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멋대로 경제학'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0/06/20 5. 우리가 언젠가 죽는 다는 건 맞는데 (1)
  2. 2010/06/13 4. 분업과 시장
  3. 2010/06/08 스콧 아담스의 흥미로운 조언 (5)
  4. 2010/06/06 3. 시장과 가격
  5. 2010/05/30 2. 전쟁 경제 (War Economy)
  6. 2010/05/25 유럽 (3)
  7. 2010/05/23 1. 공짜점심과 공짜폰
  8. 2010/05/22 유로화의 위기 (2)
  9. 2010/05/21 유로화의 등장
  10. 2010/05/20 공개 시장 조작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 존 메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그동안 화폐주의 시카고 학파(밀튼 프리드먼), 오스트리아 학파(루드힉 폰 미제스), 케인즈주의자(존 메너드 케인즈), 고전주의 경제학파(애덤 스미스)의 발언들을 하나씩 살펴 본 관계로, 이번주에는 오나전 반대편의 공산주의자 칼 맑스(Karl Marx)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까 했는데, 최근 유럽의 재정 정책과 관련해서 시장주의자(시카고+오스트리아 학파)와 케인즈 학파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관계로, 이를 반영해서 케인즈 이야길 다시 한번 하고 다음주에 맑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마 경제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발언 중 하나인 동시에 누가 인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도 다양하게 변화하는 한 마디가 바로 케인즈의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즉, "장기적으로 봤을 땐, 우린 다 죽고 없는 걸..."이라는 한마디일 거다. 그럼 우선 이 발언이 나온 맥락이 무언지 살펴보자.

사실 이 말을 케인즈가 언제 처음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24년이라고 돼 있는데, 대공황을 겪기 전인 이 당시엔 케인즈도 케인즈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발언의 맥락이 맞지 않다), 어쨌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공황에 대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아담 스미스로부터 꽃피기 시작한 경제학은 신고전주의자들을 탄생시킨 한계 혁명(marginal revolution1)을 거치면서 단순한 사회학적 위상을 넘어서서 사회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과학으로서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런 경제학의 위상 성장에 급제동이 걸리는데 그게 바로 대공황이다. 당대의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컨셉은 비교적 간단했다. 국가 혹은 정부가 감놔라 대추놔라 개입하지 않고, 개개인이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 국가 혹은 사회 전체의 규모로 봤을 때에는, 그 사회에서 생산한 재화는 그 사회가 다 소비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품목이나 산업별로 보면 과잉 투자로 인한 과잉 생산이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사회 전체의 모든 경제 활동을 높고 보면 과잉 생산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 어차피 한정된 물질적, 인적 자원을 이용하는 상황에서 사회 내의 모든 상품에 대한 수요, 공급, 가격이 평형을 이루는 조건이 있을 텐데, 어느 한 상품에 대한 생산 과잉은 다른 품목에 대한 생산 부족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렇게 평형이 깨진 부분에 대해서 생산 과잉량은 가격 하락을, 생산 부족량은 가격 상승을 유발시키고, 소비자는 가격이 하락한 과잉 생산된 상품을 조금 더 소비하게 되고, 반대로 생산자는 가격이 상승한 생산 부족 상품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거란 판단 하에 이들의 생산을 더 늘리려 할 거고, 결국 다시 평형점을 찾아간다는 이야기. 이런 시나리오에 따르면 생산 과잉이 일어난 특정 산업은 가격 하락으로 일시적 침체를 겪을 수 있지만, 경제 활동 전체가 슬럼프를 겪을 수는 없다.

게다가 누군가의 소득은 다른 누군가의 지출이고, 누군가의 소비는 누군가의 소득이란 점에서, 경제 주체 모든 이들이 소득과 소비를 모두 취합할 경우 이는 제로섬일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논리에 따라 사회 전체의 경제 주체들이 생산한 모든 것은 같은 경제 주체들이 소비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생산력이 소비력을 이끄는 공급주의 입장을 견지한다. 이를 비교적 잘 정리한 게 프랑스의 경제학자 세이(Say)로 이를 세이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이는 논리적으로 아주 간결하고 우아한 맛이 있어서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열병처럼 번지며, 경제학을 언제든지 과학의 반열에 올라서기라도 할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1929년 주식 대폭락에 이어 거의 1930년대 내내 수요가 공급에 못 미치며 장기간의 지독한 경제 침체기에 접어들고 신고전주의 경제학 개념에 적신호가 들어온다.

이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경제학계의 구원 투수가 케인즈다. 그 이전까지 케인즈 본인도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신봉해 왔는데 1930년대의 대공황을 경험하며, 이론적으론 그럴 듯한데 실제로는 뭔가 안 맞는다고 느낀 그는 무료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ployment, Interest And Money, 줄여서 The General Theory)이라는 겁대가리없는 제목의 책을 1936년 내놓는다.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탄생이다.

그럼 케인즈는 그 동안의 이론에서 뭘 바꿨느냐? 일단 케인즈가 자신의 이론을 "일반 이론"이라고 명명한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의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가정한 "일반"은 틀렸다는 데에 있다. 신고전주의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고용이 안정돼 있고, 경제가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성장하는 평형점이 "일반"적이고, 이로부터 간혹 부분적 산업에서의 생산 과잉이나 부족 등의 불규칙한 패턴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조정기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런데 케인즈는 이런 시각을 완전히 뒤틀고는, 경제학자들의 머릿속 세상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일반"적인 상황은 경제가 비평형 상태에서 끊임없이 이쪽저쪽으로 기우뚱거리고 있고, 그러다 간혹 운이 좋으면 신고전주의자들이 말하는 평형점에 있을 때도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중요한 개념을 한가지 도입한다. 바로 총수요(aggregate demand)라는 개념이다. 그전까지 수요와 공급을 바라보는 시각은 굉장히 국지적인 차원에서였다. 즉, 특정 상품의 가격이 X원이라고 할 경우 생산자는 이를 몇개나 만들지, 소비자는 이를 몇개나 살지를 고민하는 차원에서의 공급과 수요였다. 사회 또는 국가 전체의 모든 소비자들이 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상품들에 대한 모든 수요에 대한 별도의 고려 따위는 없었다. 이는 무조건 공급을 따라간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케인즈가 총수요와 총공급이 따로 놀 수 있다고 본 거다.

그 원인--케인즈는 비이성적인 동물과 같은 본능(animal spirit)이라고 생각했지만--이 뭐가 됐든 총수요와 총공급이 따로 노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고, 총수요가 총공급을 밑돌게 되면 바로 대공황과 같은 대규모의 장기적 경기 침체가 일어난다는 거다. 이렇게 경기 침체가 일어날 때, 신고전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시장이 이를 수정하지 못하는 건 가격과 임금이 끈적하기 때문(price and wage stickiness)이란 것, 즉 가격과 임금은 한번 오르면 이는 쉽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즉,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시장이 작동하려면 과잉생산된 상품들의 가격이 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이들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임금도 같이 떨어져야 이들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서 과잉 생산량을 흡수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과잉생산된 상품들의 가격이 여전히 꽤 높다보니 이에 대한 수요가 계속해서 밑돈다는 뭐 그런 이야기.

그럼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여기서 케인즈에 따르면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논쟁의 핵심인 정부가 등장한다. 공급에 비해 밑도는 수요를 정부가 나서서 매우라는 거다. 즉, 정부가 재정정책을 이용하여(빚을 내서) 모자란 수요분을 채우면 이 돈을 받은 사람들이 돈을 쓰기 시작하고, 앞서 말했듯 한사람의 지출은 다른 사람에게는 소득이기 때문에, 이렇게 돈을 번 사람이 또 돈을 쓰고, 돈이 돌고 돌고 돌기 시작한다.

그래서 요약하면, 경제는 평형 상태에 있는 적이 없기 때문에, 정부는 불경기에는 재정 적자를 통해 수요를 창출하고, 경기 호황기에는 재정 흑자를 통해 수요가 넘치는 걸 막으라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하자 물론 시장주의자들은 기겁을 하고 나섰다. 정부가 경제활동에 적극 개입하라고? 허걱, 님하 무슨 농담을 해도 그렇게 무서운 농담을... 시장주의자들의 요지는, 정부가 재정 적자를 낸다는 건 누군가로부터 돈을 빌려서 사용한다는 이야기. 결국 경기가 되살아나려면 시장 내에서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돈을 빌려 써야 하는데, 그 돈을 정부가 이미 빌려가버렸기 때문에 쓸 수 없고, 결국 경기 침체를 더 장기화시킨다는 거다. 가만히 냅두면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알아서 조정할 걸 정부가 개입해서 초치지 말라능!

그리고 이에 대한 케인즈의 화답이 바로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해결해 준다고? 암, 좋은 이야기지. 근데 대체 얼마나 기다리면 되는 거유? 우린 다 죽고 나서?", 바로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라는 한마디. 즉, 기다리면 시장이 해결책을 찾을 거란 걸 부정한 게 아니라, 그 해결책을 얼마나 빨리 찾을 수 있느냐에 촛점을 맞춘 거다. 그걸 기다리는 동안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경제학자들은 아니라고 그냥 기다리라고 하는 건 무책임하지.

