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부도스왑과 보험

신용부도스왑(CDS: credit default swap)이라는 물건이 있다. 기본적인 개념은 보험과 동일하다. 구체적으로는 회사나 국가와 같은 경제주체의 부도 위험에 대한 보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보자. 갑이라는 사람이 A라는 회사에서 발행한 5년채 채권을 1억원어치 샀다고 하자. 그전까지는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이자를 꼬박꼬박 받다가 만기일이 다가오면 이 회사로부터 1억원을 돌려 받으면 그걸로 채권의 생명은 끝. 갑은 A사가 주는 이자만큼 수익을 올리는 좋고, A사는 사업의 확장에 필요한 목돈을 끌어올 수 있으니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투자의 위험은 언제나 있다. 갑은 A사가 망하지 않을 거라 믿고 채권을 구입하는 형태로 이 회사에 투자를 했지만, 만약 회사가 부도가 난다면? A사의 채권은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되고 갑은 A사가 망하기 전까지 받은 약간의 이자 외에 1억원을 거의 통째로 날린다고 보면 된다. 아주 큰 돈을 투자했다면 A사가 망할 아주 작은 가능성마저도 살벌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래서 이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싶어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요가 있다면 공급은 항상 있고, 공급이 있으면 수요도 발생한다. 위험조차도 팔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사는 사람이 생긴다.

방법은 여느 보험과 똑같다. A사의 채권을 가진 갑이 B사에 연락을 한다. 1억원짜리 채권을 샀는데 이에 대해 보험을 들고 싶다며, 매년 채권가격의 1%, 즉 100만원을 지불할 테니 만의 하나 A사가 부도날 경우 자신의 채권을 1억원에 사들이라는 거고, B사가 이에 응하면 거래는 성립한다. 그리고 이게 바로 CDS다. 이 경우 갑은 A사가 부도나든 말든 본인의 1억은 보존하게 되고, A사가 자신에게 지불한 이자 - B사에 지불해야할 CDS 요금(앞선 예에서는 연간 100만원)만큼의 수익을 올리게 된다. 수익률은 조금 줄어들지만 투자에 있어서 '안전'은 절대로 공짜가 아니다.

B사의 입장에서는 A사가 망하지 않는다면 매년 100만원의 이윤이 생기는 거고, A사가 망할 경우 갑에게 지불해야할 1억원만큼 손실을 입게 된다. A사가 망하지 않을 확률에 배팅을 하는 거지만, 여전히 좀 위험해 보인다. 이 위험을 분산하는 방법이 없진 않다. 여러 회사에 대한 CDS를 파는 거다. 자동차 보험회사에서 자동차가 있는 사람들 전체에게서 보험료를 받아 소수의 사고시 비용을 메우는 것과 같은 원리다. 사실 자동차 보험에 든 사람들이 전부 동시다발적으로 자동차 사고를 낸다면 자동차 보험회사는 눈깜짝할 사이에 도산이다. 그렇지만 그럴 확률은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사람이 사고를 낼 확률에 비해 확실히 작기 때문에 위험이 분산되는 거다.

마찬가지 논리로, 여러 회사들의 채권에 대한 CDS를 판매함으로써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다, 오하라. 그런데 과연 그럴까? -_-,, 일반적인 보험이 취급하는 '사고'의 경우 강원도에서 발생한 자동차 사고와 서울에서 발생한 또 다른 자동차 사고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다. 그러나 회사의 부도는 다르다. 특히 은행 같은 금융계 회사가 하나 쓰러질 경우 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고 빌려준 회사들의 부도 위험이 덩달아 증가한다! 결국 자동차 사고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경우의 자동차 보험회사 꼴이 되는 거다, 크허억.


보험에서 도박으로

CDS는 있는 그대로도 보험보다 위험한데, 사람들이 2000년대 초-중반들어 이 위험을 더 키워 제대로된 도박판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증권이나 채권등과는 달리 CDS 거래는 투명한 시장이 없이, CDS를 사고자 하는 사람과 팔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조용히 일어났다. 또한 CDS는 금융규제의 치외법권에 있어 왔다. 일반 보험처럼 보험금 지급액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확보해둬야 한다는 규정에 걸리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래서 가능했던 게 고(高)레버리지 부도 도박이다. 자, 내가 가진 돈이 1000만원이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규제도 없겠다, CDS를 파는 거다. 재정 상태가 괜찮은, 그래서 쉽게 망할 것 같지 않은 회사를 찾아내서, 그 회사의 채권을 가진 사람들과 흥정을 하는 거다. "당신 채권에 대해 보험 좀 들지 않겠소? 일년에 100만원만 내세요, 회사 망하면 1억까지 내가 물어드리리다." 그 회사가 망하지만 않는 한 나는 매년 100만원을 꼬박꼬박 버는 거다. 물론 그 회사가 망하면 쫄딱 망하는 거다. (회사가 망하면 1억을 줘야 하는데, 어차피 1억이 없는 마당에 어떤 의미에서는 자본금이란 게 무의미한 수준이다.)

