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공부를 많이 안 해서 플라톤이 인간의 정신 세계를 살찌우는데 얼마나 크게 기여했는지 감이 잘 안 오는데,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감성과 이성의 구분은 오늘날까지도 우리를 엿먹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은 감성과 이성의 관계를 마차에 비유하며, 감성은 말, 이성은 그 말을 조정하는 마부와 같다고 봤는데, 이는 감성을 이성을 이용하여 통제해야 할 어떤 것으로 바라본 거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들 중 비이성적 판단, 생각없는 바보짓, 충동구매 따위는 모두 이런 플라톤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언어들이다.
1982년 엘리엇이란 사나이가 신경과전문의 안토니오 다마시오를 찾아온다. 엘리엇은 수퍼마켓에서 시리얼 하나를 고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결정장애를 겪고 있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본 다마시오는, 그가 대뇌피질에서 발견된 종양을 제거한 후부터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는 걸 알았다.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에게 아무런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고, 엘리엇과 수차례 상담을 한 다마시오 본인도 엘리엇이 감정을 느끼는 중추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했다.
그런 그의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다마시오는 엘리엇에게 보통의 사람이라면 격렬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만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땀샘의 반응을 살펴 봤는데, 엘리엇은 그 어떤 사진에도 감정적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냈다. 그 후 다마시오는 엘리엇과 비슷한 뇌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되는데, 그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인지능력과 지적능력을 보였음에도 심각한 결정장애를 안고 있었다.
대체 왜,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문제는 엘리엇에게도 있었지만, 플라톤을 아무 생각없이 따른 우리에게도 있었다. 우리는 다양한 변수들을 충분히 고려할 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감정의 도움 없이는 시리얼 하나를 고르는 간단한 일에서조차도, 색깔, 영양성분, 원재료, 맛 등의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어떤 한가지를 고르는 합리적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하며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게 인간이란 동물.
실상은 감성이 갈갈이 찢겨져 이리저리 휩쓸릴 때 이를 이성이 바로 잡아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이성이 이것저것 다 고려하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감성이 그 무게추를 살짝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데이빗 흄의 "Reason is, and ought only to be the slave of the passions."이란 한마디는 너무도 정확하고 날카롭다.
극도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에게 사람을 사귄다는 일은, 그게 친구를 만드는 일이든 연애든, 불가능하다. 인간은 누구나 결점이 있고, 나에게 "따~악" 맞는 친구란 없다. 실연의 아픔이란 게, 상대가 누구였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뎌지고 잊혀지게 마련이라면, 나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없어선 안 될 존재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시점에선가는 두눈을 질끈 감고 상대에게 의지하는 신뢰의 도약(leap of faith)을 할 필요가 있다.
In God, we trust. In (some) people, we also trust, however unreasonable it seems. (And of course, all others must bring data. ㅋㅋㅋ)
1982년 엘리엇이란 사나이가 신경과전문의 안토니오 다마시오를 찾아온다. 엘리엇은 수퍼마켓에서 시리얼 하나를 고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결정장애를 겪고 있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본 다마시오는, 그가 대뇌피질에서 발견된 종양을 제거한 후부터 그런 증상이 나타났다는 걸 알았다. 그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에게 아무런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전했고, 엘리엇과 수차례 상담을 한 다마시오 본인도 엘리엇이 감정을 느끼는 중추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을 했다.
그런 그의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다마시오는 엘리엇에게 보통의 사람이라면 격렬한 감정적 반응을 일으킬만한 사진들을 보여주며 땀샘의 반응을 살펴 봤는데, 엘리엇은 그 어떤 사진에도 감정적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냈다. 그 후 다마시오는 엘리엇과 비슷한 뇌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게 되는데, 그들은 대부분 정상적인 인지능력과 지적능력을 보였음에도 심각한 결정장애를 안고 있었다.
대체 왜,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문제는 엘리엇에게도 있었지만, 플라톤을 아무 생각없이 따른 우리에게도 있었다. 우리는 다양한 변수들을 충분히 고려할 때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감정의 도움 없이는 시리얼 하나를 고르는 간단한 일에서조차도, 색깔, 영양성분, 원재료, 맛 등의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어떤 한가지를 고르는 합리적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를 놓고 끊임없이 갈등하며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게 인간이란 동물.
실상은 감성이 갈갈이 찢겨져 이리저리 휩쓸릴 때 이를 이성이 바로 잡아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이성이 이것저것 다 고려하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 감성이 그 무게추를 살짝 기울임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게 뭔지를 알게 된다. 그래서 데이빗 흄의 "Reason is, and ought only to be the slave of the passions."이란 한마디는 너무도 정확하고 날카롭다.
극도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에게 사람을 사귄다는 일은, 그게 친구를 만드는 일이든 연애든, 불가능하다. 인간은 누구나 결점이 있고, 나에게 "따~악" 맞는 친구란 없다. 실연의 아픔이란 게, 상대가 누구였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무뎌지고 잊혀지게 마련이라면, 나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없어선 안 될 존재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시점에선가는 두눈을 질끈 감고 상대에게 의지하는 신뢰의 도약(leap of faith)을 할 필요가 있다.
In God, we trust. In (some) people, we also trust, however unreasonable it seems. (And of course, all others must bring data. ㅋㅋㅋ)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 첨 알았네. 근데 저 결정장애라는 말 참 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