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이야기를 한 김에 조금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야기 하나. Waldfogel 교수는 선물이 지니는 경제적 의도(?)를 부의
재분배, 가부장주의, 또는 이타주의로 분류하고 있다. 내가 봤을 때 이 세가지가 완전히 대등한 관계는 아니지만 어쨌든 세가지가 뭔지
분리해서 생각해보자.
뭐, 부의 재분배란 말 그대로 무대가성 선물을 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가진 재화가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재분배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많이 가진 사람의 것을 뺏어서(?) 적게 가진 사람에게 나눠주는 로빈 훗식 재분배를 생각하는데, 자발적 선물을 통한 재분배는 이와는 약간 다를 수 있다.
이타주의란 순수하게 뭔가를 주고 싶은 마음에 선물을 받는 사람이 가장 좋아할만한 것을 골라서 선물을 주는 걸 말하고, 가부장주의란 선물을 주는 사람이 선물을 받는 사람의 생활습관이나 취향 등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의도가 섞여 있는 걸 말한다. 전자는 선물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 CD를 선물하는 일이 이에 해당할 거고, 후자는 선물 하는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CD를 선물하는 일 정도가 될 거다. 물론 이런 수준의 가부장주의는 그 의도가 올바르든 조금 빗나갔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부장주의의 영향은 꽤 클 수 있다.
정부가 집행하는 모든 공공정책은 공리주의적이거나 가부장주의적 요소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보자. 국가에서 공교육 강화를 위해 1) 세금을 걷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2) 세금을 걷어서, 학교를 새로 짓거나 오래된 학교 시설을 정비하고, 교사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사들 월급을 올리는 등의 다양한 정책적 시도를시행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고 하자.
물론 공리주의와 가부장주의가 완전히 갈리는 건 아니고, 사실 정부에서 시행하는 대부분의 정책의 순효과와 역효과가 게 칼로 잘리듯 갈리는 게 아닌지라, 찬반 세력이 항상 흙탕물 튀기며 싸우게 마련이고, 대부분의 정책 시행의 배후에는 두가지 원칙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공리주의에 입각했을 때에도 '다수의 소수에 대한 폭력' 같은 말들로 표현되는 역효과가 나타나긴 하지만, 수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 결정에서 공리주의적 접근은 꽤나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공리주의와 관련한 약점은 '공공 혹은 다수의 이익'를 가려내는 효과적인 메카니즘이 존재하는가에 있겠다.
그럼 가부장주의는 어떨까? 일단 가부장주의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하고 시작하자. 아이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야채도 먹어라"며 아이들이 먹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먹이려는 부모의 노력 따위가 가부장주의에 해당하는데, 이런 부모들의 노력을 특별히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는 많은 경우에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것--다양한 영양분이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게 중요하다 따위--을 알고 있다는 점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이 잘 되길 바라는 진심어린 마음이 있다는 두가지가 동시에 성립하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정부나 기타 체계화된 조직이 개인에게 가부장적 압력(?)을 가할 때에 이 두가지를 동시에 성립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그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또 다른 예로 부모가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술, 담배를 못하게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술, 담배가--여전히 신체가 성장중인 아이들에게는 특히--몸에 나쁘다는 사실 혹은 정보 자체는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술, 담배를 즐길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 특별히 아이들의 자유권 침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술,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과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선택을 내렸을 때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건강을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다거나 싸운다는 등의 다양한 상황--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개인에게 있다는 사실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완전히 이해하는 시점이 언제라는 건 쉽게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는 꽤나 임의적으로 20세 전후의 기준을 잡는다.
