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상종

분류없음 2011/01/05 20:53
인간이란 동물이 잘 하는 거야 많지만, 지금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여기서 잘 한다는 건 "good at something"의 의미가 아니라 "cannot help but doing something"의 의미다. 암튼 그게 뭔고 하니, 다른 사람의 행위를 보고 그 행위의 의도를 읽는 거다. 일전에 마음이론(theory of mind) 이야기를 하면서 예를 들었다시피, 길 가다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사람이 씨익 웃었다면 그 사람이 왜 웃었는지에 대해 온갖 추측--얼굴에 뭐가 묻었나? 내가 아니라 내 뒤에 날 따라오는 사람을 보고 웃은 건가? 날 아는 사람인데 내가 못 알아봤나? 등등--을 하게 된다. 마음이론이란 게 기본적으로 "타인도 나의 그것과 유사한 마음이 있다"는 데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이런 다양한 경우의 수 중에서 보통은 '나라면 왜 웃었을까?'에 대한 답변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한다.

그런데 이게 타인에게 관용을 베푸는 데에는 독이다. 왜냐하면 관용이란 기본적으로 나와는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건데, 이는 타인들이 자신과 유사하다는 인식에 기반해서 다른 사람의 행위를 평가하려는 인간의 본능과는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용은 기껏해야 '나라면 그러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은 그럴 수도 있겠지' 정도에 머물게 마련. 관용을 베푸는 게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배워도 그러려면 결국 stretch of imagination이 필요한데, 이는 역시 꽤나 피곤한 일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새로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긴장관계가 발생한다. 내가 처음 만난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여기서 상대방의 행동이 내가 갖고 있는 기준에서 어긋난 경우가 발생하면, 우리는 두가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하나는 '나라면 저런 짓은 안 할 텐데'라고 생각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못 박거나, '응? 왜 그랬지? 내 기준으론 좀 이상하긴 하다만...'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지켜보거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타인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하지 말라고 배우는데, 이는 후자를 택하라는 가르침이다. 사실 후자를 사람들이 강조해서 가르치는 이유는 전자가 훨씬 본능적으로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다보면 한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상대방을 어떻게 대할지 결정할 수가 없다.

무슨 말인고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자기를 좋아하길 바라기 때문에 남들이 좋아할만한 행동을 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이 뭘 좋아하는지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예측하는 행위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데 상대방이 뭘 좋아하는지 예측한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은 이런 사람이다"라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때 가장 유용한 건 결국 마음이론이다. 이 판단을 내리는 데 폭넓은 관용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결국 인간이란 동물은 사람을 새로 만나서 사귈 때, 상대를 기쁘게 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내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들을 하게 프로그램되어 있단 이야기.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일을 상대방도 좋아하면 친해지는 거고, 그렇지 않다면 서로 '저 사람 어딘가 좀 이상한데?'라며 멀어지는 거고... 끼리끼리 모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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