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ets can remain irrational a lot longer than you and I can remain solvent.- (아마도) 존 메이너드 케인즈 (John Maynard Keynes)
시장의 비합리성에 대해 경고한 "시장은 우리가 부도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미쳐 있을 수 있다"는 이 한마디는 케인즈가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연원이 분명하지는 않다. 실제로 이 표현이 활자화되어 처음 등장한 것은 1993년 Forbes 잡지로 케인즈가 죽은지 거의 50년 후의 일이라고 하니, 어딘가 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는 건 사실. 어찌됐든 이 말을 처음 한 것은 케인즈라고 널리 알려져 있고, 평소 케인즈가 갖고 있던 시장에 대한 불신을 감안하면 그럴 법도 하다.
사실 우리가 케인즈 경제학 혹은 수정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대공황을 겪으면서 케인즈 본인의 경제철학이 크게 요동친 결과로 탄생한 것인데, 그전까지만해도 당대의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케인즈도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자였다.
문제는 1929년 미국 주식 시장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대공황이었다. 그로 인해 케인즈 본인도 큰돈을 잃었는데--물론 케인즈는 대공황의 저점에서 더 사들여서 훗날 잃은 돈을 회복하고도 남았다--그런 시장의 극심한 변덕을 보며,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갖고 있던 시장에 대한 맹신 가까운 신념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케인즈의 수정 자본주의의 탄생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야기가 좀 많이 샜는데,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수정 자본주의가 뭔지에 대한 이야기는 훗날로 미뤄두기로 하고, 다시 케인즈의 발언으로 돌아가자. 경제학이나 회계에서 "solvent"라 함은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바꿔 말해 어떤 경제 주체가 solvent의 반대인 insolvent가 되면 흔히 말하는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시장이 비이성적인 것과 지불 능력(solvency)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보통 언론에서는 우리가 맞이했던 IMF 위기와 같은 상황을 금융위기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사용하는데, 사실 금융위기에는 두가지가 있다. 유동성 위기(liquidity crisis)가 하나고, 지불 능력 위기(solvency crisis)가 나머지 하나다. 이 두가지는 어떻게 다를까?
자, 내가 이발소를 차렸다고 하자. 은행에서 자본금을 빌려서, 가게를 얻고, 이발 도구, 의자, 손님들이 앉아 기다릴 수 있는 소파 등을 다 구비. 이발비는 9000원. 손님들이 만원짜리를 내면 천원을 거슬러줘야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은행에 가서 천원짜리를 넉넉히 바꾼다고 바꿔다가 계산대에 넣어뒀다. 그리고 첫날 손님을 받았는데 21명의 손님이 왔는데 전부 만원짜리를 낸 거다. 그런데 손님이 20명은 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천원짜리를 20장밖에 준비하지 않았던 거다. 20번째 손님까지 딱 받고 나니 만원짜리는 새로 20장이 생겼는데, 천원짜리는 한장도 안 남았다. 21번째 손님이 만원짜리를 내는 순간, 어라? 거스름돈 천원이 없네. 그런데 이 경우 정말 돈 천원이 없는 게 아니다. 돈은 20만원이 있지만, 당장 필요한 천원짜리 한장이 없는 거다.
이게 바로 유동성 위기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자산의 현금 가치는 충분하지만, 갖고 있는 자산의 종류가 당장 필요한 자산의 종류와 일치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위기. 이걸 왜 유동성 위기라고 부르냐고? 사실 조금 기이한 예를 들었는데, 자산의 종류에 따라 그 자산의 유동성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거래의 기본인 현금이 가장 유동적인 자산으로, 어디 가서 돈 내는데 안 받는 사람은 없다. 그 다음에 채권, 주식 등의 금융 상품 등이 있을 거고, 우리가 흔히 부동산이라고 하는 건물이나 땅 따위가 유동성이 가장 낮은 자산이다. 그래서 "부동"산이다.
