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이용하는데, 이는 문자와 말의 두가지로 나눠서 생각할 수 있다. 이중 문자는 시각적 정보 전달 법이고 말은 청각적 방법에 해당된다. 전자의 경우는 공간적 매질에만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반해, 후자의 경우는 음파라고 하는 시공간적으로 한정된 매질을 이용해야하기 때문에 그 한계 또한 분명했다. 수만년된 동굴의 벽화는 아직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지만, 그 당시 인류의 음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물론 한번 세상에 내뱉어진 소리는 한없이 약해지기는 하지만 절대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아주아주 성능이 좋은 마이크만 있으면 재생해낼 수 있다고 믿은, 라디오의 아버지, 마르코니 같은 사람도 있긴 했다.) 인간이 수천년간 거의 모든 기록을 문자로 남긴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러다가 1857년 세계 최초의 녹음기가 발명됐다. 녹음기와 축음기의 등장으로, 소리를 기록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음원과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않고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소리를 재생할 수 있게 된 거다. 그렇지만 녹음과 축음, 특히 고품질의 녹음 비용은 너무 많이 들다보니, 인간이 정보를 전달하는 가장 보편적인 매체는 여전히 종이에 인쇄된 활자였다. 우리한테는 너무 흔해서 이젠 감도 잘 안 오지만, 수백에서 수천년간 축적된 제지 기술과 인쇄술의 효율이란 사실 어마어마하게 놀라운 거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책, 팜플렛, 전단지의 양과 하루도 거름없이 이들 중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양을 생각해보라.

그렇지만 정보 전달의 효율과 정보 습득의 효율은 전혀 다른 문제다. 거의 모든 동물에게 있어서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하는 1차 감각은 시각이다. 그런데 독서는 바로 이 시각을 이용한 정보 습득 과정이다보니, 독서와 다른 활동을 멀티태스킹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에 청각은 2차적인(?) 감각이기 때문에 청각을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활동--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음악/영화(이 경우는 시청각을 모두 이용) 감상 따위--중이 아니라면, 귀는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운전이나 요리 등을 하면서도 청각을 이용한 정보 습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바꿔 말하면, 지난 수천년간은 인쇄기술이 녹음 및 축음기술보다 월등히 싸게 먹힌다는 기술적 한계 때문에 인간에게 정보 습득 활동은 다른 활동으로부터 100% 분리된 독립적 활동으로 존재해 왔다. 그렇지만 디지털 미디어의 등장, 대용량 저장 매체와 광통신을 이용한 통신 대역폭의 엄청난 증가로 이 모든 게 바뀌었다.

아날로그 정보를 복사하는 일을 생각해보자. 책 한권 복사하기 vs 카세트 테입 하나 복사하기, 어느게 더 쉬운지는 묻지 않아도 다 알 거다. 그런데 이 정보를 디지털화해서 컴퓨터에 담아두기 시작하면서 그 차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화일이 뭘 담고 있든 간에, 아래아 한글 화일이든 mp3 화일이든, 화일 하나 복사하는 과정은 동일하다. 한번 기록된 정보는 그게 문자 정보든 음향 정보든 이를 공유하는 비용 차이가 거의 없다. 물론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책한권 분량의 문서 화일의 용량으로는 음향 정보는 일반적으로 고작 몇분 정도 분량밖에 못 싣는다. 여전히 음향 정보는 전송 및 보관하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 그러나 테라바이트짜리 하드 드라이브가 일상화(아직은 아닌가?)되고, 이런 저장 매체에 화일을 쓰거나, 저장 매체로부터 화일을 읽는 속도, 또 이를 공유하기 위한 인터넷 통신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짐에 따라 그 비용의 차이가 실질적으로는 거의 없어졌다. (물론 음질 좋은 녹음 장비의 비용은 성능 좋은 가정용 프린터 비용과 비교가 안 되다보니, 컨텐츠의 생산 비용에서는 여전히 차이가 있다.)

책을 소리내 읽는 걸 녹음해 놓은, 소위 audiobook의 등장은 1930년대였지만, audiobook이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불과 최근 몇년 사이인 데에는 이런 기술적 발전의 역할이 숨어 있다. 어쩌면 책을 어야 하는 시대가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각종 삽화나 그래프 등의 시각적 장치를 대체하는 건 불가능하고, 활자 중독증이 있는 사람도 있다보니 책을 읽는 행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운전 중에, 운동 중에, 요리 중에, 산책 중에 음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일이 가능해진, 정보를 듣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이를 잘만 이용하면, 읽기라는 독립된 행위에만 의존해야 하던 시절에 비해 인간이 단위 시간당 습득하는 정보량이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디지털 미디어가 바꿔놓은 흐름을 정확히 집어내서 가장 생산적으로 활용한 예가 podcast와 iTunes U다. Podcast는 iPod의 pod와 broadcast의 cast를 조합한 단어로 그야말로 오만가지 사람들이 오만가지 주제에 대해 녹음을 해서는 이걸 iTunes Store를 이용해 무료로 배포하는 인터넷방송이고, iTunes U는 iTunes University의 약자로 다양한 교육기관(이라고 해봐야 현재로는 영국과 미국의 대학들과 씽크탱크(?)들로 한정돼 있다)이 자신들이 제공하는 프로그램 중 일부를 역시나 iTunes Store를 통해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미디어 플레이어로서의 iTunes의 효용--특히 Windows 기반에서--에 대해서는 아직도 말이 많지만, podcast와 iTunes U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iTunes는 나한테는 엄청나게 만족스러운 소프트웨어다.