그런데 케인즈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다음과 같이 뒤틀어서 해석한다. "뭐, 어차피 언젠간 우린 한번 죽는 인생. 두번 죽는 거 아니니까, 우리 죽고 난 그 뒷일은 알 바 아니지. 그러니까 (정부가) 돈을 여기저기서 계속 빌려서 흥청망청 쓰라고!" 물론 케인즈의 발언은 이런 의미가 절대 아니다. 이 논쟁을 조금 더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 학파별 경기 사이클을 바라보는 관점, 악덕투자(malinvestment), 유동성 트랩(liquidity trap),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 등등 다양한 개념을 설명해야 하는데, 이미 글이 꽤 길어진 만큼 이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만 현재 유럽,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정부가 재정 축소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폴 크루그먼을 비롯한 케인즈주의자들은 "정말 1930년대를 다시 한번 보잔 거야? 미쳤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고, 반대편의 시장주의자들은 "그래, 그래, 그래야 시장 신뢰(market confidence)가 회복되고, 경기도 회복되지"라며 박수를 치는 상황. 그리고 일전에 한번 소개한 적 있지만, 이 시점에서 꽤나 적절한 영상이라 다시 한번 소개.

Fear the Boom and Bust



1 스미스, 리카도 라인의 정통 고전주의 경제학이 경제학 발전에 초석이 된 건 맞지만 이들이 경제학에 대한 모든 부분을 제대로 설명해낸 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다이아몬드에 비해 물이 훠~얼씬 인간 삶에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물이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싸다. 왜 그럴까?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한 그럴 듯한 답변을 하지 못하면서, 고전주의 경제학이 한때 그 존립의 위기를 맞는다. 그러다가 한계 효용(marginal utility)과 한계 가치(marginal value)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고전주의 경제학의 기초가 더욱 탄탄해지게 되는데, 경제학에서 이 한계(margin)의 개념의 도입은 꽤나 혁명적이었기 때문에 이를 한계 혁명이라고 부르고, 이를 토대로 부활한 고전주의 경제학을 신고전주의 경제학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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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담 스미스, <국부론>
세상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역시 사람에 따라서는 찬양할 수도, 경멸할 수도 있지만, 당신의 자본주의에 대한 입장이 뭐든 간에, 아담 스미스의 정치와 경제에 대한 시각이 우리 삶에 깊숙히 침투해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세상에 둘도 없는 맑시스트조차도, 아니 맑스 본인도 스미스의--당시에는 정치 경제(political economy)라고 불리운--경제학에 대한 통찰력에는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당대의 주류 경제학파와는 노동 이론과 계급 인식에 대한 차이가 있었고, 여기서 사회주의가 탄생했을 뿐이다.

그런 아담 스미스의 경제학 이론을 집대성한 책이 국부론으로 여러 부문에서 뛰어난 통찰력이 돋보이는데, 그 중 하나가 물론 분업의 경제적 기능을 짚어낸 거다. 유명한 핀 공장을 예로 드는데, 한 사람이 재료만 받아서 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어야 한다면 보통은 하루에 한개 만들기도 벅차고, 아주 능숙한 사람 조차도 하루에 핀 20개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만, 핀 생산 공정을 18가지 정도로 세분화해서 10명이 이들을 나눠서 담당하는 핀 공장에서는 10인 1조가 핀을 약 48000개, 한 사람당 하루에 4800개 가량의 핀을 생산해낼 수 있더라는 이야기가 국부론에 실려 있다.

분업의 결과 1인당 생산성이 많게는 4800배, 적게 잡아도 240배 이상 증가했다는 이야기. 그렇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한가지 깔려 있다. 그 전제란 바로 "분업은 시장의 크기에 의해 제한된다"는 사실. 응? 그게 뭔 소리여?

자, 다시 핀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만약 인구가 100명짜리인 동네에 대장장이가 한명있고, 핀이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때마다 핀을 하루에 1개를 만들어 줄 수 있다. 사람들이 핀을 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열흘에 한번씩 핀을 만들고 있다, 나머지 9일 동안은 주문에 따라 칼이나 농기구를 만들지만, 칼이나 농기구는 쉽게 잃어버리거나 망가지지 않다보니, 주문이 그다지 밀려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인구가 1000명이고 이들이 같은 비율로 핀을 이용한다면? 인구가 10배가 됐으니 핀을 10배 많이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이 대장장이는 늘상 핀만 만들게 된다. 그대신 칼, 농기구 등을 만들 시간이 없어진다! 그 대신 칼만 만드는 사람, 농기구만 만드는 사람이 따로 생긴다. 시장이 커짐에 따라 대장장이가 핀장이, 칼장이, 농기구장이 따위로 분화가 된다는 거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원래 인구 100명인 동네에 대장장이가 1명이었으니, 1000명인 동네엔 대장장이가 10명 있고, 이들이 각자 열흘에 한번씩 핀을 만들면 그만 아닌가? 아, 그런데 이는 단순히 인구 100명인 동네 10개가 따로 따로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경우에는 결국 100명에게 필요한 재화와 상품을 100명이 모두 생산하고 소비를 해야 한다는 사실. 그게 뭐가 문제지? 자, 주변을 돌아보고, 나한테 가장 필요한 것 100가지를 추려 보고, 이것들 중 단 한가지라도 100명분을 자신이 혼자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 뭐라도 좋다. 쌀, 물, 배추, 소금, 설탕, 전화기, 열쇠, 옷, 신발... 뭐라도 좋다.

이 시나리오에서 잘 생각해야 하는 건, 자신이 100가지 제품을 추려냈다면, 그 최종 상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다른 부품이나 재료들도 결국은 자신이 생산해야 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쌀은 100가지 중에 포함이 됐는데, 농기구나 비료는 포함이 안 돼 있다면, 쌀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농기구와 비료도 본인이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 100명 단위의 마을을 10개로 쪼갠다면 비료를 별도로 생산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분업이 너무나 일상화된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효과를 쉽게 체감하지 못하고 산다. 우리 식탁에 올라온 쌀은 농부가 지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상품의 최종 생산자가 농부일 뿐, 그 전 단계의 농기계, 비료, 그리고 그 다음 단계의 유통업체 등등의 기능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농부가 쌀을 100명치만 생산하는 대신에, 만명 십만명어치의 쌀을 생산하기 때문에, 쌀을 생산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고, 만명 십만명어치의 쌀을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비료와 농기계의 생산은 다른 사람의 고민일 수 있는 거다. 농부가 쌀을 천만명, 일억명어치 생산해야 한다면 쌀 농사를 짓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역할이 생길 수 있다. 아담 스미스의 핀의 예를 보면, 핀을 생산하기 위해 18가지 작업을 10명이 수행한다고 했는데, 핀이라는 최종 생산품 하나 조차도 더 이상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지듯이... (자동차를 혼자 만드는 상상을 해보라. 자동차 부품 제조는 물론이거니와, 철광에서 재료를 혼자 채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분업의 효과로 나타나는 생산성의 증대는, 그렇게 늘어난 생산량을 소비할 수 있는 시장이 있을 때에만 유용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의 크기가 분업을 제한한다는 말이다.

예전에 물질 풍요를 이루게 하는 원동력으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창조적 파괴의 가장 원시적이고, 1차적인 단계가 바로 아담 스미스가 말한 분업이다. 노동력이 편성돼 있던 과거의 직업군을 파괴하고, 새로운 직업군을 창조하여 노동력을 재편함으로써 생산성을 늘리고, 늘어난 생산량만큼의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다는 이야기. 그래서 적어도 경제적 관점에서는 팔방미인은 쓸모가 없다는 말이 딱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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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 전략은 함부로 떠들고 다니다간 고소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이야기하지 않지만, 월스트릿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에 정통 직딩 만화 딜버트(Dilbert)의 작가 스콧 아담스(Scott Adams)의 꽤나 흥미로운 투자 전략(?)이 올라왔길래 소개.

원본 : Betting on the Bad Guys

요약하자면, 우리가 흔히 소비자와 직원들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이라고 생각되는 기업이 있다면 그 기업의 주식을 사라. 이글을 퍼온 이유는 꼭 그러라는 투자 전략 관점에서가 아니고--사실 아담스 본인도 꼭 그런 입장에서 글을 쓴 건 아니고--조금 다른 관점에서 소위 악덕 기업의 문제를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한번들 생각해보시라고...

암튼 아담스가 이런 조언을 하는 이유는

1) 우리가 어떤 기업을 미워한다면, 그 기업이 실제로 성공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즉, 실제로 그 기업이 소비자와 직원들을 착취했든 안 했든, 그런 이미지가 쌓인 기업이 공격을 받는 이유는 그런 착취를 기반으로 몇몇 기업가와 투자가들이 자기 주머니만 불리고 있다, 즉 그 사업모델이 실제로는 성공했기 때문이란 거다. 그리고 투자라면 성공하는 기업에 하는 것이 기본.

