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Mason 대학에
Russell Roberts라는 시카고 학파 출신의 지금은 오스트리아 학파에 가까운 고전자유주의 경제학자가 있는데 이 양반이 매주 한시간씩 다양한 경제학자들과 인터뷰를 하는
EconTalk라는 podcast가 있다. 나랑 노선은 달라도 사고가 유연해서 합리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란 느낌을 주기 때문에 거부감없이 즐겨듣고 있다. 얼마전에 한달 정도 밀린 podcast를 챙겨 들었는데 그 중 평소 생각하고 있던 부분에 대해 꽤나 흥미롭게 이야기한 게 있어서 소개.
Podcast를 직접 들어보고 싶은 분들을 위한 링크:
Truth and Economics이하는 이 podcast를 듣고 정리한 생각
최근의 불황을 타개하게 위한 방법으로 케인즈 경제학이 스물스물 고개를 들고 있는데, 자유주의자인 Russ Roberts 입장에서는 상당히 못 마땅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제학적 진리나 진실, 더 나아가서는 일반적인 진리나 진실이 무엇이냐를 개인이 어떻게 구분해낼 수 있는지, 혹은 구분해낼 수 있는 방법이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을 갖게 된다는 모놀로그로 시작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참고로 이 예는 Roberts가 든 예가 아니라 내 예다.)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너무 무능해서 주변에 피해를 주는 사람'을 겪어 봤으리라 본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능한데다가 성격까지 이상해서 너무 짜증스럽기도 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무능하지만 사람은 너무 좋아서 애증이 교차하기도 하고... 뭐, 후자의 경우는 조금 애매하지만, 전자 같은 경우 '왜 저런 사람은 안 짤리나 몰라?'라는 감정을 갖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바로 이 감정에 사실 소위 진보진영의 딜레마가 있다. 고용안정을 통한 노동자 보호의 제도화라는 거시적인 틀과 어떤 개인은 너무 무능하기 때문에 잘려도 당연하다는 미시적인 경험 사이에는 틀림없는 간극이 존재한다. 조금 다르게 말하면 가끔이라도 '어떤 사람은 남들이 보기에 너무 무능해서 그런 사람은 잘리는 게 당연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면, 그 결정권은 도대체 누가 갖느냐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이야기.
이 딜레마는 두가지 방법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하나는 소위 비정규직 양산을 통해 개인적 판단에 따라 고용인을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게 하는 소위 보수진영의 해법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진영의 선택이랄 수 있는 노동자 보호라는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사용자나 직장 동료 모두 특정 개인의 무능을 인내하는 거다. 이렇게 놓고 보면, 두가지 해법 모두 순기능과 역기능이 존재한다. 자,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어떤 해법을 택할 것인가? 이를 위해 경제학자들은 각각의 경우에 대해 다양한 경제지표를 바탕으로 어떤 해법이 경제적으로 더 이득이라는 각자의 주장을 펼친다.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의문이 한가지 생겨난다. 우리는 과연 이 다양한 경제지표를 바탕으로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 걸까, 아니면 어떤 계기로든 초기에 갖게 된 선입견이나 편견에 의해 원하는 경제지표들을 채택하게 되는 것일까?
다시 앞의 예로 돌아가보자. 진보진영 혹은 수정주의 경제학자들은 비정규직의 양산이나 노조의 부재는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내재적으로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 때문에 고용불안정을 야기한다고 믿는다. 반면에 보수진영 혹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진보진영이 원하는 형태의 고용안정은 실제로는 사회 전반적인 실업률을 높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고용불안정을 더 높인다고 믿는다. 이 얘기는 진보진영의 주장에 비해 조금 덜 직관적이니 약간의 부연 설명을 하자면, 모든 노동직의 정규직화나 노조의 결성은 사용자로 하여금 노동자를 해고할 자유를 제약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누군가를 고용했는데 이 사람이 생각보다 무능할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 누군가를 고용하는 일 자체를 조심스럽게 하게 된다--경제학에서는 고용에 대한 비용이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따라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사회 전반적인 실업률이 증가한다. 이런 조건 하에서 이미 고용이 된 노동자들은 보호를 받지만, 미고용 상태로 제도 바깥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을 증가시켜 사회 전체적으로는 고용불안정이 증가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한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양진영이 갈라지는 지점은 노동자와 사용자 중 누구를 보호할 것인가가 아니다. 오히려 양측 모두 어떻게 하는 편이 노동자를 더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들의 차이는 시장이라는 메커니즘과 법적 제도화 중 어느 것을 더 불신하느냐에 따라 갈라진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보수진영의 경우 권력이 집중된 소수에 의해 작동하는 정부보다는 대중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는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이 훨씬 효과적으로 대중을 보호하는 데에 더 효과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고, 진보진영은 시장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현실에서는 시장이 그렇게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보다는 정부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권력의 불균형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정부가 강제적으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말이다.
이렇듯 서로 상반되는 주장은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어느 주장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경제학에서의 이에 대한 연구결과는 실제로 그다지 명쾌하지 못하다. 양측 모두 '각자의 증거'를 앞세워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런 학문적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문제는 실제 세상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고 이 변수들이 서로에게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 현상을 관찰할 수밖에 없으므로 '정규직이나 노조'의 효과에 대해서만 분리해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런 연구결과들은 이들을 바탕으로 어떤 입장을 결정하기보다는, 기존에 갖고 있던 입장에 부합하는 연구결과들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기존의 입장을 강화하는 데에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다면 이런 입장의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이는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이 어떤 인센티브를 가졌느냐에 기인할 수 있다. 다시 앞선 예를 들자면 노조가 결성될 경우 이 노조에 포함될 수 있는 노동자들은 이로 인해 직접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으므로, 노조의 결성이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면 사용자의 경우, 노조의 결성은 앞서 말한대로 고용의 비용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이에 반대하게 될 것이다. 이때 자연스럽게 노조의 허용 내지는 의무화를 놓고 노동자와 사용자의 입장이 갈리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노조에 대한 찬반이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선을 그어지는데, 본래의 경제학적 논리에서 노조에 대한 찬반에 따라 갈라졌던 선과는 다른 선이 그어진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흠, 쓰다 보니 또 길어지는군. -_-a 갑자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져서 아이스크림 사러 가야겠다. ㅋㅋ 내일 이어서 써야지.

(
0)

(
0)
트랙백 주소 :: http://absolutezero.kr/trackback/152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