아무튼 서론이 길었는데, 이런 맥락에서 맛있는 걸 나눠먹는 심정으로 내가 즐겨듣는 podcast 중 일단 5개만 소개해볼까 한다. 순서는 알파벳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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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EconTalk
분류 : 경제
진행자 : Russell Roberts
홈페이지 : http://www.econtalk.org
소개 : 앞서 몇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George Mason 대학의 경제학자인 Russell Roberts가 다양한 경제학자, 저자들과 약 1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진행한다. 다양한 경제학 이론, 최근의 경제/경기 상황에 대한 분석, 주목할만한 경제학/사회학 저술의 내용 소개 등 경제와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모든 문제에 대해 학문적(?) 접근을 하기 때문에 특별한 투자 전략은 건 논하지 않지만, 특정 투자 전략의 이면에 있는 이론에 대해서는 가끔 다루기도 한다. 참고로 Roberts는 University of Chicago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아 시카고 학파에서 출발해서 오스트리아 학파로 넘어간 성향이다보니 시장 친화적인 관점을 유지한다. 업데이트는 주 1회로 매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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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Radio Lab
분류 : 과학
진행자 : Jad Abumrad & Robert Krulwich
홈페이지 : http://radiolab.org
소개 : 위약효과, 우주의 기원 등부터 시작해서 사랑이 뭘까? 도덕이란, 시간이란 뭔가 등 언뜻보면 전혀 과학과 상관없어 보이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과학에서 찾아보는 프로그램. 다양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경험담과 이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내리는 과학자들과의 인터뷰들을 솜씨좋게 배치시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야기 진행에 있어 음향효과를 탁월하게 잘 활용한다. 차분하고 편안한 목소리의 Abumrad와 조금 요란한 목소리의 Krulwich 두 진행자 사이의 호흡도 만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로그램 이면의 철학(?)에 완전 공감.

Krulwich가 Caltech 졸업식에 연사로 초청되어 갔을 때 졸업생들에게 연설한 내용에서 그 철학이 가장 잘 나타나있길래 여기서 소개해본다. Tell Me a Story라는 제목으로 2008년 7월 podcast에 방영된 바 있다.

이하는 연설문.


업데이트 주기는--항상은 아니지만--주로 2주에 1회,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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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Stuff You Should Know
분류 : 상식
진행자 : Charles W. Bryant & Josh Clark
홈페이지 : http://blogs.howstuffworks.com/category/stuff-you-should-know
소개 : howstuffworks.com이라는 웹페이지가 있는데 초끈이론, 블랙홀 등의 난해한 과학 분야부터, 손톱깎는 팁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다한 주제에 대해 일반인들을 상대로 쉽게 설명해놓고 있다. 이들중 일부를 역사, 과학, 음악, 여행, 자동차 등등 다양한 분야로 나눠서, podcast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podcast로, 굳이 분야를 나누자면 약간의 과학 + 잡상식에 해당하려나? 두 진행자의 격식없는 진행도 podcast를 듣기 편하게 하는 요소 중 하나. 업데이트는 주 2회, 수요일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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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ED Talks
분류 : 교육
홈페이지 : http://www.ted.com
소개 :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의 약자를 딴 TED라는 비영리 단체가 매년 개최하는 TED Conference의 강연 내용을 업데이트해주는 podcast. TED가 뭐하는 곳이다라고 콕 찝어 설명하기는 굉장히 애매한데 대충 혁신적인이고 진보적인 발상의 전환을 추구하기 위한 조직이라고 하면 될까? 그런 취지에 맞춰서 TED Conference는 성공적인 경영인, 학자, 정치가, 예술가 등을 초청하여 강연을 청하는 모임. 가끔 혁신과 진보적 사고라는 게 소위 미국이 누리는 풍요와 American Dream의 토대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뭐, 미국에서 시작해서 미국 사람들 기준의 성공의 잣대에 맞춰져서 초청된 사람들의 자리이니 그걸 피할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굉장히 수준 높고, 감탄할 만한 아이디어들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강연들이다. 오디오, 비디오, HD의 세가지 버전으로 제공되는데, 강연이 시각 자료에 의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비디오나 HD로 구독(?)을 권함. 업데이트는 수시로/지멋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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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This American Life
분류 : 생활/이야기
진행자 : Ira Glass
홈페이지 : http://thisamericanlife.org
소개 : 전에도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지만 다시 한번. 지금까지 소개한 podcast들이 전부 조금은 교육적(?)인 테마라면, 이 podcast는 제목의 'Life'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삶의 숨결을 전달하는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앞서 Radio Lab을 소개하면서 Robert Krulwich의 연설도 같이 실었는데, Krulwich가 언급하고 강조한 "power of story"가 무언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정서적 연대를 느끼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본인의 podcast 중독을 유발한, 가장 먼저 듣기 시작한 podcast이기도 하다. 업데이트는 주 1회, 월요일.


@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아직 podcast가 활성화되지 않은 관계로 여기에 소개된 모든 컨텐츠는 영어다. 집집마다 초고속 인터넷 깔아놓고, 너도 나도 싸이질, 블로그질 하는 걸 갖고 '인터넷 강국'이라는 수사만 남발할 게 아니라, 그 인터넷망으로 뭘 하느냐를 고민할 때다. 물론 블로그도 유용한 정보 교환의 수단이지만 이제 한발 더 나갈 때도 됐잖아? 그런 의미에서 과학 관련 podcast를 시작해보고 싶기는 한데, 어떤 포맷으로 해야할지 잘 모르겠는데다가, 결정적으로 꾸준히 할 자신이 없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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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건욱 2010/02/23 0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edtalks, this american life 좋은거 같음.
    econtalks 들어봐야겠군.
    wait wait don't tell me는 어째 지겨워질라고 함.ㅎㅎ

    궁금했었는데 살아있었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