2) 이런 투자 전략이 거부감을 일으키는 이유는, 자기가 욕하는 놈들과 결국 똑같아지라는 얘기 아니냐!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인데, 이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아담스는 조금 돌려서 말했지만, 이런 회사의 주식을 산다는 이야기는, 우리가 미워하는 기업에 투자한 누군가로부터 그 회사의 지분을 가져오는 행위이다! 즉, 그 지분을 가져옴으로써 소비자와 직원들을 착취하던 사람이 더 이상 그러지 못하게 된다는 거다. "그 대신 너가 그런 사람이 된 거잖아!"라고 한다면, 그런 사람이냐 아니냐는 결국 그렇게 번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는 사실. 즉, 그 회사 주식을 갖고 있으면서 벌게 되는 배당금이나, 아니면 주식이 올랐을 때 이걸 팔아서 올린 이익금을 사회에 환원하면 된다는 거다.

다시 말해, 우리가 미워하는 악덕 기업들을 보이콧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들 기업의 이윤이 사회의 어두운 곳에 쓰이게 되는데 실질적으로, 그리고 더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방법일 수 있다능. 뭐, 당연한 얘기지만 판단들은 각자 알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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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ets can remain irrational a lot longer than you and I can remain solvent.
- (아마도) 존 메이너드 케인즈 (John Maynard Keynes)

시장의 비합리성에 대해 경고한 "시장은 우리가 부도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미쳐 있을 수 있다"는 이 한마디는 케인즈가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연원이 분명하지는 않다. 실제로 이 표현이 활자화되어 처음 등장한 것은 1993년 Forbes 잡지로 케인즈가 죽은지 거의 50년 후의 일이라고 하니, 어딘가 좀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는 건 사실. 어찌됐든 이 말을 처음 한 것은 케인즈라고 널리 알려져 있고, 평소 케인즈가 갖고 있던 시장에 대한 불신을 감안하면 그럴 법도 하다.

사실 우리가 케인즈 경제학 혹은 수정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 자체가 대공황을 겪으면서 케인즈 본인의 경제철학이 크게 요동친 결과로 탄생한 것인데, 그전까지만해도 당대의 대부분의 주류 경제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케인즈도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학자였다.

문제는 1929년 미국 주식 시장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대공황이었다. 그로 인해 케인즈 본인도 큰돈을 잃었는데--물론 케인즈는 대공황의 저점에서 더 사들여서 훗날 잃은 돈을 회복하고도 남았다--그런 시장의 극심한 변덕을 보며,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갖고 있던 시장에 대한 맹신 가까운 신념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케인즈의 수정 자본주의의 탄생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이야기가 좀 많이 샜는데, 이런 배경에서 탄생한 수정 자본주의가 뭔지에 대한 이야기는 훗날로 미뤄두기로 하고, 다시 케인즈의 발언으로 돌아가자. 경제학이나 회계에서 "solvent"라 함은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바꿔 말해 어떤 경제 주체가 solvent의 반대인 insolvent가 되면 흔히 말하는 파산 신청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시장이 비이성적인 것과 지불 능력(solvency)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보통 언론에서는 우리가 맞이했던 IMF 위기와 같은 상황을 금융위기라는 단어로 뭉뚱그려 사용하는데, 사실 금융위기에는 두가지가 있다. 유동성 위기(liquidity crisis)가 하나고, 지불 능력 위기(solvency crisis)가 나머지 하나다. 이 두가지는 어떻게 다를까?

자, 내가 이발소를 차렸다고 하자. 은행에서 자본금을 빌려서, 가게를 얻고, 이발 도구, 의자, 손님들이 앉아 기다릴 수 있는 소파 등을 다 구비. 이발비는 9000원. 손님들이 만원짜리를 내면 천원을 거슬러줘야 할 것 같아서 일부러 은행에 가서 천원짜리를 넉넉히 바꾼다고 바꿔다가 계산대에 넣어뒀다. 그리고 첫날 손님을 받았는데 21명의 손님이 왔는데 전부 만원짜리를 낸 거다. 그런데 손님이 20명은 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천원짜리를 20장밖에 준비하지 않았던 거다. 20번째 손님까지 딱 받고 나니 만원짜리는 새로 20장이 생겼는데, 천원짜리는 한장도 안 남았다. 21번째 손님이 만원짜리를 내는 순간, 어라? 거스름돈 천원이 없네. 그런데 이 경우 정말 돈 천원이 없는 게 아니다. 돈은 20만원이 있지만, 당장 필요한 천원짜리 한장이 없는 거다.

이게 바로 유동성 위기다. 자신이 갖고 있는 자산의 현금 가치는 충분하지만, 갖고 있는 자산의 종류가 당장 필요한 자산의 종류와 일치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위기. 이걸 왜 유동성 위기라고 부르냐고? 사실 조금 기이한 예를 들었는데, 자산의 종류에 따라 그 자산의 유동성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거래의 기본인 현금이 가장 유동적인 자산으로, 어디 가서 돈 내는데 안 받는 사람은 없다. 그 다음에 채권, 주식 등의 금융 상품 등이 있을 거고, 우리가 흔히 부동산이라고 하는 건물이나 땅 따위가 유동성이 가장 낮은 자산이다. 그래서 "부동"산이다.

그러면 지불 능력 위기란 뭘까? 앞선 예에서와 마찬가지로 내가 이발소를 차렸는데, 한달이 넘도록 손님이 한명도 없다. 가게 임대료, 전기세는 물론이고, 이발소를 차리기 위해 대출받은 돈 이자도 내야 되는데, 수중에 현금이라곤 없는 거다. 여기까지만 얼핏 보면 유동성 위기와 유사하지만, 다음에서 차이가 있다. 신용불량자가 될 순 없으니까 돈은 어디서 구해야겠고, 그래서 가게에 있는 물건 중에 당장 급하지 않은 물건들을 팔기 시작한다. 어차피 손님이 없으니 대기용 소파부터해서 이발용 의자도 3개가 있던 것 중 2개는 팔아치우고 등등. 그렇게 물건들을 하나둘 팔아치우기 시작해서 땜방질을 하다보니 몇달만에 결국 갖고 있던 물건을 다 팔아치웠다.

어라? 그런데 물건을 다 팔아치웠는데도, 갚아야 할 돈을 다 못 갚았네. 아무래도 중고품이다보니 처음에 살 때 줬던 값보다 싸게 팔 수밖에 없었던 거다. 결국 자기가 갖고 있는 자산 가치의 총량이 자신의 채무의 총량보다 작은 상황, 뭘 해도 필요한 돈을 갚을 방법이 없는, 힝, 존망했으의 상황이 바로 지불 능력 위기다

자, 그럼 시장과 이게 어떻게 엮이는지 살펴보기 위해 잠시 기업의 대차대조표(balance sheet)에 대해 이야길 해보자. 기업의 대차대조표란 가계부라고 보면 된다. 약간의 차이라면 가계부는 현금 유통 위주로 작성하지만 대차대조표는 현금, 채권, 부동산 등 기업의 모든 자산과 부채를 포함한다. 예를 들어 The Office의 Dunder-Mifflin 같은 종이/사무용품 회사를 생각해보자. 이 회사의 자산은 사무용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각종 생산 시설, 사무직 직원들이 일하는 건물과 그 건물 내의 책상, 컴퓨터 등이 있을 거고, 사무용품을 도매나 소매상에게 넘긴 후 아직 받지 않았지만 곧 받아야 할 대금이 있을 거다. 그리고 회사가 갖고 있는 현금 등이 이 회사의 자산에 해당한다. 반면에 회사가 발행한 채권, 종이 생산을 위해 원자재를 받았는데 아직 지불하지 않은 대금, 직원들에게 아직 지급하지 않은 임금과 보너스 따위가 있다면 이는 회사의 부채에 해당한다.

이 자산의 총합에서 부채의 총합을 뺀 값을 회사의 순이익이라고 봐도 좋고, 회사의 실질적인 가치로 회사 주식의 총가치(=발행된 주식의 수 x 주가)는 이를 반영하는 게 정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이값이 0보다 크면 회사는 지불능력이 있다(solvent)고 한다. 그런데 이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데에는 규칙이 있다. 현금만을 취급하는 가계부와 달리 다양한 종류의 자산과 부채를 포함한 대차대조표에서 이들 자산과 부채의 현금가치를 어떻게 매기느냐는 상당히 애매한 문제다.