그러면 지불 능력 위기란 뭘까? 앞선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내가 이발소를 차렸는데, 한달이 넘도록 손님이 한명도 없다. 가게 임대료, 전기세는 물론이고, 이발소를 차리기 위해 대출받은 돈 이자도 내야 되는데, 수중에 현금이라곤 없는 거다. 여기까지만 얼핏 보면 유동성 위기와 유사하지만, 다음에서 차이가 있다. 신용불량자가 될 순 없으니까 돈은 어디서 구해야겠고, 그래서 가게에 있는 물건 중에 당장 급하지 않은 물건들을 팔기 시작한다. 어차피 손님이 없으니 대기용 소파부터해서 이발용 의자도 3개가 있던 것 중 2개는 팔아치우고 등등. 그렇게 물건들을 하나둘 팔아치우기 시작해서 땜방질을 하다보니 몇달만에 결국 갖고 있던 물건을 다 팔아치웠다.
어라? 그런데 물건을 다 팔아치웠는데도, 갚아야 할 돈을 다 못 갚았네. 아무래도 중고품이다보니 처음에 살 때 줬던 값보다 싸게 팔 수밖에 없었던 거다. 결국 자기가 갖고 있는 자산 가치의 총량이 자신의 채무의 총량보다 작은 상황, 뭘 해도 필요한 돈을 갚을 방법이 없는, 힝, 존망했으의 상황이 바로 지불 능력 위기다
자, 그럼 시장과 이게 어떻게 엮이는지 살펴보기 위해 잠시 기업의 대차대조표(balance sheet)에 대해 이야길 해보자. 기업의 대차대조표란 가계부라고 보면 된다. 약간의 차이라면 가계부는 현금 유통 위주로 작성하지만 대차대조표는 현금, 채권, 부동산 등 기업의 모든 자산과 부채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The Office의 Dunder-Mifflin 같은 종이/사무용품 회사를 생각해보자. 이 회사의 자산은 사무용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각종 생산 시설, 사무직 직원들이 일하는 건물과 그 건물 내의 책상, 컴퓨터 등이 있을 거고, 사무용품을 도매나 소매상에게 넘긴 후 아직 받지 않았지만 곧 받아야 할 대금이 있을 거다. 그리고 회사가 갖고 있는 현금 등이 이 회사의 자산에 해당한다. 반면에 회사가 발행한 채권, 종이 생산을 위해 원자재를 받았는데 아직 지불하지 않은 대금, 직원들에게 아직 지급하지 않은 임금과 보너스 따위가 있다면 이는 회사의 부채에 해당한다.
이 자산의 총합에서 부채의 총합을 뺀 값을 회사의 순이익이라고 봐도 좋고, 회사의 실질적인 가치로 회사 주식의 총가치(=발행된 주식의 수 x 주가)는 이를 반영하는 게 정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이값이 0보다 크면 회사는 지불능력이 있다(solvent)고 한다. 그런데 이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데에는 규칙이 있다. 현금만을 취급하는 가계부와 달리 다양한 종류의 자산과 부채를 포함한 대차대조표에서 이들 자산과 부채의 현금가치를 어떻게 매기느냐는 상당히 애매한 문제다.
각 가정이 가계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 자산에는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 시골에 쬐끄만 텃밭이라도 있다면 이런 땅뙈기, 집안의 온갖 가구 및 가전 제품, 은행 예금, 적금, 펀드, 주식 등이 자산에 해당하고, 은행 대출, 사채, 아직 완납하지 않은 카드 할부금, 자동차 할부금 등이 있다면 이가 부채에 해당한다. 이중 아파트, 땅, 가구 등의 가격은 얼마로 잡아야 할까? 은행 예금이나 가계 부채 등은 어차피 현금으로 돼 있으니 크게 상관이 없고, 펀드나 주식도 시세에 따라 금방 금방 현금화 할 수 있으니 크게 문제가 없다. 그런데 부동산의 경우 사실 공시지가라는 게 있고, 시장 거래 가격이 있는데 이게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면 내 아파트 값은 공시지가에 맞춰야 하나, 거래 가격에 맞춰야 하나? 흠...
