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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7 조두순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랩탑도 돌아왔고 하니, 간만에 심각(?)한 글 하나... '나영이 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조두순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들을 조금 짚어보자.


1) 조두순의 형량

나를 비롯한 대다수 국민에게 이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이게 단순히 소아성애 사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강간은 기본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힘의 불균형이 극단적으로 노출되는 폭력적 범죄지만, 아동을 상대로 한 강간은 그 힘의 불균형이 특히나 심하게 나타나는데, 조두순 사건의 경우에는 그 중에서도 폭력성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사건이었다. 이런 사건의 개요만으로도 대다수 사람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데, 법원이 조두순에게 고작 12년형을 선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사건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더더욱 끓어올랐다. 이쯤되면 사실 한번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대한민국에선 뭘 해야 무기징역 정도 받는 거야?


2) 사회적 지위와 사회 정의

이건 사실 좀 오바질하는 게 아닌가 조금 조심스럽기는 한데, 어쨌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개인적으로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작동하는 현실 자본주의/민주주의 하에서 '없는 사람만 피본다'는 통념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나영이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 어머니는 가사 도우미였고, 나영이네 가족은 생활보호대상자였다고 한다. 이들이 조금 더 잘 살았고, 동원할 수 있는 인맥이 약간만 있었더라면, 법이란 걸 판사 마음대로 코에 걸었다 귀에 걸었다 하는 대한민국에서 성범죄가 아니라 살인미수죄를 문자 그대로 덮어 씌워서라도 무기징역은 주지 않았을까라는 의심, 안 할 수가 없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는 나영이가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조두순과 애초에 접촉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조두순이 생활환경이 어려운 아이만을 노리지는 않았을 수 있으니 꼭 그렇지는 않았을 거라고? 물론 반드시 그랬을 거란 건 아니다. 다만, 정확한 통계는 확인 안 해 봤지만, 가난한 동네가 일반적으로 범죄율이 높은 건 맞다. 이는 생활환경이 열악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난한 동네가 치안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꼭 정부와 경찰의 의도적 방관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자들은 사설 경비 업체를 이용할 여력이 있다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물론 조두순이라는 악랄한 개인의 문제로 봐도 그만이지만, 극도로 악랄한 어떤 개인이 정말 극도로 운이 없는 어떤 개인에게 폭력을 가한 하나의 사건으로 봐버리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랍시고 고민해봐야 형량 강화 따위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단순한 처벌 정책밖에 안 나온다. MB를 필두로 정치권이 제2의 나영이 사건을 방지해야 한다고 팔을 걷어붙인 이 시점에서,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눈을 돌려야 한다. 대다수 국민에게는 그 혜택이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그 결과 대다수 국민이 소수의 빈곤층의 어려움을 수수방관하게 만드는 중도실용주의 따위만 주장하지 말고, 나영이 사건이 정말 가슴 아프면, 이 빌어먹을 체제 하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정말 정부의 보호가 절실한 계층을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눈을 돌리란 말이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는 세상 만들어 놨으니, 부자들은 정부가 애써 신경 써주지 않아도 경호원, 변호사, 회계사, FedEx 등등 필요한 서비스는 뭐든 사서 쓰면 된단 말이다.


3) 사형제도는 필요한가?

사형제도와 관련해서 사형제도를 찬성할 때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주장은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떨까?'라는 거다. '역지사지'라는 게 참 좋은 거긴 한데, 문제는 이 논리가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만 작동하기 때문에 설득력을 잃는다. 무슨 얘기냐면, '사형 반대? 가해자의 인권? 남의 자식이라 말은 쉽지. 너네 자식이라도 그런 얘기할 수 있겠어? 없으면 닥치고 사형 ㄱㄱㅆ' 대충 압축(이란 이름의 과장-_-)을 하면 이런 논리 전개가 되는 건데, 문제는 대부분의 사안에 대해 우리는 이런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자. 각종 개발 논리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을 보면서 보상금도 충분히 줬으니 빨리 나가라는 이야기에 '남의 집이라고 말 막하네. 너가 살던 집에서 쫓겨날 때도 그렇게 얘기할 수 있겠어? 없으면 닥치고 철거 반대'라고 주장하는 사람, 많지는 않다. 많았으면 참 좋겠지만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나 자신을 보호하듯이 다른 사람을 보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나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할 경우에는 더더욱. 일관성 없이 필요할 때만 끌어다쓰는 '네 일이라도 그러겠어?'라는 주장은 간편하지만 특별히 유효하지는 않다.