각 가정이 가계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한다고 해보자. 이 경우 자산에는 소유하고 있는 아파트, 시골에 쬐끄만 텃밭이라도 있다면 이런 땅뙈기, 집안의 온갖 가구 및 가전 제품, 은행 예금, 적금, 펀드, 주식 등이 자산에 해당하고, 은행 대출, 사채, 아직 완납하지 않은 카드 할부금, 자동차 할부금 등이 있다면 이가 부채에 해당한다. 이중 아파트, 땅, 가구 등의 가격은 얼마로 잡아야 할까? 은행 예금이나 가계 부채 등은 어차피 현금으로 돼 있으니 크게 상관이 없고, 펀드나 주식도 시세에 따라 금방 금방 현금화 할 수 있으니 크게 문제가 없다. 그런데 부동산의 경우 사실 공시지가라는 게 있고, 시장 거래 가격이 있는데 이게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면 내 아파트 값은 공시지가에 맞춰야 하나, 거래 가격에 맞춰야 하나? 흠...

이 문제는 보통 법으로 정하는데 기업체들은 시가평가(mark to market)를 하게 돼 있다. 이는 회사의 장부, 즉 대차대조표에 Market value(시가)에 따라 mark(표시)하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공시 지가나 다른 임의의 가치 결정 척도가 아닌 시장 거래가에 따라 자산과 부채의 가치를 매기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시장이 개입한다.

그러면 2008년에 터진 미국의 서브프라임발 부동산 위기를 통해 케인즈의 발언을 다시 살펴보자. 은행들의 경우, 자산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다양한 형태의) 대출이다. 은행에서 빌린 돈이, 돈을 빌린 사람에게는 부채라면, 은행의 입장에서는 돌려 받을 돈이기 때문에--물건을 미리 넘기고, 미처 받지 않은 대금과 마찬가지로--자산에 해당한다. 그리고 다른 자산들과 마찬가지로 대출도 은행들끼리 사고 파는 게 가능하다. 예를 들어 갑은행이 10사람에게 금리 5%로 20년 만기 1억원짜리 대출을 10번 해줬다고 하자. 이 10명이 이 빚을 모두 꼬박 갚는다면, 이 은행은 20년간 총 10억의 수익을 올리게 될 거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복리가 아닌 5% 단리로 계산하자. 5% x 20년은 100%에 해당하니 1억을 빌려주면 그 이자 수익이 그 100%인 1억. 10명이니 10억.) 그렇지만 10명이 다 돈을 꼬박 갚을 것 같진 않고, 갑은행이 그동안의 경험으로 판단하건데, 6명은 돈을 다 갚겠지만, 4명 정도는 10년만에 배째라고 할 것 같다. 그 경우 실제 수익은 8억원.

그런데 뒤늦게 은행을 차린 을은행이 비슷한 대출 조건을 내걸었는데, 돈을 빌려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을은행은 갑은행에게 원금 10억을 포함해서 총 13억을 줄 테니 자신들에게 그 대출을 넘기라고 한다. 을은행 입장에서는 13억원을 주고 (원금 포함) 18억원을 돌려 받을 수 있다면 그래도 5억원이 남는 셈. 그런데 갑자기 병은행이 끼어들어서 자기에게 15억원에 넘기라고 한다면 갑은행은 병은행에게 이 대출을 넘기는 게 유리. 이때 갑은행 입장에서 이 거래에 응하느냐 응하지 않느냐는 다양한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갑은행이 앞서 말한 유동성 위기를 맞아서 지금 당장 현금이 급하다면, 자신들이 생각하기엔 18억짜리도 15억에 팔아야 할 수도 있다. 또 한가지는 갑은행은 이 대출들로 18억을 벌 거라고 예상했는데, 정은행은 20억을 다 돌려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 19억원을 제시한다면 갑은 얼씨나 하고 거래에 응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렇듯 은행들 사이에서 다양한 계산에 따라 자신들이 갖고 있는 대출 형태의 자신을 사고 파는 일은 자주 벌어진다.

만약에 많은 은행들이 10억을 빌려주고 20년에 걸쳐 18억씩 회수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은행들이 너도나도 할 것없이 대출을 해줄 거다. 이게 사실 서브프라임의 시작이다. 집값이 꾸준히 상승함에 따라 일반적으로 대출 위험 대상인 서브프라임 대출을 받은 사람들도 평소보다 돈을 꼬박꼬박 잘 갚기 시작한다. 그러자 은행들이 18억짜리라고 예상했던 이 자산 가치가 그 이상일 수 있다고 판단, 이런 대출 자산을 서로 조금이라도 더 많이 모으기 위해 경쟁을 하게 되고, 이런 대출 자산의 가치는 그 상한선인 20억에 육박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자산 가치를 시가평가하게 되어 있음에 따라, 이런 서브프라임 대출을 많이 해준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에서 부채쪽은 그대로인데 자산쪽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돈을 다 돌려받으려면 2-30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수익임에도 시가평가에 의해 과평가된 거고, 이런 걸 우린 흔히 버블/거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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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ra's Wagon of Fools. 1600년대 초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을 비꼰 Hendrik Gerritsz Pot의 작품.


자, 어떤 갑은행이 현금 100억을 포함한 총 1000억의 자산과 980억의 부채를 갖고 사업을 시작 18억짜리라고 예상되는 대출 10개를 해줬다. 그러자 자산이 1080억으로 늘었고, 부채는 980억 그대로. 그런데 18억짜리 대출자산의 가치가 20억으로 오르면서 은행의 자산이 시장에서 1100억으로 평가가 되게 된다. 그런데 집값의 거품이 꺼지면서 대출을 받아간 사람들이 돈을 제때에 못 갚아 나가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사람들이 예상했던 20억을 다 돌려 받을 수가 없다는 걸 알아차림에 따라 이와 비슷한 자산을 갖고 있던 은행들이 전부 위기감을 느끼고 이 대출 자산을 팔아치우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를 팔아치우는 은행들이 점점 많이짐에 따라 이 자산 가치가 19억, 18억, 17억으로 점점 떨어진다. 갑은행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도, 총 자산이 1100억에서 1090, 1080, 1070으로 점점 줄어드는 거다.

그런데 은행들이 자신들이 발행한 대출들을 다시 검토해봄에 따라, 어차피 쥐고 있어봐야 원금 회복도 못할 것 같다고 판단, 지금 건질 수 있는 것만이라도 건지자는 판단에, 이 자산들을 10억, 9억에도 팔아 치우기 시작한다. 그러자 갑은행의 총 자산이 이제 990억까지 떨어졌다. 어라? 이 자산의 시장 가치가 8억 밑으로 떨어지는 순간에는 갑은행의 총 자산은 총 부채보다 적어지게 되고, 이는 갑은행이 지불능력이 없어진다(insolvent)는 말이다!

그런데 시장이 처음에는 18억정도로 예상한 자산을 20억이라고 잘못 판단한 것과 마찬가지로 단순히 패닉한 바람에, 사실 20년을 끝까지 기다렸으면 12억 정도는 회수할 수 있었음에도, 성급하게 7억에 팔아치우기 시작한 거라면? 이게 케인즈가 말한 "Markets can remain irrational a lot longer than you and I can remain solvent."이다. 시장이 한번 패닉 모드에 들어가면, 이 분위기에 휩쓸려서 쓰러지지 않아도 되는 회사들이 쓰러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 서브프라임 위기로 쓰러진 은행이나 펀드들의 대부분은 쓰러질만했다는 게 중론이다. 다만 터무니 없이 비쌌다는 것 외에는 아직까지도 이들 자산이 실제로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 정도는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결국 시가평가(mark to market) 시스템의 문제인데, 이는 사실 자산 가치를 매기는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는 사실과도 맥이 통한다. 나의 집이 나에게 금전적으로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시장에서 내 집과 유사한 집이 얼마에 거래가 되는가를 내 집의 가치 척도로 삼는 건 비교적 합리적인 선택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격이 오를 때는 여기에 거품이 있는지 의심하기보다는 거의 항상 이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가격이 떨어질 때가 되면 갑자기 시장에 문제가 있다라고 호들갑을 떤다는 거다. 실제로는 가격이 떨어질 때와 마찬가지로 가격이 오를 때도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최근에 거품의 신호를 찾을 수 있는가를 연구하고 있는 물리학자(네, 오타가 아니고 물리학자 맞습니다)들이 있는데, 관련 논문 첨부. 이미 글이 충분히 길어진 관계로, 이 논문 내용은 다음에 또 시간 내서 잠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논문 : The Financial Bubble Experiment: Advanced Diagnostics and Forecasts of Bubble Terminations Volume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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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cally considered, war and revolution are always bad business.
- 루드비흐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
요새 하 세상이 뒤숭숭하니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로 하나.

오스 트리아 학파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인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전쟁에 대한 반대로도 꽤나 유명하다.

링크 : 미제스의 전쟁에 관련된 발언들 모음

이는 제1차대전의 패전국으로써 엄청난 양의 외채에 시달리던 시절에 정부의 경제 고문역을 지냈던 경력을 감안하면, "경제적으로 봤을 때, 전쟁과 혁명은 형편없는 사업"이라는 미제스의 이 발언은, 단순히 위대한 경제학자의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사유에 기반한 게 아니라 피부로 느껴야 했던 전쟁의 폐해에 기반한 것이리라.