자, 그런데 정부에서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는 완전한 금주령을 내린다면? 이는 많은 경우에 자유권 침해로 해석된다. 그 이유인즉슨, 20세 전후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부모는 알고 있다는 통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정부, 보다 정확히는 누군가의 부모일 정부의 구성원들이 알고 있다는 것 역시 일반적인 통념으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 중 정부가 알고 있는 것 따위는 전혀 없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 때문에 나에게 어떤 제재를 가하기를 원한다면, 그게 뭔지 나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새로운 정보가 참이라는 가정 하에서 정부가 그 제재를 가하는 이유가 특정 이익집단의 편익을 보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포함 혹은 나를 제외한 다수의 이익(여기서 공리주의가 다시 작동한다)을 보호하기 위함이란 걸 설명할 의무가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이에 실패한 아주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한가?--을 알고 있다는 것과 정부가 공공의 이익--쇠고기 수입이 과연 대중에게 값싼 쇠고기를 제공하기 위함인가?--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두가지를 모두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함에도, 두가지에 모두 실패한 덕분에 꽤나 드라마틱한 몇달을 경험할 수 있었다. ㅡㅠㅡ
오늘날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경제철학의 이상적 핵심은 바로 경제적 가부장주의의 해체다.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는 방법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임으로써 가능한데, 세금은 본질적으로 가부장적 요소가 있다. 그 이유인즉슨, 정부가 세금을 거둬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 자체가, 나를 포함한 국민들을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나를 대신해서 내 돈을 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그럴 듯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갑은 돈을 모아 차를 사고 싶은데, 정부는 갑이 차 살 돈을 걷어가서는 4대강을 정비하겠다고 한다. 을은 새 카메라를 사고 싶었는데, (서울시) 정부는 그 돈을 걷어가서 청계천을 복원했다. 아, 어이없다. 소위 경제적 가부장주의의 해체를 지향하는 정부가 해체해버린 것은 고작해야 종부세. orz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세계 모든 좌파의 딜레마는 아마 여기 있을 거다.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공공복지 사업 투자 확대를 동시에 주장하는 좌파는 정부의 사회적 가부장주의는 해체하되 정부의 경제적 가부장주의는 옹호해야 하는 숙제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사람들이 '세금'이란 단어는 이미 더럽힐대로 더럽혀 놨다. 직장 다니며 돈 버는 동안 세금은 열심히 냈는데, 경기가 나빠 실직했더니, 4대강 정비한다는 이야기는 계속 들리는데, 나 실업 수당 준다는 얘긴 없다. 많이는 못 벌어도 열심히 벌어서 세금 낼 건 냈는데, 이 동네 재개발한다고 노점상 철거하란다. 안 하고 버텼더니, 정부에서 내가 낸 세금 받는 경찰들이 들어와서 다 철거해버렸다.
더럽혀질대로 더럽혀진 '세금'이란 이름의 돈에서 사람들이 희망을 발견하게 하는 일에 올해 대한민국의 좌파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신발이 당장 다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내가 새 신발을 사는 것보다는,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너덜너덜해진 도로를 정비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고,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는 책을 사서 읽는 것보다는, 선생님이 부족해서 배우지 못하는 시골 아이들에게 새로운 선생님을 보내주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배도 별로 안 고픈데 입이 심심해서 야식 먹고는 다시 살 빼야 된다고 헬쓰장 다니는 것보다, 실직자들에게 직업 재교육의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태생적으로 가부장적 존재다. 대통령직, 국회, 경찰, 군대조차 민영화할 게 아니라면, 그 태생적 한계는 어쩔 수 없다. 결연히 외쳐라, 까짓거. I am your father. 결국 누구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누구를 설득할 것이냐의 문제다. 새해 벽두에 눈길에 막혀 각료 회의 제시간에 못하는 동안 MB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봤길 희망한다.
"나는 올봄에 나온다는 애플 타블렛이 갖고 싶은데, 정부는 실업수당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올해엔 이런 가슴 아픈 소식을 블로그 방문자들과 나누고 싶다.
@ 현정부에 대해서는 포기했다고? 포기하는 순간이 시합종료다. ㅡㅠㅡ
뭐, 부의 재분배란 말 그대로 무대가성 선물을 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가진 재화가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일반적으로 재분배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많이 가진 사람의 것을 뺏어서(?) 적게 가진 사람에게 나눠주는 로빈 훗식 재분배를 생각하는데, 자발적 선물을 통한 재분배는 이와는 약간 다를 수 있다.
이타주의란 순수하게 뭔가를 주고 싶은 마음에 선물을 받는 사람이 가장 좋아할만한 것을 골라서 선물을 주는 걸 말하고, 가부장주의란 선물을 주는 사람이 선물을 받는 사람의 생활습관이나 취향 등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의도가 섞여 있는 걸 말한다. 전자는 선물 받는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 CD를 선물하는 일이 이에 해당할 거고, 후자는 선물 하는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CD를 선물하는 일 정도가 될 거다. 물론 이런 수준의 가부장주의는 그 의도가 올바르든 조금 빗나갔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부장주의의 영향은 꽤 클 수 있다.
