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이야기는 이미 한번 했지만, 아침에 뉴스 접하고 생각나는대로 갈겨 쓰고는, 아고라에 올릴 겸 오후에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해서 김에 한번 더. 뭐, 따지고 보면 같은 내용.
보통 선거에서 '되지 않을 사람에게 투표하는 건 바보짓'이라는 소위 사표론이 있다. 2004년 유시민이 민노당 사표론을 말해서 시끄러운 적이 있었는데(관련기사), 그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이번에 펑~하고 제대로 터졌다. 사표론의 핵심은 어차피 개인의 표는 적게는 몇십, 많게는 몇억 중에 하나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 한표는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다는 거다. 그 표들이 충분히 모여 당선자를 만들어낼 때에, 그 한개의 표는 그중의 하나로서 유효한 가치를 갖는다는 논리다. 뭐, 일견 그럴 듯한데, 이는 사실 전형적인 강자의 혹은 독재의 논리다.
사표론에 따르면 자기 표가 유효하려면 될 사람을 뽑아야 된다. 이렇게 되면 자기 생각에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뽑아야 된다. 어라, 뭔가 좀 이상하잖아? 보통 선거전 여론조사를 하면 지지후보도 묻지만 동시에 누가 당선될 것 같은가도 묻는다. 만약 사표론에 충실하자면, 이 당선 가능성에 대한 조사 결과가 선거 결과와 같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왜?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에 이야기를 살짝 바꿔 보자. 선거와 자식 성별은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런데 선거의 결과가 예측하기 어렵다면 선거 전에 누구에게 던진 표는 사표고, 누구에게 던진 표는 사표가 아닐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정보의 문제다.
요새야--이번 같은 황당한 경우를 제외하고는--여론조사도 비교적 정확하고, 그 결과도 투명하게 공개가 되니까, 선거의 결과를 예측하는 게 가능하지만, 정보를 수집하는 건 물론이고, 그 정보를 유통시키는 것도 어렵다면? 결국 선거 결과에 대한 예측을--주변 사람들과 이야길 나누고, 길가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길 줏어듣는 등의--철저하게 사적 경험인 경험을 통해서 하게 된다. 이 경우 샘플링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예측과 실제 결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 표가 죽을지 살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 그러면 요새처럼 정보가 범람하는 세상에선 어떨까? 정보가 범람한다고는 해도, 사실 선거 전에 선거의 판세를 그나마 가장 정확히 예측하는 건 여론조사다. 선거전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세훈과 한명숙의 지지율 차이가 두자릿수가 났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사표론에 따라 투표를 한다면, 자기 표가 죽는 걸 막기 위해 전부 오세훈에게 투표를 해서 오세훈이 90% 이상의 지지율로 당선이 됐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왜?
나의 표는 소중하니까.
그렇다, 당선 가능성과는 별개로 민주주의에서 투표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표현하는 행위다. 남들의 희망 사항과는 별개로 나의 희망 사항을 표현하는 행위다. 사표론에 선행하는, 투표를 통해 실현하는 정치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정치적 신념이 비슷하고, 나의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집권하기를 바라는 희망의 표현이다.
물론 "지금 노회찬을 찍은, 사표를 던진 사람들이 아니라, 그 동기 부여를 한 노회찬을 비난비판하는 것뿐이라고"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표를 던진 사람의 심정이나, 당선이 안 될 걸 알고도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이나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적 신념의 표현이란 의미에서 그 본질은 마찬가지다.
오세훈과 한명숙의 지지율이 불과 0.6% 차이라고 하지만 표수로 2만 표가 넘는다. 당신의 한표는, 적게는 투표를 한 서울의 유권자 약 450만분의 1, 많이 쳐줘도 바로 그 0.6% 차이에 해당하는 약 2만6천분의 1의 가치밖에 없다. 당신의 에고(ego)가 얼마나 크던간에,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한표가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었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단 한명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공휴일인데도 어디 놀러가지 않고, 임시공휴일이지만 출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귀찮음을 무릎쓰고 투표를 한 건, 내 한 표가 나한테는 2만 6천분의 1이라는 보잘것없는 수치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당선될 리가 없으니 선거에 나오지 말라는 말, 그 사람에게 던진 한표는 사표니 그 사람을 찍지 말라는 말은, 내 한표는 선거 결과에 영향이 없으니 투표하지 말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당선될 리도 없고, 별 의미없이 버려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향하는 게 민주주의라면 존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는 늘 단 한명의 후보만이 서있을 테고, 민주시민에게 그것보다 비참한 건 없다.