물론 "그건 오스트리아가 패전국이어서 그랬던 거고, 승전국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랐겠지"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말이다. 승전국이라면 패전국보다 상황이 훨씬 낫다는 점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승전국은 전쟁 덕분에 더 잘 살게 됐다고 생각한다면 틀린 말이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아직도 아프리카처럼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바로 윗동네인 북한만 해도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인간이 먹을 것 걱정으로부터 해방된 것은 불과 지난 2-300년 사이에 불과하다. 그 이전에는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의-식-주의 세가지를 충분하게 생산할 수 있느냐가 언제나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대부분의 농경 사회에서 흉년 한번 들면 전 국가가 피폐해졌다. 불과 4-50년전까지만해도, 바로 이땅에서만해도 매년 봄이면 보릿고개란 게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되겠다.

그와 동시에, 최근에 가뭄으로 인해 쌀농사가 시원찮다는 뉴스를 접하고도 정말 쌀을 못 구할까봐 걱정한 게 언제였는지 곰곰히 돌이켜보라. 이 4-50년 차이를 둔 두 가지 다른 세상에서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전자의 세계에서 한 사회의 경제는 '필요(need)'에 의해 작동한다면 후자의 세계에서는 '바람(want)'에 의해 작동한다. (여기서 잠시! 사실 필요와 바람이 어떤 명확한 경계를 갖고 갈리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옷이란 필요한 재화이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원하는 재화일 수도 있으니까. 다만 여기서 필요라는 건 생존에 직결된 개념으로 사용하기로 하자.)

쉽게 말하면 이런 거다. 먹을 게 부족한 사회에서는 먹을 걸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효과적으로 생산할 수 있느냐가 최우선 과제다. 이는 최종 생산량이 부족해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생산성을 투입된 자원(input)에 비해 최종 생산량(output)이 얼마인가라고 본다면, 첫번째 방법은 생산성/효율을 높임으로써 똑같은 인풋으로 더 많은 아웃풋을 뽑아내는 게 한 가지고, 다른 한가지는 단순히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여 생산량을 높이는 거다.

두가지 해법 중 쉬운 건 인풋을 늘리는 거다. 그래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필요한 노동력은 전부 투입이 되고, 한뙈기의 땅덩이라도 더 경작하게 된다. 그런 이유로 인해 농경 사회의 실업률은 엄청 낮다! 그렇지만 사용 가능한 자원을 전부 투입했는데도 먹을 게 모자라다면? 이제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비료와 농기계의 사용, 생산성 높은 품종 개발 등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게 해서 생산성이 충분히 높아지기 시작해서 생산량이 필요한 정도를 넘치기 시작하면 이젠 투입하는 자원의 양을 줄일 수 있다. 나이든 노인들과 어린 아이들은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농경지 중에 조금 척박한 땅을 애써 경작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이제 자원이 남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기존에는 인풋으로 사용되던 자원이 남기 시작하면, 이 자원을 다른 데에 써먹을 수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하게 되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뭐지?'를 고민하게 된다. 필요의 경제가 바람의 경제로 이동하는 거다. 필요의 경제에서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였다면, 바람의 경제에서는 발명이 필요의 아버지가 된다. (엄마, 아빠 메타포는 써먹긴 써먹었다만 내가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구만, 쿨럭. -_-,,)

먹을 걸 해결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옷을 원할 거라고 판단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선글라스를 원할 거라고 판단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은 남는 땅덩이를 사들여 방직공장을 차렸고, 한 사람은 선글라스 공장을 차렸는데, 선글라스 공장을 차린 사람의 경우 너무 시대를 앞서 나갔다면 쫄딱 망하는 수가 있다. 그렇지만 선글라스 사업의 실패가 시공간을 초월한 절대로 그래야만 하는 건 아니다. 옷의 생산성이 충분히 높아져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된다면 다시 선글라스 장사가 잘 될 수도 있는 거다. 그리고 때에 따라선 텔리비전이나 라디오처럼, 새로운 발명으로 인해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수요가 창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필요의 경제에서 바람의 경제로 이행이 많이 되면 될수록, 소비자의 요구는 다양해지고, 이를 미리 내다보기란 어려워질 수밖에 없고, 다양한 사람들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시행착오가 수없이 반복되게 되고, 이런 사업들의 흥망에 따라 실업률이 변화하게 된다.

자, 전쟁이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전쟁의 아주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는 말 그대로 생존을 위협한다는 거다. '죽이거나 혹은 죽거나'다. 즉, 전쟁이 벌어지면 평소에는 아무짝에 쓸모가 없던, 총, 칼, 폭탄, 탱크, 전투기 등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진다. 이들에 대한 생산성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상대방의 생산성이 그와 맞먹는다면 이는 충분히 높지 않다. 게다가 총알, 폭탄 등은 소모품이다. 즉, 소모한 양만큼을 생산할 수 있어야 적과 맞설 수 있다. 따라서 생산량을 늘리는 게 중요하고, 이를 위해 효율과 인풋을 최대한 늘려야 한다. 그래서 전쟁 중에는 실업률이 떨어진다.

그렇지만 실업률이 낮은 것과 사람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앞서 말했듯 풍요로운 사회일수록 소비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더라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들, 소위 사치재의 소비의 비중이 높아진다. 그런데 전쟁이란 건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보니, 바람의 경제에서 필요의 경제로 급속한 전환을 요구한다. 그래서 낮은 실업률, 높은 생산량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생산된 것들이 모두 즉각적으로 소모되고, 무언가를 파괴하는데 이용되기 때문에 생산량을 수치화한 GDP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들의 삶은 빈곤해지는 거다.

게다가 전쟁이 끝나는 순간, 승전국, 패전국 할 것 없이 이런 모든 생산 시설들이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에, 여기에 투입됐던 인력을 포함한 모든 자원들을 활용한 새로운 창구를 찾는 과도기를 겪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한동안은 여전히 낮은 실업률과 높은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이는 결국 전쟁전의 삶을 회복하는 것뿐, 실제로 살기 더 좋아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봤을 때, 전쟁이란 형편없는 사업이란 거다. 도덕성 마저 포기한 대한민국 국민이 뽑은 경제 대통령 가카께서 이런 것쯤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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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제멋대로 경제학 2010/05/25 20:56
그러니까 지금 돌아가는 꼬라지가 말이지... 그리스(아일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가 독일(프랑스, 영국)로부터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독일이 그리스에 돈을 더 꿔줘야 한다는, 그런데 정작 독일은 그리스에 꿔줄 돈은 갖고 있는가라는, 눈물겨운 코메디랄지 스릴러랄지... orz


@ 원래 돈이란 돌고 도는 것. -_-,,
@@ 남의 나라 보고 웃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근데. ㅡㅠㅡ 기사 : 금융시장 '패닉'...환율 장중 1,270원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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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유럽
- 20세기를 살다간 누군가

(최근에는 대중화도 많이 됐지만) 경제학계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 중에 "공짜 점심이란 없다"는 말이 있다. 누가 처음 한 말인가는 다소 불분명하지만, 이 표현을 경제학계에 널리 퍼뜨린 것은 통화주의 경제학파의 대가인 밀튼 프리드만(Milton Friedman)으로 사료된다.

뭐, 누가 한 말이냐는 불분명하지만 이 표현의 유래는 19세기말 20세기초 미국의 선술집의 "공짜 점심(Free Lunch)" 광고이다. 술집들이란 게 보통 그렇듯 점심 시간은 저녁 시간에 비해 한가하게 마련. 그래서 조금이라도 손님을 더 끌기 위해 술집들이 "공짜 점심"을 내걸기 시작한다. 내용인즉슨, 점심 시간에 와서 술을 시키면 점심은 공짜로 주겠다는 거다. 물론 술집 입장에서 이는 고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술값으로 벌어들이는 이윤)으로 눈에 보이는 비용(공짜로 점심을 제공함으로써 발생하는 손실)을 맞바꾼 상술에 불과했지만, 이런 전략은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초토화되기 전까진 상당히 유효했다.

그렇지만 결국 그 점심값은 술집 손님들이 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지 않았다면 술집들은 마 망했을 테니까... 그래서 "공짜 점심이란 없다"는 말이 탄생했다. 그런데 이 단순한 표현의 의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 더 다양한 층위를 갖게 된다.

가장 직접적이고 피부에 와닿는 의미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공짜는 없다는 의미. 예를 들어 통닭집에서 쿠폰 10장을 모으면 통닭을 공짜로 준다고 할 때, 그 11번째 통닭 값은 이미 앞선 10번에 걸쳐 분할 지급한 거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시나리오. 오랜만에 짠돌이로 유명한 친구한테 연락이 왔는데 자기가 술 한잔 사겠다고 한다. 이게 웬일인가 싶으면서도, 오랜만에 친구가 인심쓰는구나 싶어서 나갔더니 술 먹다 말고 자기가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데 은근히 투자를 하라고 꼬득이는 거다. '이런 썅, 딴 생각이 있었구만, 그럼 그렇지.' 이런 경우는 이미 지불하진 않았지만 술값을 미래에 지불해야하는 상황. 물론 투자를 안 해도 될 수 있지만, 친구와의 관계 술판의 크기(?)와 분위기(?) 등에 따라 이미 걸려들은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설령 투자를 안 하기로 한다고 해도 신경이 쓰인다면 이미 심리적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셈.