이 문제는 보통 법으로 정하는데 기업체들은 시가평가(mark to market)를 하게 돼 있다. 이는 회사의 장부, 즉 대차대조표에 Market value(시가)에 따라 mark(표시)하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공시 지가나 다른 임의의 가치 결정 척도가 아닌 시장 거래가에 따라 자산과 부채의 가치를 매기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시장이 개입한다.
그러면 2008년에 터진 미국의 서브프라임발 부동산 위기를 통해 케인즈의 발언을 다시 살펴보자. 은행들의 경우, 자산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다양한 형태의) 대출이다. 은행에서 빌린 돈이, 돈을 빌린 사람에게는 부채라면, 은행의 입장에서는 돌려 받을 돈이기 때문에--물건을 미리 넘기고, 미처 받지 않은 대금과 마찬가지로--자산에 해당한다. 그리고 다른 자산들과 마찬가지로 대출도 은행들끼리 사고 파는 게 가능하다. 예를 들어 갑은행이 10사람에게 금리 5%로 20년 만기 1억원짜리 대출을 10번 해줬다고 하자. 이 10명이 이 빚을 모두 꼬박 갚는다면, 이 은행은 20년간 총 10억의 수익을 올리게 될 거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복리가 아닌 5% 단리로 계산하자. 5% x 20년은 100%에 해당하니 1억을 빌려주면 그 이자 수익이 그 100%인 1억. 10명이니 10억.) 그렇지만 10명이 다 돈을 꼬박 갚을 것 같진 않고, 갑은행이 그동안의 경험으로 판단하건데, 6명은 돈을 다 갚겠지만, 4명 정도는 10년만에 배째라고 할 것 같다. 그 경우 실제 수익은 8억원.
그런데 뒤늦게 은행을 차린 을은행이 비슷한 대출 조건을 내걸었는데,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을은행은 갑은행에게 원금 10억을 포함해서 총 13억을 줄 테니 자신들에게 그 대출을 넘기라고 한다. 을은행 입장에서는 13억원을 주고 (원금 포함) 18억원을 돌려 받을 수 있다면 그래도 5억원이 남는 셈. 그런데 갑자기 병은행이 끼어들어서 자기에게 15억원에 넘기라고 한다면 갑은행은 병은행에게 이 대출을 넘기는 게 유리. 이때 갑은행 입장에서 이 거래에 응하느냐 응하지 않느냐는 다양한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갑은행이 앞서 말한 유동성 위기를 맞아서 지금 당장 현금이 급하다면, 자신들이 생각하기엔 18억짜리도 15억에 팔아야 할 수도 있다. 또 한가지는 갑은행은 이 대출들로 18억을 벌 거라고 예상했는데, 정은행은 20억을 다 돌려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 19억원을 제시한다면 갑은 얼씨나 하고 거래에 응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렇듯 은행들 사이에서 다양한 계산에 따라 자신들이 갖고 있는 대출 형태의 자신을 사고 파는 일은 자주 벌어진다.
만약에 많은 은행들이 10억을 빌려주고 20년에 걸쳐 18억씩 회수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은행들이 너도나도 할 것없이 대출을 해줄 거다. 이게 사실 서브프라임의 시작이다. 집값이 꾸준히 상승함에 따라 일반적으로 대출 위험 대상인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사람들도 평소보다 돈을 꼬박꼬박 잘 갚기 시작한다. 그러자 은행들이 18억짜리라고 예상했던 이 자산 가치가 그 이상일 수 있다고 판단, 이런 대출 자산을 서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모으기 위해 경쟁을 하게 되고, 이런 대출 자산의 가치는 그 상한선인 20억에 육박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자산 가치를 시가평가하게 되어 있음에 따라, 이런 서브프라임 대출을 많이 해준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에서 부채쪽은 그대로인데 자산쪽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돈을 다 돌려받으려면 2-30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수익임에도 시가평가에 의해 과평가된 거고, 이런 걸 우린 흔히 버블/거품이라고 한다.