정부가 집행하는 모든 공공정책은 공리주의적이거나 가부장주의적 요소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보자. 국가에서 공교육 강화를 위해 1) 세금을 걷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2) 세금을 걷어서, 학교를 새로 짓거나 오래된 학교 시설을 정비하고, 교사들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교사들 월급을 올리는 등의 다양한 정책적 시도를시행하는 걸 고려하고 있다고 하자.
가상의 세계 A
"그래, 학원비 때문에 등골 휘겠어. 제발 교육제도 좀 정상화해봐!"라며 국민들 대다수가 정부의 정책을 찬성한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 찬성하는 정책 따위란 불가능한 거 아님? 되도 않은 일에 세금을 걷어서 쓴다며 일부 볼멘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정부는 이때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 어쩌겠냐, 몇명 안 되는 니들이 참아야지"라는 입장을 취한다. 이게 공리주의(utilitarianism).
가상의 세계 B
"세금 내라고? 시바, 세금 걷어서 나라에서 하는 일이 뭔데?" 어라, 이거 뭔가 익숙하잖아, 가상의 세계 맞아? ㅡㅠㅡ 아무튼 이 세계에서 어차피 필요한 건 다 학원에서 배우는 세상, 세금보다는 학원비가 훨씬 유용하다고! 그래서 국민 대다수가 1)번을 지지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공교육이 좆같았다고 앞으로도 그럴 리는 없쥐. 이번엔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있어!라며 세금을 걷어들이는 걸 강행할 때에 정부의 입장은"니들이 아직 뭘 몰라서 불만인가본데, 조금만 참아봐라. 내 참뜻을 알아들을 날이 올 거다"라는 거다. 이게 가부장주의(paternalism)다. 현정부의 대운하나, 미국산 쇠고기 파동 따위가 아주 좋은 예. 국민들이 찬성하는 정책을 본지 오래라 공리주의에 해당하는 예는 잘 생각이 안 나네. -_-a
물론 공리주의와 가부장주의가 완전히 갈리는 건 아니고, 사실 정부에서 시행하는 대부분의 정책의 순효과와 역효과가 게 칼로 잘리듯 갈리는 게 아닌지라, 찬반 세력이 항상 흙탕물 튀기며 싸우게 마련이고, 대부분의 정책 시행의 배후에는 두가지 원칙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공리주의에 입각했을 때에도 '다수의 소수에 대한 폭력' 같은 말들로 표현되는 역효과가 나타나긴 하지만, 수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 결정에서 공리주의적 접근은 꽤나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공리주의와 관련한 약점은 '공공 혹은 다수의 이익'를 가려내는 효과적인 메카니즘이 존재하는가에 있겠다.
그럼 가부장주의는 어떨까? 일단 가부장주의에 대해서는 조금 더 설명하고 시작하자. 아이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야채도 먹어라"며 아이들이 먹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먹이려는 부모의 노력 따위가 가부장주의에 해당하는데, 이런 부모들의 노력을 특별히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는 많은 경우에 어른들은 아이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것--다양한 영양분이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게 중요하다 따위--을 알고 있다는 점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자신의 아이들이 잘 되길 바라는 진심어린 마음이 있다는 두가지가 동시에 성립하기 때문에 설득력을 갖는다.
마찬가지로 정부나 기타 체계화된 조직이 개인에게 가부장적 압력(?)을 가할 때에 이 두가지를 동시에 성립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이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그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또 다른 예로 부모가 청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술, 담배를 못하게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술, 담배가--여전히 신체가 성장중인 아이들에게는 특히--몸에 나쁘다는 사실 혹은 정보 자체는 아이들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술, 담배를 즐길 권한을 박탈하는 것이 특별히 아이들의 자유권 침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술,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과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선택을 내렸을 때 그 이후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건강을 해치는 것뿐만 아니라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린다거나 싸운다는 등의 다양한 상황--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개인에게 있다는 사실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완전히 이해하는 시점이 언제라는 건 쉽게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는 꽤나 임의적으로 20세 전후의 기준을 잡는다.