자본주의가 문제점도 많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작동하는 이유는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기 때문이다. 쏘나타가 좋다고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도, 모든 사람에게 쏘나타가 적합한 건 아니다. 그걸 간파한 누군가는 마티즈가 필요한 사람에게 마티즈를 제공한다. 물론 차체 디자인, 재질, 엔진, 시트 등을 완전히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정도의 선택권을 제공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그 이전의 어떤 시스템보다 소비자들에게 많은 선택권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선택권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옷을 사러 갔는데, 옷 가게도 하나뿐, 옷 브랜드도 하나뿐인데다가, 똑같은 디자인의 청바지에 하얀 면티밖에 없는 세상을 떠올려 보라. 그 청바지, 그 면티의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 삶이 그다지 풍요롭다는 생각은 안 들 거다. 그게 바로 우리가 흔히 경계하는 독점이란 거다.
유권자가 서로를 다그치며 서로의 선택권을 줄여 나가다보면 남는 건 독재자다. 우리가 노회찬에게 물어야 하는 건 "왜 끝까지 남았냐?"가 아니라, 지상욱, 노회찬, 한명숙, 오세훈 모두에게 "저 사람들과 차별되는, 당신만이 우리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뭐냐?"여야 한다. 우리의 고민은 3%니까 그냥 없애는 낫지 않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3%를 30%로 만들 수 있을까여야 한다. 그들에게서 듣고 싶은 답변이 없다면 "다른 사람 또 없어?"여야지 "너, 너, 너는 어차피 안 되니까 껃여"라고 다 처내다보면, 남는 건 정치적 독과점이다. 이걸 다른 말로는 독재라고 부른다.
@ 물론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다. 자본주의와 달리 대부분의 대의민주주의는 승자독식 시스템이기 때문에, 다양한 선택권이 항상 실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다양성은 여전히 "이번엔 뽑아주지만 실수하면 다음번엔 너 말고도 사람 많아"라는 형태로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충술히 수행한다.
보통 선거에서 '되지 않을 사람에게 투표하는 건 바보짓'이라는 소위 사표론이 있다. 2004년 유시민이 민노당 사표론을 말해서 시끄러운 적이 있었는데(관련기사), 그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이번에 펑~하고 제대로 터졌다. 사표론의 핵심은 어차피 개인의 표는 적게는 몇십, 많게는 몇억 중에 하나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 한표는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다는 거다. 그 표들이 충분히 모여 당선자를 만들어낼 때에, 그 한개의 표는 그중의 하나로서 유효한 가치를 갖는다는 논리다. 뭐, 일견 그럴 듯한데, 이는 사실 전형적인 강자의 혹은 독재의 논리다.
사표론에 따르면 자기 표가 유효하려면 될 사람을 뽑아야 된다. 이렇게 되면 자기 생각에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할 것 같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뽑아야 된다. 어라, 뭔가 좀 이상하잖아? 보통 선거전 여론조사를 하면 지지후보도 묻지만 동시에 누가 당선될 것 같은가도 묻는다. 만약 사표론에 충실하자면, 이 당선 가능성에 대한 조사 결과가 선거 결과와 같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왜?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 전에 이야기를 살짝 바꿔 보자. 선거와 자식 성별은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런데 선거의 결과가 예측하기 어렵다면 선거 전에 누구에게 던진 표는 사표고, 누구에게 던진 표는 사표가 아닐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정보의 문제다.
요새야--이번 같은 황당한 경우를 제외하고는--여론조사도 비교적 정확하고, 그 결과도 투명하게 공개가 되니까, 선거의 결과를 예측하는 게 가능하지만, 정보를 수집하는 건 물론이고, 그 정보를 유통시키는 것도 어렵다면? 결국 선거 결과에 대한 예측을--주변 사람들과 이야길 나누고, 길가다 사람들이 하는 이야길 줏어듣는 등의--철저하게 사적 경험인 경험을 통해서 하게 된다. 이 경우 샘플링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예측과 실제 결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 표가 죽을지 살지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자, 그러면 요새처럼 정보가 범람하는 세상에선 어떨까? 정보가 범람한다고는 해도, 사실 선거 전에 선거의 판세를 그나마 가장 정확히 예측하는 건 여론조사다. 선거전 마지막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세훈과 한명숙의 지지율 차이가 두자릿수가 났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사표론에 따라 투표를 한다면, 자기 표가 죽는 걸 막기 위해 전부 오세훈에게 투표를 해서 오세훈이 90% 이상의 지지율로 당선이 됐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왜?
나의 표는 소중하니까.
