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onomically considered, war and revolution are always bad business.
- 루드비흐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요새 하 세상이 뒤숭숭하니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로 하나.

오스 트리아 학파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인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전쟁에 대한 반대로도 꽤나 유명하다.

링크 : 미제스의 전쟁에 관련된 발언들 모음

이는 제1차대전의 패전국으로써 엄청난 양의 외채에 시달리던 시절에 정부의 경제 고문역을 지냈던 경력을 감안하면, "경제적으로 봤을 때, 전쟁과 혁명은 형편없는 사업"이라는 미제스의 이 발언은, 단순히 위대한 경제학자의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사유에 기반한 게 아니라 피부로 느껴야 했던 전쟁의 폐해에 기반한 것이리라.

물론 "그건 오스트리아가 패전국이어서 그랬던 거고, 승전국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말이다. 승전국이라면 패전국보다 상황이 훨씬 낫다는 점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승전국은 전쟁 덕분에 더 잘 살게 됐다고 생각한다면 틀린 말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아직도 아프리카처럼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바로 윗동네인 북한만 해도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인간이 먹을 것 걱정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불과 지난 2-300년 사이에 불과하다. 그 이전에는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의-식-주의 세가지를 충분하게 생산할 수 있느냐가 언제나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대부분의 농경 사회에서 흉년 한번 들면 전 국가가 피폐해졌다. 불과 4-50년전까지만해도, 바로 이땅에서만해도 매년 봄이면 보릿고개란 게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그와 동시에, 최근에 가뭄으로 인해 쌀농사가 시원찮다는 뉴스를 접하고도 정말 쌀을 못 구할까봐 걱정한 게 언제였는지 곰곰히 돌이켜보라. 이 4-50년 차이를 둔 두 가지 다른 세상에서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전자의 세계에서 한 사회의 경제는 '필요(need)'에 의해 작동한다면 후자의 세계에서는 '바람(want)'에 의해 작동한다. (여기서 잠시! 사실 필요와 바람이 어떤 명확한 경계를 갖고 갈리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옷이란 필요한 재화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원하는 재화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여기서 필요라는 건 생존에 직결된 개념으로 사용하기로 하자.)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먹을 게 부족한 사회에서는 먹을 걸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효과적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가 최우선 과제다. 이는 최종 생산량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생산성을 투입된 자원(input)에 비해 최종 생산량(output)이 얼마인가라고 본다면, 첫번째 방법은 생산성/효율을 높임으로써 똑같은 인풋으로 더 많은 아웃풋을 뽑아내는 게 한 가지고, 다른 한가지는 단순히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여 생산량을 높이는 거다.

두가지 해법 중 쉬운 건 인풋을 늘리는 거다. 그래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필요한 노동력은 전부 투입이 되고, 한뙈기의 땅덩이라도 더 경작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인해 농경 사회의 실업률은 엄청 낮다! 그렇지만 사용 가능한 자원을 전부 투입했는데도 먹을 게 모자라다면? 이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비료와 농기계의 사용, 생산성 높은 품종 개발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게 해서 생산성이 충분히 높아지기 시작해서 생산량이 필요한 정도를 넘치기 시작하면 이젠 투입하는 자원의 양을 줄일 수 있다. 나이든 노인들과 어린 아이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농경지 중에 조금 척박한 땅을 애써 경작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이제 자원이 남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기존에는 인풋으로 사용되던 자원이 남기 시작하면, 이 자원을 다른 데에 써먹을 수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뭐지?'를 고민하게 된다. 필요의 경제가 바람의 경제로 이동하는 거다. 필요의 경제에서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였다면, 바람의 경제에서는 발명이 필요의 아버지가 된다. (엄마, 아빠 메타포는 써먹긴 써먹었다만 내가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구만, 쿨럭. -_-,,)

먹을 걸 해결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옷을 원할 거라고 판단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선글라스를 원할 거라고 판단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은 남는 땅덩이를 사들여 방직공장을 차렸고, 한 사람은 선글라스 공장을 차렸는데, 선글라스 공장을 차린 사람의 경우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갔다면 쫄딱 망하는 수가 있다. 그렇지만 선글라스 사업의 실패가 시공간을 초월한 절대로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다. 옷의 생산성이 충분히 높아져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면 다시 선글라스 장사가 잘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때에 따라선 텔리비전이나 라디오처럼, 새로운 발명으로 인해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필요의 경제에서 바람의 경제로 이행이 많이 되면 될수록, 소비자의 요구는 다양해지고, 이를 미리 내다보기란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다양한 사람들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시행착오가 수없이 반복되게 되고, 이런 사업들의 흥망에 따라 실업률이 변화하게 된다.

자, 전쟁이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전쟁의 아주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협한다는 거다. '죽이거나 혹은 죽거나'다. 즉, 전쟁이 벌어지면 평소에는 아무짝에 쓸모가 없던, 총, 칼, 폭탄, 탱크, 전투기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진다. 이들에 대한 생산성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상대방의 생산성이 그와 맞먹는다면 이는 충분히 높지 않다. 게다가 총알, 폭탄 등은 소모품이다. 즉, 소모한 양만큼을 생산할 수 있어야 적과 맞설 수 있다. 따라서 생산량을 늘리는 게 중요하고, 이를 위해 효율과 인풋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 그래서 전쟁 중에는 실업률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실업률이 낮은 것과 사람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앞서 말했듯 풍요로운 사회일수록 소비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들, 소위 사치재의 소비의 비중이 높아진다. 그런데 전쟁이란 건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보니, 바람의 경제에서 필요의 경제로 급속한 전환을 요구한다. 그래서 낮은 실업률, 높은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산된 것들이 모두 즉각적으로 소모되고, 무언가를 파괴하는데 이용되기 때문에 생산량을 수치화한 GDP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들의 삶은 빈곤해지는 거다.

게다가 전쟁이 끝나는 순간, 승전국, 패전국 할 것 없이 이런 모든 생산 시설들이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에, 여기에 투입됐던 인력을 포함한 모든 자원들을 활용한 새로운 창구를 찾는 과도기를 겪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동안은 여전히 낮은 실업률과 높은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이는 결국 전쟁전의 삶을 회복하는 것뿐, 실제로 살기 더 좋아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봤을 때, 전쟁이란 형편없는 사업이란 거다. 도덕성 마저 포기한 대한민국 국민이 뽑은 경제 대통령 가카께서 이런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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