이거 과열된 여론에 불지르는 형태의 논쟁인 건 아는데,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해보자. 나영이와 나영이 부모님의 입장을--당사자가 아니니까 완전히 이해하진 못하더라도--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정상적이라면 조두순의 입장을 이해해봐야 한다고 제안한다면 그 제안은 왜 초점이 완전히 빗나간 취급을 받는 걸까? '그런 사람의 입장이나 인권 따위는 고민할 필요조차도 없다'고 한다면 중요한 건 '그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구분하느냐는 질문이 남는다.

반사회적 이상성격자(sociopath)나 소아성애자는 '보통' 사람의 기준으로 상당히 뒤틀린 욕망을 가진 건 틀림없는데, 욕망을 가진 것이 잘못인가?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잘못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 해소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대부분싀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모든 욕망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폭식을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충동구매를 한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나 친척간에 섹스를 하고, 어떤 사람은 구멍가게를 턴다. 또 어떤 사람은 은행을 털고, 어떤 사람은 살인을 한다. 물론 그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위의 결과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느냐 여부에 따라 어떤 것들은 법으로 금하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허용되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 욕망을 충족시켜서는 안 된다'는 가치판단이 줄다리기를 하다가 결국은 욕망이 승리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결국 문제는 욕망에 굴복하는 지점은 사람마다 다 다른데, 그 선을 우리 사회가 어디에 긋고, 그에 따라 사람들을 처벌하면 되느냐의 문제로 환원되는 걸까? 그러면 여기서 또 한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개개인이 비슷한 형태와 강도의 욕망을 갖고 있는데, 누구는 더 이성적이고 누구는 덜 이성적이어서 그 욕망을 통제하고 못하고의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바꿔 말해서, 누구나 다 8살짜리 여자아이를 성폭행하는 욕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반사회적인 행동이라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그 욕망을 누르고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짓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냐고 할 거다. 뭐, 가슴 깊이 품고 있는 욕망은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으니,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욕망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면, 결국 그런 욕망을, 그것도 지나치게 강렬한 형태로 갖고 있는 게 문제란 말인가? 자, 그러면 조금 더 살펴보자. 내 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런 짓을 한 사람을 잡아 죽였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의 경우에는 살인충동을 느끼지 않을 거다. 그런데 어떤 외부 자극에 의해 보복감에 불타게 되는데, 이 보복감이라는 것은, 그 외부 자극을 이성적으로 분석해서 '아, 저 사람은 내가 보복을 해서 죽여 마땅하다'고 도출한 결론도 아니고, 자유의지를 통한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판단도 아니다. 이는 외부 자극에 대한 감정적인 대응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우의 보복감은 이해할 수 있는 욕망이라고 판단한다.

조두순이 나영이를, 나영이가 아니었더라면 다른 어린 여자아이를 성폭행하고 싶어하는 그 욕망, 그리고 그 욕망에 불을 지르는 어떤 외부 자극이 뭔지 우리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단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욕망들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거다. 그렇지만 우리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 그 욕망의 종류가 무척이나 끔찍하고, 그 외부 자극이 비상식적으로 사소한 것이라는 점이지, 사실 어떤 사람이 나와 다른 욕망을 가졌다거나, 그런 욕망에 휩싸이게 만드는 어떤 자극이 존재한다는 점은 아니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나의 '정상적이고 사회적인' 행동과 그의 '비정상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가르는 지점 사이에 우리가 절대로 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어떤 명확한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다만 사회적 합의에 따른 임의의 선이 있을 뿐이다. 물론 그 임의의 선은 범죄 예방 및 사회 질서 유지에 대단히 중요하지만, 사형을 통해 제도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선인지는 잘 모르겠다.


