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설명한 창조적 파괴의 중요한 효과는 사회 전체로 봤을 때 기술의 진보로 기존에 존재하던 상품이나 서비스의 생산성이 증가함에 따라 이들의 가격은 하락하고, 이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력이 줄어듦으로써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에 소비 혹은 투자할 여분의 자본과 노동력이 생긴다는 거다. 결국 건 (기존의 상품과 서비스의) 파괴를 통한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의) 창조적 프로세스기 때문에, 파괴로 인한 피해자와 창조로 인한 수혜자가 발생하는 건 피할 수 없다. 이를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인데, 어떤 시스템이 더 나은가 등도 중요한 문제지만, 이 글의 취지는 사회가 부를 축적하는 기계적인 과정에 대한 설명을 하려는 것인만큼 이 문제는 생략하고 넘어가겠다.
아무튼 창조적 파괴는 소위 역동적인 경제 발전의 핵심인데, 이 기저에는 존 록(John Locke)과 데이비드 흄(David Hume)으로부터 출발한 반중상주의가 깔려 있다. 물론 이런 반중상주의가 힘을 얻은 건 경제학의 아버지랄 수 있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 덕분이지만, 사실 이 모든 공을 아담 스미스에게 돌리는 건 결례. 중상주의적 기조는 사실 오늘날까지도 조금 남아 있는데, 이 중상주의의 가장 큰 오류는 "부=돈=금"이라는 가정 하에 "금을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한 거다. 그런 이유로 당대에는 무역수지 흑자를 올리는 게--물건을 댓가로 돈/금을 수입하는 게 중요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금을 찾아 미개척지를 헤맸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미친 듯이 금광을 찾아다녔는데, 그렇게 열심히 금을 긁어모은 결과는 인플레이션이뿐이었다.
오늘날에도 "돈이 많은 사람이 부자"라는 인식이 팽배한데, 이는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말이다. 사람들은 가끔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늘에서 돈뭉치가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를 한다. 뭐할라고? 뭐, 보통은 갖고 싶었던 걸 사거나, 빚을 갚거나, 꼭 해보고 싶었던 여행을 하거나 등등... 돈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통장 잔고가 두둑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사람들도 나중에 돈이 필요한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지, 그 숫자 자체가 안정을 주는 건 아니다.
즉, 돈은 수단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뭐, 돈으로 밑을 닦아야 제대로 볼 일을 본 것 같다거나, 침대 대신에 돈을 방바닥에 쌓아놓고 잠을 자야 잠이 잘 온다거나, 돈에 불을 붙여 돈이 활활 타오르는 걸 볼 때 오르가즘을 느끼는 사람이 없다고는 말을 못하겠지만, 보통은 돈은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다.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한 교환의 수단일 뿐이다. 반중상주의자들이 깨달은 것이 바로 이거다. 금이 아무리 많아도, 그 금으로 살 수 있는 게 없다면, 그 금은 일반적인 돌덩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거다.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상선이 난파를 했는데, 두명의 생존자 갑과 을이 무인도에 갖혔다. 두명의 생존자 외에 다양한 재화들이 무인도에 같이 쓸려 왔는데, 갑은 이들 중 빵과 물, 무전기를 챙겼고, 을은 금과 다이아몬드를 챙겼다. 갑이 무전기를 통해 SOS를 친 결과 일주일 후에나 구조를 올 수 있다고 한다. 갑이 자신이 갖고 있는 빵과 물을 보니 혼자 일주일, 정말 아껴 먹으면 둘이 일주일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반면에 을은 금방 구조가 될줄 알고 며칠 굶주리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굶는 건 굶는다고 쳐도 일주일간 물을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살 수는 없잖은가. 그래서 을이 갑에게 금과 물을 바꾸자고 한다면 도대체 금 얼만큼이 물한병의 적절한 값일까? 흔히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랄 수 있겠다.