그렇다, 당선 가능성과는 별개로 민주주의에서 투표는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표현하는 행위다. 남들의 희망 사항과는 별개로 나의 희망 사항을 표현하는 행위다. 사표론에 선행하는, 투표를 통해 실현하는 정치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정치적 신념이 비슷하고, 나의 이익을 대변해줄 수 있는 사람이 집권하기를 바라는 희망의 표현이다.
물론 "지금 노회찬을 찍은, 사표를 던진 사람들이 아니라, 그 동기 부여를 한 노회찬을 비난비판하는 것뿐이라고"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사표를 던진 사람의 심정이나, 당선이 안 될 걸 알고도 선거에 출마하는 사람이나 민주주의 하에서 정치적 신념의 표현이란 의미에서 그 본질은 마찬가지다.
오세훈과 한명숙의 지지율이 불과 0.6% 차이라고 하지만 표수로 2만 표가 넘는다. 당신의 한표는, 적게는 투표를 한 서울의 유권자 약 450만분의 1, 많이 쳐줘도 바로 그 0.6% 차이에 해당하는 약 2만6천분의 1의 가치밖에 없다. 당신의 에고(ego)가 얼마나 크던간에, 지금 이 자리에서 내 한표가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었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단 한명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시공휴일인데도 어디 놀러가지 않고, 임시공휴일이지만 출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귀찮음을 무릎쓰고 투표를 한 건, 내 한 표가 나한테는 2만 6천분의 1이라는 보잘것없는 수치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은 당선될 리가 없으니 선거에 나오지 말라는 말, 그 사람에게 던진 한표는 사표니 그 사람을 찍지 말라는 말은, 내 한표는 선거 결과에 영향이 없으니 투표하지 말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당선될 리도 없고, 별 의미없이 버려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향하는 게 민주주의라면 존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 앞에는 늘 단 한명의 후보만이 서있을 테고, 민주시민에게 그것보다 비참한 건 없다.
자본주의가 문제점도 많지만, 그래도 이만큼이나마 작동하는 이유는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기 때문이다. 쏘나타가 좋다고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도, 모든 사람에게 쏘나타가 적합한 건 아니다. 그걸 간파한 누군가는 마티즈가 필요한 사람에게 마티즈를 제공한다. 물론 차체 디자인, 재질, 엔진, 시트 등을 완전히 주문 제작할 수 있는 정도의 선택권을 제공하기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그 이전의 어떤 시스템보다 소비자들에게 많은 선택권을 제공한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선택권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옷을 사러 갔는데, 옷 가게도 하나뿐, 옷 브랜드도 하나뿐인데다가, 똑같은 디자인의 청바지에 하얀 면티밖에 없는 세상을 떠올려 보라. 그 청바지, 그 면티의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그 삶이 그다지 풍요롭다는 생각은 안 들 거다. 그게 바로 우리가 흔히 경계하는 독점이란 거다.
유권자가 서로를 다그치며 서로의 선택권을 줄여 나가다보면 남는 건 독재자다. 우리가 노회찬에게 물어야 하는 건 "왜 끝까지 남았냐?"가 아니라, 지상욱, 노회찬, 한명숙, 오세훈 모두에게 "저 사람들과 차별되는, 당신만이 우리한테 해줄 수 있는 게 뭐냐?"여야 한다. 우리의 고민은 3%니까 그냥 없애는 낫지 않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3%를 30%로 만들 수 있을까여야 한다. 그들에게서 듣고 싶은 답변이 없다면 "다른 사람 또 없어?"여야지 "너, 너, 너는 어차피 안 되니까 껃여"라고 다 처내다보면, 남는 건 정치적 독과점이다. 이걸 다른 말로는 독재라고 부른다.
@ 물론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에는 큰 차이가 하나 있다. 자본주의와 달리 대부분의 대의민주주의는 승자독식 시스템이기 때문에, 다양한 선택권이 항상 실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다양성은 여전히 "이번엔 뽑아주지만 실수하면 다음번엔 너 말고도 사람 많아"라는 형태로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충술히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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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아고라에 올린 거야? 오타 많은데.
밑에서 두번째 단락 3행. "우리의 고민은 3%니까 그냥 없애는 '게 or 편이' 낫지 않을까"로 고쳐야.
마지막 단락 마지막 문장은, ...라는 행태로 권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로 고쳐야 하고.
괜찮아, 아고라는 글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 사람들이 안 읽어. ㅡㅠㅡ (그걸 알면서 왜 올린 거임?)
맞춤법 고쳐주는 자상한 누나 ㅋㅋㅋㅋ
별로 안 자상해요, 이런 거에 현혹되면 안 돼요.
맞아, 자상해서 고쳐주는 게 아니라 그저 어디서나 발동되는 직업병일 뿐-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