그렇지만 이런 시나리오들은 모두 공짜 같았는데 알고보니 내가 다른 형태로 그 값을 지불하는, 앞선 공짜 점심에서와 마찬가지로 (심리적 비용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이는 모두 한가지 회계비용을 다른 회계비용으로 맞바꾸는 상황이다.

이와 조금 다른 개념은 회계비용을 기회비용으로 맞바꾸는 상황. 기회비용이란 회계상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경제학적 개념으로, 모든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에 이 자원을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해 다양한 옵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인간이 영생의 신비를 밝혀내지 않는 한, 시간 역시 인간에겐 유한한 자원이다. 따라서 살면서 하고 싶은 모든 걸 할 수 없다. 의대를 갈까 치대를 갈까 -_- 고민하다가 의대를 가기로 한다면, 결국 치대를 감으로써 내가 얻을 수 있었을 모든--그게 돈이든 즐거운 삶이든--이득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회계 장부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나한테는 그것도 비용이기 때문에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공짜 점심이랑 이게 무슨 상관이냐고? 누군가 나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저녁을 사주겠다고 해서 하루 저녁을 할애할 경우, 회계비용은 전혀 안 들었지만, 그 사람과 밥을 먹는 시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는 포기한 거다. 그게 집에서 혼자 밥 먹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오랜만에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었을 수도 있고, 피곤해서 그냥 쓰러져 잠을 자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게 뭐였든 간에 저녁 약속이 없었더라면 내가 하고 싶었던 무언가는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공짜는 아니라는 이야기.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이 표현의 또 다른 의미는 '나한테 공짜인지 몰라도 결국 다른 누군가는 그 비용을 지불한다'이다. 다른 말로 하면--기회비용을 무시할 경우--회계비용이 내 장부엔 안 올라갔지만, 다른 사람의 장부엔 올라갔다는 뜻. 예를 들어 친구가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내게 저녁을 사줬다면, 나는 돈 한푼 안 들였지만, 그 저녁 값을 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는 다른 개념.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측에서 실수를 해서 주문이 뒤섞이는 바람에 음식이 나오기까지 엄청 오래 기다렸다고 하자. 그래서 식당측에서 사과의 의미로 음료수를 서비스로 준다면? 이 음료수값은 나도, 내 친구도 내지 않았으니 공짜? 그럴 리가, 그 음료수값은 식당이 냈다.

이 마지막 개념의 등장이 꽤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세가지를 종합할 경우 "사회 전체를 봤을 때 공짜는 절대 없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인간의 모든 경제 활동에는 사회적 비용이 존재한다는 말이 되겠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세금은 바로 이런 공짜 점심과 거의 정반대 개념이란 것. 무슨 말이냐면 세금을 내는 순간에 비용이 드는 건 보이는데, 그 비용에 대한 댓가는 체감이 잘 안 된다. 학교, 도로, 댐, 수도, 전기 등의 적잖은 혜택에도 불구하고, 비용 지불 순간과 이런 혜택을 누리는 순간 사이의 시차 때문에 세금은 언제나 갈취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세금이 잘못 쓰이는 경우의 스캔들은 또 얼마나 선정적인가.

그렇지만 진실은 공짜 점심은 공짜가 아니고, 세금은 (비교적 투명한 사회에서는) 갈취가 아니다.

@ 덤으로 공짜 휴대폰 때문에 벌어진 코메디 같은 소동 하나 : '공짜 휴대폰' 광고문구 공짜로 준다는 것 아니다
@@ 제목에 번호는 왜 붙였냐고?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 ㅡㅠㅡ 연재 들어갑니다. 업데이트 주기는 일주일에 한번 매주 일요일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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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사회 모든 현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공통의 목적을 지닌 경제 단위를 국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건 사실 경제보다는 정치적인 요인에 훨씬 크게 기인한다. 국가 단위로 군대, 경찰, 소방서 등을 유지하여 국민들의 물리적인 안전을 보장하고, 사회 안전망을 확보해서 경제적인 안전을 보장하는 등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하나의 국가는 때로는 일부가 피해를 보고 또 다른 일부가 이익을 보더라도, 국가 구성원 전체로 봤을 때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인식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 인식은, 현존하는 시스템 내에서는 비교적 타당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당위성은 없다.

사실 국가라는 개념은 얼마나 임의적이란 말인가. 물론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중국과도 티격태격하지만, 북한과 우리나라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은 없다. 그런데 그 긴장감의 원인을 짚어보면 '갈라져 있지만 결국은 합쳐야 하는 한 민족 한 국가'라는 인식 때문에 남한이나 북한이나 상대방이 서로의 체제를 흡수하려고 하는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우리는 하나라는 인식이 서로를 더 경계하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갖는 공동체 의식은 민족, 언어, 문화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한무리의 사람들과 연대하느냐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나뉜 국가라는 가상의 경계에 의해 나뉜다. 그렇지 않다면 북한과 남한이 굳이 갈라져 있을 이유도 없고, 이미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굳이 합쳐야 할 어떤 상대라고 생각할 이유도 별로 없으며, 백제와 신라가 서로 다른 나라였듯, 호남과 영남이 굳이 한 나라여야 할 이유도 딱히 없다.

일본은 가봤지만 충청도 이남은 한번도 안 가봤다는 서울/경기/강원도 사람도 여럿 봤고, 스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만, 홍어는 죽어도 못 먹겠다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 조차도 자신의 세금이 새만금 간척 사업에 들어가는 건 조금 배가 아프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일본 경기 부양을 위한 대규모 건설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꽤나 심하게 반대를 할 거다.

잠깐 다른 이야길 해보자. 최근 중국의 경제 발전 속도가 눈부신데, 이런 중국의 경제 발전에 큰 몫을 하는 건 수출이다. 우리나라도 항상 '내수시장이 작아서 수출만이 살 길이다'는 이야기를 하며 경상수지 흑자폭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건 사실 코메디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수출해서 자국내 인플레이션만 부추기는, 결국 제살 파먹기식 경제 성장을 해왔고, 계속해서 하고 있다.

자, 현대 자동차에서 자동차를 백만대 만들었는데, 해외에서 인기가 좋다고, '수출이 우리의 살 길'이란 명분 하에 이걸 전부 수출했다고 해보자. 우리가 흔히 경제 발전의 지표로 삼는 GDP의 측면에서는 현대 자동차가 자동차 백만대를 생산했고, 그걸 다 팔았으니 그만큼 우리나라가 부자가 된 거다. 그런데 자동차들을 전부 수출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아무도 자동차를 못 산다면 그게 어째서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득이 되지? "대신 자동차 백만대 만큼의 달러가 생겼잖아!" 이 이야기를 뒤집어 보면, 한국인들 입장에선 현대 자동차가 자동차 대신에 달러를 찍어내서 한국 사람들에게 파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앞선 글에서 중국의 예를 들면서 이야길 했지만, '기축 통화인 달러는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달러는 쓸모가 없다. 따라서 달러로 무언가를 사와야, 즉, 뭔가를 수입해야 그 달러가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여주는 거다. 달러를 찍어낼 권한이 없는 한국 입장에서는--최근 10여년 간의 경험에서도 드러났듯이--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달러로 된 외환보유고를 일정 수준 확보해놓는 게 중요하지만, 무한한 수출이 한국인들의 삶에 도움을 준다는 건 중상주의적 착각이다. 자동차와 반도체의 생산성을 엄청나게 높여서 전세계 자동차와 반도체 시장을 현대와 삼성이 싹쓸이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한국인들에게 남는 건 높은 GDP와 한국은행 금고에 쌓아두기로 한 달러 뿐이다.

"내수 시장이 작기 때문에 수출이 살 길이다"의 진짜 의미는 "수출도 많이 하고 수입도 많이 하자"이다. 그런데 "수출만이 살 길이다"에서 "수출도 많이 하고 수입도 많이 하자"로 생각을 전환하는 게 쉽지 않다. 특히나 국가라는 임의적인 경제 구획 단위별로 자꾸 "수출을 더 많이 하자"고 주장하게 되면 이 기류에 휩쓸려서 더욱 그렇다. 결국 유럽에서는 이런 임의적인 경제적 구획이 '경제학적' 관점에서는 대단히 불합리하다는 판단하에 이를 허물기 위해 유로존을 짜서, 유로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게 바로 EU뿐만 아니라 많은 자유무역협정(FTA) 찬성론자들 주장의 경제학적 근간이다. 우리가 서울과 경기도 사이 또는 종로구와 인천 사이에서 누가 경상수지 흑자를 내고 적자를 내는지 크게 걱정하지 않듯이, 한국과 일본의 경상수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전 지구적인 거대한 통일된 시장을 만들면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서울과 경기도의 차이, 또는 종로구와 인천의 차이로 생각할 수 있다. 한국이든 서울이든 종로구든 다 정치적으로는 유효한 단위이지만 경제적으로 유효한 단위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다 지당하신 말씀들. 이론적으로는...

