 제시하는 두번째 사회적 의미는 달을 가리키니 손가락만 바라보는 현상황이다. 이것도 최근에 자주 거론된 이슈 중 하나인데 올블로그에서 회자되는 이슈들 중에 블로그, 브라우저 등 IT 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 그런데 블로그도 브라우저도 모두 궁극적으로는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다. 물론 정보 교환을 위한 도구에 대한 정보도 유용한 정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달을 보라며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달은 안 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바라보는 형상이다. 사실 불여우면 어떻고 IE면 어떠랴. 자기가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사용하면 되는 거지. 궁극적으로 블로그가 제공해야 할 정보는 다양한 사안에 대한 개개인의 다양한 의견이다.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우리 사회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우리의 화제가 가끔은 손가락이어도 괜찮겠지만, 더 많은 경우에 달이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불여우 vs IE 논쟁 자체에 한가지 의견만 첨언하자면, 주인장은 특정 도구의 우수성이나 사용의 편의성을 떠나 대의 혹은 명분론적 관점에서 반IE의 사용을 적극 권장하는 바이다. 주인장이 이해하기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IE를 통해 브라우저 시장에 뛰어들기 전에 이미 웹표준이란 것이 존재했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즈의 시장점유율을 발판삼아 브라우저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웹표준을 무시하며 IE용 표준을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주인장이 오해하고 있다면 이에 대한 태클은 얼마든지 환영한다. ^^,,) 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곧 표준이다'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사회적 규약을 무시하는 소수의 권력 집단에 대해서는 항상 감시의 눈길을 보내야할 뿐만 아니라,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는 사회정의 구현의 관점에서 개개인이 대의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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