4) 사회 제도와 사형제

조두순을 보면서 분노하기 쉬운 만큼 사형을 주장하기는 쉽다. 그렇지만 사회 제도들은 단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게 아니다. 사람들에게 '정부가 공공 복지 정책을 늘려야 하는가', '정부가 재정수지를 맞춰야 하는가', '정부가 세금을 더 걷어도 되는가'를 차례로 물으면 대부분 '네', '네', '아니오'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사회 정치적 제도를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단순한가를 잘 보여주는 예다.

무슨 이야기냐면 개인적으로는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용을 보고 싶어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긴 하지만, 결국엔 나 빼고 다른 사람들한테서만 세금을 많이 걷어서 복지정책을 시행하라는 이야기가 된다. 불행히도 사회 전체에 적용시킬 때에는 서로 상충되는 저 세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수가 없다는 이야기다.

특정 개인에 비해 정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과 행정, 입법, 사법에 관한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부가 특정 개인이나 특정 집단을 만족시키거나 특정 사안 한가지만 해결하기는 쉽다. 예를 들어 빈부격차를 줄여야 한다면, 재산권을 없애고 정부가 모든 재화를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주면 그만이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경우 빈부격차는 없어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가난해질 뿐이다. 아니면, 정부가 특정 개인만 부유하게 잘 사는 일만 신경쓰고자 한다면, 일년 예산이 수십조나 되니까 일년에 한 백억쯤 띄어서 그 사람한테 준들 크게 티도 안 날 거다. 그런데 우리 지금 누구 호위호식하라고 세금 내고 있는 건 아니잖아.

결국, 정부의 돈과 권력이 특정 개인에 비해서는 거의 무한히 많은 수준이지만, 국가 전체의 규모를 감안하면 꽤나 한정돼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엄청나게 많은 불특정 다수를 행복하게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사실 불가능하다. 결국 정부는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한정된 자원--예산과 권력--을 어떻게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사형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가해자의 인권 보호보다도 '명백한 유죄'를 판가름하는 문제가 있다. 조두순의 경우 나도 그가 유죄라고 믿지만, 일말의 의심조차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는 그를 만나본 적도 없고, 그가 유죄라는 증거들을 직접 확인한 적도 없다. 내가 아는 그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언론 보도나 인터넷을 통한 사실들 뿐이다. 그가 유죄라고 믿는 국민 대다수가 마찬가지일 거다. 그렇지만 경찰이 때로는 사건 해결을 위해 증거 조작을 하는 경우도 있고, 허위 자백을 유도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정말 그런 경우를 매번 명명백백하게 밝혀낼 수 있을까? 법원에서 내린 유죄 판결과 '명백한 유죄'는 어떻게 다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법원에서 재판 후 국민투표라도 해야 할까?

물론 사형제도가 없음으로써 부담하는 사회적 비용이 있다. 나는 어느쪽의 부담이 더 큰지 굳이 분석도 비교도 안 해봤지만, 대부분의 문명 사회가 엄연히 존재하던 사형 제도를 점차 폐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는 점은 그 자체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5) 네티즌 vs 네티즌

최근의 굵직한 사건에는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네티즌들이 있었다. 성범죄자 신분 공개를 비롯한 가해자 인권 문제, 사형제 찬반 등의 형사법 개정 문제, 안산시의 생활보호대상자 지원금 회수 문제 등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네티즌들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뭐, 이번에는 여론이 꽤나 일방적이라 공방이랄 건 별로 없나?

그렇지만, 사건에 대한 과장된 허위 사실 유포라던지, 확인되지 않은 가해자 사진 공개 등의 과열된 여론의 과민반응과 이를 통해 더욱 과열되고, 또 가해자 인권을 조금만 비호하면 쿨한 '척'한다는 등의 비꼬는 반응부터 ㅅㅂㄴ 입닥치고 있어 등의 과격한 리플이 따라오는 부작용은 여전하다. 물론 그런 글 쓰는 사람 중에 쿨한 '척'인 사람도 있고, ㅅㅂㄴ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다 그렇기야 하겠어? (뭐, 나도 ㅅㅂㄴ임? 이라는 항변이랄까. -_-,,)

이건 뭐 번번히 이러니 사실 더 할 말도 별로 더 없다. 그냥 이것도 풀어야 할 숙제는 숙제라서 지적은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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