실제 세상에서는 우리가 정치적 단위에 따라 세금을 내는 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번 유로화의 위기가 뭐다라고 하나로 콕 찝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위기의 큰 부분은 바로 유로존이 정치적으로 통합이 안 됐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번 유로화 위기의 진원지로 소위 PIGS(포루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라는 남유럽 국가들이 손꼽히고 있다. 이들의 국가의 방만한 국가재정 운영으로 인해 재정적자폭이 지나치게 커졌는데, 경기가 나빠지면서 이들 국가가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러워진 투자자/채무자들이 빚갚으라고 독촉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곳이 미국이다. 최근 몇년간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역시 빚이 엄청나게 늘었는데--그 동안에도 그런 이야기가 종종 있었지만--최근 들어 캘리포니아가 파산하냐 마냐 말이 많다. 그런데 캘리포니아가 파산 위기에 있다고 해서 달러를 해체해야 하냐 마냐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로 캘리포니아가 파산할 것 같으면 미국 연방 정부가 얼마든지 개입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주와 연방정부에 내는 세금이 따로따로인데, 주에 내는 세금은 대부분 그 주의 발전을 위해 쓰이게 돼 있지만, 연방정부에 내는 세금은 연방정부에서 국가 전체의 발전을 위해 쓸 수 있다. 따라서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파산 위기에 있으면, 연방 정부에서 이 빚을 떼워주는 게 가능하다. 물론 다른 주에서 조금 투덜대기는 하겠지만 결사 반대하는 일은 없을 거다.

둘째로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파산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캘리포니아의 주거 또는 사업 환경이 별로 좋지 않다면 미국인들이 미국내 다른 주로 옮기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물론 새로운 직장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차피 캘리포니아의 경기가 위축된다거나 해서 캘리포니아에서 직장을 잡거나 유지하는 일이 더 어렵다면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게 당연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어차피 국가 경제라는 게 모든 산업과 지역 골고루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라, 시간에 따라 특정 산업이 발전하면 다른 산업이 쇠하게 마련.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이 망하고, 캘리포니아의 IT 산업이나 뉴욕의 금융업이 떠오르면 그에 따라 인구도 디트로이트에서 캘리포니아나 뉴욕으로 이동했듯이, 특정 산업과 특정 지역으로의 인구의 유입이 자유로와야 실질적으로 유효한 경제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유로존의 문제는 이 두가지 전부 쉽지 않다는 거다. 첫째는 거의 철저하게 정치적인 이유에서 어렵고, 둘째는 정치 + 문화와 언어의 문제 때문에 어렵다. 무슨 말이냐면 유로존이 통일은 됐지만, 유럽 중앙 은행을 세움으로써 통화정책만 통일시켰지 재정정책은 각 나라가 따로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가 어려우니 그리스를 위기에서 구해야겠군'이라며 돈을 줄 연방정부가 따로 없다. 결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이 각자 걷어들인 세금의 일부를 그리스에 대줘야 하는데, 독일인들이 "우리가 낸 세금을 왜 그리스인들이 가져가냐?"고 반발하게 되는 거다. 물론, 상황이 워낙 안 좋게 돌아가다보니, EU와 IMF에서 1100억 유로를 그리스에 안겨주긴 했지만, 이를 둘러싼 수많은 고민과 갈등의 핵심은 결국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국가의 정치권에서 자국민들의 눈치를 끊임없이 봐야했다는 점이다.

두번째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리스가 여전히 경제난에 허덕이는데, 이 경우 불황이 계속돼서 실업률이 오른다고 할 때, 그리스인들이 다른 EU 국가로 쉽게 옮겨가서 직장을 잡는데에는 문화 및 언어 장벽이 실제로 존재한다. 게다가 그나마 모양세가 좋은 독일 같은 경우 이미 터키인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이 많은 상태에서 그리스인들마저 넘어오겠다고 하면 이를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러면 애초에 유로화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애초에 유로화가 등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스가 위기에 빠졌더라면, IMF 시절의 한국처럼 그리스의 드라크마의 가치가 폭락했을 거다. 물론 그 이후에 그리스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달리긴 했지만, 이 경우 그리스의 드라크마 가치가 떨어짐에 따라 수출이 늘어났을 거고, 이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을 거다. 여기서 잠깐! 아까 수출을 아무리 많이 해도 국가 경제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었나? 결국 수출과 수입이 균형을 맞춰야 된다고? 빙고! 수출과 수입이 균형을 맞춰야 된다는 게 핵심. 지금 그리스의 문제는 빚이 많은 거라고! 수출이 수입보다 많은 경우의 문제는 소비할 상품은 없이 돈만 많아진다는 건데, 빚이 많을 때는 번 것보다 덜 쓰고, 남은 돈으로 빚을 갚아야 하는 법.

아무튼 지금은 그리스가 유로존에 묶여 있다보니, 그리스 때문에 유로화 환율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리스가 위기를 자발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떨어지진 않았다. 2-30%나 떨어졌는데 그게 충분하지 않다고? 그리스 이외의 유럽 입장에서는 완전 물먹은 거지만, 그리스 입장에서는 여전히 유로가 너무 비싸다는 게 문제. 1997년말 98년초, 환율이 8-900원대에서 2000원까지 치솟던 그 시절을 생각해보라규-. 그래서 결국 유로를 깨야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유럽이 우리같이 문명화된 사람들이라면 서로 잘 사는 길로 다 같이 갈 수 있을지 알았는데, 실상은 가깝지만 너무 먼 당신들이었더라능. 그러고보니 환율이 800원대이던 시절이 있었구나, 그래봐야 12년 전인데 참 아득하게 느껴지는구나.

어찌됐건,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

@ Oh, wait, I think we are.
@@ 아무튼 이것으로 "유로화 위기를 통해 간단히 살펴본 자유주의 경제학" 이야기는 마무리짓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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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 국가나 사회에 부가 어떤 식으로 축적되고, 돈이 그 부를 재단하는 척도로써 어떻게 생겨나고 사용됐는지 대충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 이게 유로화의 등장과 무슨 상관인지 이야기해보자.

현재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그 나라 고유의 화폐를 갖고 있다. 이는 자국의 통화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경제적 주권과 연결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상주의의 영향에 따른 폐쇄적 경제의 역사적 잔해(뭔 말이 이렇게 복잡해? -_-,,)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후자의 시각 하에서 유로화의 등장은 굉장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럼 왜 이런 결론이 나는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앞서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화폐의 단위는 대단히 임의적이다. 만원이 천원에 비해서 더 많은 돈임에는 틀림없지만, 만원이 천달러보다 더 많은 돈일 당위성은 없다. 만원은 천달러보다 큰 돈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서 만원이란 과연 몇달러에 해당하는 가치가 있는가라는, 즉 환율의 개념이 등장하고, 이 대답에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적잖은 비중을 차지한다.

각 나라의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0~3%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쓴다고 했는데, 사실 인플레이션이란 게 말은 쉽게 하지만 조금 애매한 개념이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제품들간의 가격은 항상 같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올해는 쌀이 풍작인데 밀가루는 흉작이라고 해보자. 그러면 쌀값은 비교적 쌀 것이고, 밀가루는 비교적 비쌀 거다. 그런데 내년에는 쌀이 흉작이고 밀가루가 풍작이 된다면 쌀값은 오르고, 밀가루값은 떨어질 거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는 식품이나 의류, 교통비 등, 생활 필수품이랄 만한 제품들을 선별하여, 이들 제품 소비량에 따른 가중평균을 낸  소비자물가지수(consumer price index)라는 걸 산출한다. 그리고 이 소비자물가지수가 얼마나 오르내리는가로 인플레이션을 계산한다.

그런데 각 나라 별로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는 항목들과 각 항목들의 가중평균은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에서는 쌀이 주식인데 반해, 유럽이나 미국은 밀가루, 남미는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기 때문에 동아시아의 경우 쌀의 가격 변동이 밀가루, 옥수수의 가격 변동에 비해 인플레이션에 더 많이 반영된다. 따라서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인플레이션을 2%로 정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나라마다 각 항목별 가격 변동의 정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나라의 경제라는 게 워낙에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2%면 2%로 늘상 정확히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 너무 높다 싶으면 중앙은행에서 시중에 채권을 풀어 돈을 회수하고, 디플레이션이 일어나면 채권을 다시 사들여 돈을 푸는 식이다. 따라서 국가별로 인플레이션의 정도가 조금씩 (물론 정부/중앙은행이 심하게 삽질을 하면 더러 많이 차이 나는 경우도 있다) 차이가 나게 마련.