자, 그런데 정부에서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는 완전한 금주령을 내린다면? 이는 많은 경우에 자유권 침해로 해석된다. 그 이유인즉슨, 20세 전후로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부모는 알고 있다는 통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정부, 보다 정확히는 누군가의 부모일 정부의 구성원들이 알고 있다는 것 역시 일반적인 통념으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 중 정부가 알고 있는 것 따위는 전혀 없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 때문에 나에게 어떤 제재를 가하기를 원한다면, 그게 뭔지 나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는 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 새로운 정보가 참이라는 가정 하에서 정부가 그 제재를 가하는 이유가 특정 이익집단의 편익을 보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를 포함 혹은 나를 제외한 다수의 이익(여기서 공리주의가 다시 작동한다)을 보호하기 위함이란 걸 설명할 의무가 있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이에 실패한 아주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한가?--을 알고 있다는 것과 정부가 공공의 이익--쇠고기 수입이 과연 대중에게 값싼 쇠고기를 제공하기 위함인가?--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두가지를 모두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함에도, 두가지에 모두 실패한 덕분에 꽤나 드라마틱한 몇달을 경험할 수 있었다. ㅡㅠㅡ
오늘날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경제철학의 이상적 핵심은 바로 경제적 가부장주의의 해체다. 정부가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는 방법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임으로써 가능한데, 세금은 본질적으로 가부장적 요소가 있다. 그 이유인즉슨, 정부가 세금을 거둬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 자체가, 나를 포함한 국민들을 위해서라는 명목하에 나를 대신해서 내 돈을 쓰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상은 그럴 듯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갑은 돈을 모아 차를 사고 싶은데, 정부는 갑이 차 살 돈을 걷어가서는 4대강을 정비하겠다고 한다. 을은 새 카메라를 사고 싶었는데, (서울시) 정부는 그 돈을 걷어가서 청계천을 복원했다. 아, 어이없다. 소위 경제적 가부장주의의 해체를 지향하는 정부가 해체해버린 것은 고작해야 종부세. orz
대한민국을 포함한 전세계 모든 좌파의 딜레마는 아마 여기 있을 거다.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공공복지 사업 투자 확대를 동시에 주장하는 좌파는 정부의 사회적 가부장주의는 해체하되 정부의 경제적 가부장주의는 옹호해야 하는 숙제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사람들이 '세금'이란 단어는 이미 더럽힐대로 더럽혀 놨다. 직장 다니며 돈 버는 동안 세금은 열심히 냈는데, 경기가 나빠 실직했더니, 4대강 정비한다는 이야기는 계속 들리는데, 나 실업 수당 준다는 얘긴 없다. 많이는 못 벌어도 열심히 벌어서 세금 낼 건 냈는데, 이 동네 재개발한다고 노점상 철거하란다. 안 하고 버텼더니, 정부에서 내가 낸 세금 받는 경찰들이 들어와서 다 철거해버렸다.
더럽혀질대로 더럽혀진 '세금'이란 이름의 돈에서 사람들이 희망을 발견하게 하는 일에 올해 대한민국의 좌파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신발이 당장 다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내가 새 신발을 사는 것보다는, 출퇴근길에 이용하는 너덜너덜해진 도로를 정비하는 게 더 중요할 수 있고,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는 책을 사서 읽는 것보다는, 선생님이 부족해서 배우지 못하는 시골 아이들에게 새로운 선생님을 보내주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배도 별로 안 고픈데 입이 심심해서 야식 먹고는 다시 살 빼야 된다고 헬쓰장 다니는 것보다, 실직자들에게 직업 재교육의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태생적으로 가부장적 존재다. 대통령직, 국회, 경찰, 군대조차 민영화할 게 아니라면, 그 태생적 한계는 어쩔 수 없다. 결연히 외쳐라, 까짓거. I am your father. 결국 누구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누구를 설득할 것이냐의 문제다. 새해 벽두에 눈길에 막혀 각료 회의 제시간에 못하는 동안 MB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봤길 희망한다.
"나는 올봄에 나온다는 애플 타블렛이 갖고 싶은데, 정부는 실업수당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올해엔 이런 가슴 아픈 소식을 블로그 방문자들과 나누고 싶다.
@ 현정부에 대해서는 포기했다고? 포기하는 순간이 시합종료다. ㅡㅠ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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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야 어제 누나 통해서 과자 잘 받았다. 맛있더라. 고마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