Flora's Wagon of Fools. 1600년대 초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을 비꼰 Hendrik Gerritsz Pot의 작품.
자, 어떤 갑은행이 현금 100억을 포함한 총 1000억의 자산과 980억의 부채를 갖고 사업을 시작 18억짜리라고 예상되는 대출 10개를 해줬다. 그러자 자산이 1080억으로 늘었고, 부채는 980억 그대로. 그런데 18억짜리 대출자산의 가치가 20억으로 오르면서 은행의 자산이 시장에서 1100억으로 평가가 되게 된다. 그런데 집값의 거품이 꺼지면서 대출을 받아간 사람들이 돈을 제때에 못 갚아 나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예상했던 20억을 다 돌려 받을 수가 없다는 걸 알아차림에 따라 이와 비슷한 자산을 갖고 있던 은행들이 전부 위기감을 느끼고 이 대출 자산을 팔아치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를 팔아치우는 은행들이 점점 많이짐에 따라 이 자산 가치가 19억, 18억, 17억으로 점점 떨어진다. 갑은행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총 자산이 1100억에서 1090, 1080, 1070으로 점점 줄어드는 거다.
그런데 은행들이 자신들이 발행한 대출들을 다시 검토해봄에 따라, 어차피 쥐고 있어봐야 원금 회복도 못할 것 같다고 판단, 지금 건질 수 있는 것만이라도 건지자는 판단에, 이 자산들을 10억, 9억에도 팔아 치우기 시작한다. 그러자 갑은행의 총 자산이 이제 990억까지 떨어졌다. 어라? 이 자산의 시장 가치가 8억 밑으로 떨어지는 순간에는 갑은행의 총 자산은 총 부채보다 적어지게 되고, 이는 갑은행이 지불능력이 없어진다(insolvent)는 말이다!
그런데 시장이 처음에는 18억정도로 예상한 자산을 20억이라고 잘못 판단한 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패닉한 바람에, 사실 20년을 끝까지 기다렸으면 12억 정도는 회수할 수 있었음에도, 성급하게 7억에 팔아치우기 시작한 거라면? 이게 케인즈가 말한 "Markets can remain irrational a lot longer than you and I can remain solvent."이다. 시장이 한번 패닉 모드에 들어가면, 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쓰러지지 않아도 되는 회사들이 쓰러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 서브프라임 위기로 쓰러진 은행이나 펀드들의 대부분은 쓰러질만했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터무니 없이 비쌌다는 것 외에는 아직까지도 이들 자산이 실제로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는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결국 시가평가(mark to market) 시스템의 문제인데, 이는 사실 자산 가치를 매기는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사실과도 맥이 통한다. 나의 집이 나에게 금전적으로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내 집과 유사한 집이 얼마에 거래가 되는가를 내 집의 가치 척도로 삼는 건 비교적 합리적인 선택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격이 오를 때는 여기에 거품이 있는지 의심하기보다는 거의 항상 이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가격이 떨어질 때가 되면 갑자기 시장에 문제가 있다라고 호들갑을 떤다는 거다. 실제로는 가격이 떨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가격이 오를 때도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최근에 거품의 신호를 찾을 수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는 물리학자(네, 오타가 아니고 물리학자 맞습니다)들이 있는데, 관련 논문 첨부. 이미 글이 충분히 길어진 관계로, 이 논문 내용은 다음에 또 시간 내서 잠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논문 : The Financial Bubble Experiment: Advanced Diagnostics and Forecasts of Bubble Terminations Volume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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