충분히 커보이는 이 불씨가 다가 아니다. 인간의 탐욕이란 게 얼마나 끝이 없는고 하니, 말리는 사람이 없다고, 채권이 없는 사람들한테도 CDS를 무작정 팔기 시작한다. 앞선 예로 돌아가보자. 갑의 경우 자신이 소유한 A사의 1억원짜리 채권에 대한 CDS를 연간 100만원의 요금으로 B사로 부터 사들였다. 그런데 이 정보를 어떻게 접한 을이 가만히 보니 A사의 재정 상태가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아보이기만 하지 않는다. 그래서 A사의 채권은 사지도 않고, B사에 연락을 한다. 나도 A사에 대해 1억원짜리 CDS를 사고 싶다고... 매년 100만원을 줄 테니, A사가 망하면 1억을 달라는 거고, A사가 망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B사는 이 거래에 응한다. 을은 결국 A사가 안 망하면 매년 100만원의 손실을 입는다. (갑처럼 실제로 A사의 채권이 없으므로 A사로부터 받는 이자가 없다!) 그렇지만 A사가 망한다면 그간 B사에 지불했던 CDS 금액을 제외하고 거의 통째로 1억원을 벌어들인다는 시나리오. (갑은 A사가 망하면 간신히 자신이 A사에 투자했던 본전을 찾는 것뿐이란 말이다!)

이렇게 하다보니 5조 달러 어치의 채권에 대해 총 60조 달러에 달하는 CDS가 팔려버렸다는... 그리고 물론 이렇게 많은 CDS를 팔아치운 회사들이 갖고 있는 총알은 어느 회사가 망하느냐에 따라서는 택도 없었다는 거. 그렇게 CDS를 열심히 팔았다가 망할 뻔한 회사가 바로 국내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폰서로 더 유명할지 모르는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 AIG다. 부도에 대한 보험을 파는 회사가 앞서 말한 부도는 부도를 키운다는 예를 단적으로 보여주시는 이 아이러니란...


CDS로 한배 타기

그렇지만 일이 이쯤에서만 끝났더라면, 상황이 참 뭐같긴 하겠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가 처한 이 불신의 시대가 이렇게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지지는 않았을 거다. 믿거나 말거나, 상황은 여기서 또 한번 시궁창 같아질 수 있다. 앞서서 예를 든 을의 도박을 되짚어보자. A사가 망하면 1억 이득, A사가 안 망하면 매년 100만원 손실. 이런 고위험 고소득 투자 방식에서 고소득을 포기함으로써 위험을 상쇄시키는 방법이 또 있다. (사람들 정말 돈 버는 법 궁리를 많이 하긴 많이 했다. 문제는 모든 돈 버는 방식이 국지적으로만 유효했다는 거랄까. 금융 시스템 전체가 어떻게 떠받들어지고 있는지, 이 시스템을 어떻게 떠받들어야하는지의 숲에는 관심이 없었거나, 있었어도 돈벌이가 안 되니까 무시했거나.)

자, A사에 대한 CDS를 쥐고 있는데, A사의 재정 상태가 안 좋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 경우 이 CDS를 계속 쥐고 있음으로써 몇백만원을 잃거나, 1억을 따거나에 배팅을 하는 것이 한 가지. 반면에 A사의 부도 위험이 커질 경우 A사에 대한 CDS의 가격도 올라가게 마련이다. 자동차 사고를 자주 내면 보험료가 오르는 것처럼, 부도 위험이 커지면 부도에 대한 보험료가 오르는 거다. 그래서 을이 B사로부터 CDS를 살 땐 연간 100만원씩 B사에 주기로 했는데, 최근에는 연간 200만원씩 내고라도 이 CDS를 사겠다는 사람 병이 등장한다면? 을이 여기서 끼어들어 병에게 자신이 쥐고 있던 CDS를 연 200만원에 판다. 자신은 여전히 B사에 연 100만원을 내야하지만, 어쨌든 순이익 100만원이 생겼다. A사가 망하지 않는 경우의 순손실 100만원이 순이익 100만원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그리고 A사가 망한다면? 병에게 1억원을 줘야하지만 나는 B사로부터 1억원을 받게 돼 있으니까 상관없다. 위험은 사라지고 순이익만 남는다. A사가 위험하다는 소문이 나면 날수록 CDS 가격은 오르게 되고, 가격이 오를 때마다 CDS를 다음 사람에게 팔아치움으로써 손실에 대한 위험을 다음 사람에게 전가할수 있다.

CDS를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과정은 아주 합리적인 위험 관리방법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스템의 신용을 순식간에 흔들어버리게 된 이유는, CDS 항상 뒤에서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나에게 위험을 보증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겠는데, 그 사람에게 위험을 보증하는 사람이 누군지는 알 길이 없네. 베어스턴스, 레만 브라더스, 메릴 린치가 줄줄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그게 누군지 관심이 없었다. 에이, 그런 게 무슨 상관, 어차피 아무도 안 망할 텐데 CDS를 맨 마지막에 쥐고 있는 놈이 독박 쓰겠지. 그런데 대형 투자은행들이 차례로 넘어가고, AIG는 CDS 보증해줄 돈 없다고 누웠더니 미국 정부에서 간신히 살려주고... 그러자 양상이 180도 달라졌다. 애초부터 갚아줄 방법도 없이 팔기 시작한 CDS로 서로 줄줄이 엮여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명이 부도를 내면 연쇄부도다!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이뭐병. -_-,,

상황이 이렇다면? 시바, 믿을 사람은 역시 나밖에 없다. 신용? 그런 거 믿는 당신은 애초에 로맨티스트, 나 혼자 살거나 다같이 죽거나의 이 살벌한 바닥에 설 자격이 없어! 그렇게 2008년의 가을, 신용에 위기는 찾아왔다, 어흥!

아직도 안 끝나네. orz 신용 위기가 주식 시장과 실물 경제로 옮겨붙는 이야기는 다음에... (진도 얼마나 나갈지 예상 못하고 강의 계획 짜는 초짜 강사의 심정.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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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벨로 2008/10/28 1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요즘은 경제 얘기 하는 거야? (다양해졌구나!)
    어렵긴 마찬가지다 =_=;;

  2. 너부리군 2008/10/28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잘 읽었삼 캬캬~

  3. mk 2008/10/29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많이 배우구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