우리 주변 풍경과 비교하면 빵과 물값이 엄청나게 치솟은 셈이고, 이게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즉, 돈 또는 금이 이를 갖고 교환할 수 있는 다양한 재화에 비해 많은 경우, 돈의 상대적인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돈에 비해 다양한 재화의 양이 많다면, 돈의 상대적 가치가 올라 가격은 떨어지고, 이게 디플레이션이다.
결국 반중상주의자들은 부자라는 건 "돈이 얼마나 많으냐"이 아니라 "갖고 있는 돈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살/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깨달은 거다. 그리고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나 칼 맑스(Karl Marx)에 따르면 이는 결국 자신의 노동력이 얼마나 많은 자원과 재화에 대한 지배력을 갖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리카도와 맑스의 노동 이론에는 헛점이 조금 있지만, 어차피 인구의 99% 이상이 노동자인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결국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것인만큼,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자.)
앞선 글에서 화장지 회사 아누스의 직원들의 노동의 가치가 높아짐으로써, 기존에 화장지 회사 크레피투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할 일을 잃기는 했지만, 그들이 다시 기존에 에르메스별에서 구경할 수 없었던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에르메스별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그만큼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게 되는 거고, 그만큼 부자가 된 거다. 물론 이렇게 새로 생겨난 제품들이 즉시 에르메스별의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창조적 파괴를 통해 계속해서 생산성을 높여 나감으로써, 이 혜택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게 된다. 2-30년 전만 해도 자동차, 컴퓨터, 해외여행 등이 극소수 계층의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꽤나 보편화가 된 걸 생각해보면 된다.
응?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앞서서는 창조적 파괴의 결과 화장지값이 떨어졌는데, 이런 과정이 모든 산업 전반에 걸쳐 벌어진다면, 결국 모든 제품의 가격이 꾸준히 떨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즉, 돈에 비해 다른 재화들이 계속 새롭게 생산되는 거라면 디플레이션이 계속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 신문을 펼쳐보면 소비자 물가가 맨날 오른다며 인플레이션 이야기만 하잖아.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앞뒤가 안 맞잖아. 좋은 지적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 (중앙)은행과 통화공급(money supply)이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는 내일 이어서.
아무튼 창조적 파괴는 소위 역동적인 경제 발전의 핵심인데, 이 기저에는 존 록(John Locke)과 데이비드 흄(David Hume)으로부터 출발한 반중상주의가 깔려 있다. 물론 이런 반중상주의가 힘을 얻은 건 경제학의 아버지랄 수 있는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 덕분이지만, 사실 이 모든 공을 아담 스미스에게 돌리는 건 결례. 중상주의적 기조는 사실 오늘날까지도 조금 남아 있는데, 이 중상주의의 가장 큰 오류는 "부=돈=금"이라는 가정 하에 "금을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생각한 거다. 그런 이유로 당대에는 무역수지 흑자를 올리는 게--물건을 댓가로 돈/금을 수입하는 게 중요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금을 찾아 미개척지를 헤맸다.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미친 듯이 금광을 찾아다녔는데, 그렇게 열심히 금을 긁어모은 결과는 인플레이션이뿐이었다.
오늘날에도 "돈이 많은 사람이 부자"라는 인식이 팽배한데, 이는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말이다. 사람들은 가끔 농담반 진담반으로 하늘에서 돈뭉치가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를 한다. 뭐할라고? 뭐, 보통은 갖고 싶었던 걸 사거나, 빚을 갚거나, 꼭 해보고 싶었던 여행을 하거나 등등... 돈 그 자체가 목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 그저 통장 잔고가 두둑해야 마음이 놓인다는 사람들도 나중에 돈이 필요한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지, 그 숫자 자체가 안정을 주는 건 아니다.
즉, 돈은 수단으로서 가치를 갖는다. 뭐, 돈으로 밑을 닦아야 제대로 볼 일을 본 것 같다거나, 침대 대신에 돈을 방바닥에 쌓아놓고 잠을 자야 잠이 잘 온다거나, 돈에 불을 붙여 돈이 활활 타오르는 걸 볼 때 오르가즘을 느끼는 사람이 없다고는 말을 못하겠지만, 보통은 돈은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다.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얻기 위한 교환의 수단일 뿐이다. 반중상주의자들이 깨달은 것이 바로 이거다. 금이 아무리 많아도, 그 금으로 살 수 있는 게 없다면, 그 금은 일반적인 돌덩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거다.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상선이 난파를 했는데, 두명의 생존자 갑과 을이 무인도에 갖혔다. 두명의 생존자 외에 다양한 재화들이 무인도에 같이 쓸려 왔는데, 갑은 이들 중 빵과 물, 무전기를 챙겼고, 을은 금과 다이아몬드를 챙겼다. 갑이 무전기를 통해 SOS를 친 결과 일주일 후에나 구조를 올 수 있다고 한다. 갑이 자신이 갖고 있는 빵과 물을 보니 혼자 일주일, 정말 아껴 먹으면 둘이 일주일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반면에 을은 금방 구조가 될줄 알고 며칠 굶주리면 되리라 생각했는데,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굶는 건 굶는다고 쳐도 일주일간 물을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살 수는 없잖은가. 그래서 을이 갑에게 금과 물을 바꾸자고 한다면 도대체 금 얼만큼이 물한병의 적절한 값일까? 흔히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랄 수 있겠다.
우리 주변 풍경과 비교하면 빵과 물값이 엄청나게 치솟은 셈이고, 이게 바로 인플레이션이다. 즉, 돈 또는 금이 이를 갖고 교환할 수 있는 다양한 재화에 비해 많은 경우, 돈의 상대적인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현상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돈에 비해 다양한 재화의 양이 많다면, 돈의 상대적 가치가 올라 가격은 떨어지고, 이게 디플레이션이다.
결국 반중상주의자들은 부자라는 건 "돈이 얼마나 많으냐"이 아니라 "갖고 있는 돈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살/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는 걸 깨달은 거다. 그리고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나 칼 맑스(Karl Marx)에 따르면 이는 결국 자신의 노동력이 얼마나 많은 자원과 재화에 대한 지배력을 갖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물론 리카도와 맑스의 노동 이론에는 헛점이 조금 있지만, 어차피 인구의 99% 이상이 노동자인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결국 노동의 가치를 높이는 것인만큼, 여기서는 그냥 넘어가자.)
앞선 글에서 화장지 회사 아누스의 직원들의 노동의 가치가 높아짐으로써, 기존에 화장지 회사 크레피투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할 일을 잃기는 했지만, 그들이 다시 기존에 에르메스별에서 구경할 수 없었던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게 되면, 에르메스별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그만큼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게 되는 거고, 그만큼 부자가 된 거다. 물론 이렇게 새로 생겨난 제품들이 즉시 에르메스별의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창조적 파괴를 통해 계속해서 생산성을 높여 나감으로써, 이 혜택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게 된다. 2-30년 전만 해도 자동차, 컴퓨터, 해외여행 등이 극소수 계층의 부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꽤나 보편화가 된 걸 생각해보면 된다.
응? 그런데 이상한 게 있다. 앞서서는 창조적 파괴의 결과 화장지값이 떨어졌는데, 이런 과정이 모든 산업 전반에 걸쳐 벌어진다면, 결국 모든 제품의 가격이 꾸준히 떨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즉, 돈에 비해 다른 재화들이 계속 새롭게 생산되는 거라면 디플레이션이 계속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 신문을 펼쳐보면 소비자 물가가 맨날 오른다며 인플레이션 이야기만 하잖아.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앞뒤가 안 맞잖아. 좋은 지적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 (중앙)은행과 통화공급(money supply)이 등장합니다. 이 이야기는 내일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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