이런 이유 및 또 다른 변수들로 인해 화폐 가치가 오르내리는 정도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에 1달러면 1000원이라고 딱 정해지는 게 아니고 시시각각 변하게 마련이다. 또 다른 변수들 중 아주 큰 변수가 바로 수출입이다. 환율이 1달러 당 1000원인데, 한국에서 A라는 자동차값이 구백만원이고, 미국에서는 A와 비슷한 성능의 B라는 자동차값이 만달러라고 해보자. 이 경우 한국의 자동차값이 미국인들에게는 천달러 더 싸다. 그래서 미국의 소비자들이 한국의 A라는 차를 수입하기를 원한다. 미국 달러가 기축 통화이기 때문에 미국은 달러로 차값을 지불한다. 그런데 한국의 자동차 회사가 기축통화라고 달러를 받긴 받았는데, 막상 직원들 월급이라도 좀 주고, 하청업체 대금 지불도 하고, 전기세를 낼라치니 달러는 써먹을 곳이 없다. 그래서 은행에 가서 달러를 주고 원화로 바꿨다. 자동차 한대를 팔았을 땐 별 문제가 없었는데, 미국에서 자동차 A가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면서 이 자동차 회사에서는 달러를 계속해서 원화로 바꿔야 하는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상승한다. 이는 결국 환율이 1달러당 900원으로--자동차 A가 달러로 환산했을 때 만달러, 즉 자동차 B의 가격과 맞춰질 때까지--떨어지는 결과를 낳는다.

환전은 한가지 화폐를 다른 종류의 화폐로 바꾸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가지 화폐로 다른 화폐를 사는 것이기도 하다. 즉, 한국은행에서 생산한 한정된 양의 원화라는 상품을 달러를 주고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 달러를 쥐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다른 모든 재화와 마찬가지로 원화의 수요가 증가하면 원화의 가격은 오르는 거다. 예전에는 1달러로 원을 1000개를 살 수 있었는데, 원화가 비싸짐에 따라 1달러로 원을 900개밖에 못 사게 된다는 그런 얘기.

아무튼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환율이 오르락 내리락하게 되면 불편한 점이 있다. 각 나라들 사이에 무역이 활발하지 않은 경우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무역량이 많을 때에는 환차손이나 환차익 때문에 어느 시점에 상품과 돈을 맞교환하느냐가 민감한 문제가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환율을 고정시키는 거다. 즉, 앞선 예에서 한국과 미국 사이의 환율은 무조건 1달러=1000원으로 묶어놓자고 약속을 하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한가지 문제가 있다. 앞선 예에서 양국간 자동차 수출입이 일어날 경우 원화 가치가 상승압력을 받는다고 했다. 이 원화 상승압력을 해제하는 방법은 한국은행에서 원화를 더 많이 찍어내서 원화의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거다. 즉, 달러로 원화를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면, 원화 공급을 늘림으로써 원화의 가격을 낮춘다. 이때 문제는 한국은행은 더 이상 통화정책에 독립성이 없다. 즉, 미국과 한국 사이의 환율을 기준으로 통화정책을 펼 뿐, 한국의 인플레이션을 조절하는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1 이게 바로 경제학에서 말하는 불가능한 삼위(impossible trinity 또는 trilemma)이다. 이를 다시 요약하면, 자주적인 통화 정책, 고정 환율, 자유로운 자본의 유출입(쉽게 말하면 자유무역) 세가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는 없고, 이 중 한가지는 포기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양국간 자유로운 교역의 편의를 위해 1달러=1000원이라고 묶는 순간 불가능한 삼위 중 두가지, 고정 환율과 자유로운 자본의 유출입을 선택한 셈이다. 그렇게 되면 양국 중 한 곳의 중앙은행은 독자적인 기능을 포기해야 한다. 즉, 달러와 원은 그 단위의 차이로 인해 1:1000이라는 숫자의 차이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화폐다. 1달러의 백분의 일을 1센트라고 하듯, 1달러의 천분의 일을 1원이라고 부르게 되는 꼴.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유로화가 탄생한다. 즉, 유럽내의 다양한 국가들은 서로 활발한 교역을 하기에 지리적으로 좋은 여건을 갖췄다. 그런데 물건을 사고 팔 때마다 번번히 환율 눈치를 봐가며 화폐를 바꿔서 거래를 해야 한다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래서 수입은 죄악, 우리의 살 길은 무조건 수출뿐이라는 중상주의적 가치에 시달리지 않고 자유로운 교역을 할 셈이라면, 자연스레 "그냥 확 환율을 고정해버려? = 그냥 확 화폐를 통일해 버려?"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러자!"가 된 거다. 물론 이렇게 했을 경우, 유로화를 이용하는 경제 단위의 규모가 일본을 제치는 건 물론,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정도가 된다는 고려도 작용을 했다. 즉, 유럽의 경제 규모를 상징하는 한가지 화폐가 등장한다면, 달러 패권을 물리칠 수도 있을 거야라는 꿈과 희망...까지는 좋았지만, 인생에 뜻대로 되는 일이 몇가지나 있디? 결국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바로 지금 그 꿈이 휘청거리고 있다. 도대체 그 복병이 뭐였는지는 내일 정리하고 이 시리즈를 마무리 짓기로 하자.


1 이게 바로 요새 중국이 하고 있는 짓이다. 위안화 절상 이야기가 뉴스에서 종종 나오는 것도 이때문. 앞서 한국의 자동차 예를 들었듯, 보통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의 화폐 가치는 오르고, 수입을 많이 하는 나라의 화폐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이 메커니즘에 의해서 양국간의 수출입은 보통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로 수지를 맞추게 되는데, 수출을 통한 성장을 이루려는 중국은 위안화의 화폐 가치가 오르길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의 중앙은행이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잡는 기능을 포기하고 1달러 = 약 6.8 위안 정도로 묶어놓은 상태.

위안화 가치가 안 오른다는 건 중국의 수출에 제동을 거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이야기고, 중국의 수많은 수출업자들은 계속해서 미국에서 걷어들인 달러를 위안화로 바꾸려고 하게 되는데, 새로운 달러가 유입될 때마다 시중의 위안화로 맞바꾸는 게 아니고, 중앙은행이 위안화를 추가로 찍어주는 거다.

이럴 경우 문제는 역시 인플레이션. 중국에서 생산한 상품과 서비스의 양은 한정돼 있는데--와중에 그중 많은 양을 미국에 내다 팔기까지 했다--중국 내에 유통되는 위안화의 양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는 결국 중국 내에서 무언가는 가격이 오를 거라는 이야기. 그래서 최근 중국도 부동산에 거품이 잔뜩 끼고 있다.

원래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딱 두가지뿐이다, 소비와 투자. (저축은? 흠, 저축도 투자의 일종이다, 단지 간접적이고 수익률이 낮을 뿐이다.) 그런데 소비할 상품과 서비스가 별로 없다면, 투자를 할 수 밖에. 그런데 이래저래 훑어봐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다면 결국 끝에 가면 부동산이라능... orz 중국의 부동산 거품이 언제 터지냐도 문젠데, 어쨌든 수출을 계속 하는 동안은 버티긴 하겠지. 변수는 역시 (한번으로 안 끝날) 위안화 절상의 시기와 정도...

중국과 달러, 유로 이야기도 하려 들면 할 이야기가 엄청 많은데, 이건 다음에 기회 봐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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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유로,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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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서 중앙은행이 왜 등장했고, 꾸준한 통화공급의 확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했는데, 실제로 통화공급량을 어떻게 조절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중앙은행에 대해 더 자세히 논하기에 앞서 정부가 경제활동에 개입하는 방법은 크게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으로 나뉜다. 재정정책이란 정부가 예산을 짜서, 그에 맞춰 세금을 걷고 집행하는 것을 말하고, 통화정책이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는 걸 말한다. 이들 각각에 대해 간단한 예를 들어 살펴보자.

자, 정부가 새로운 학교를 짓기로 결정했다고 하자. 학교 건물을 짓는 건축비는 물론, 학교가 새로 생겼으니 교사도 새로 뽑아야 하고, 뭐,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드는데, 이를 다 계산해보니 100억쯤 필요하다. 그래서 이를 위해 세금을 100억을 더 걷는다. 이 경우에 이 100억은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와야하고, 결국 국민전체로 봤을 때 그들의 실질 소득이 100억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덜 중요한 것들부터 소비를 줄여나갈 거고, 그 결과 전 국민이 자가용을 조금 덜 끌기로 결정, 100억원에 해당하는 주유비를 아꼈다고 하자. 이 경우 주유소와 정유사의 수입이 줄어들 거고, 그에 따라 주유소와 정유사에서 필요없는 인력을 처분한다. 정부는 이들을 고용/교육하여 학교 건설을 맡기고, 교사로 임용한다.

여기서 이 시나리오가 그럴 듯하냐, 그럴 듯하지 않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국가 전체로 봤을 때 특정 산업(이 경우엔 정유산업)은 100억원어치 생산량이 줄고, 특정 산업(건설 및 교육)에서는 생산량이 100억원어치 늘어난다는 거다. 즉, 국가 전체의 부는 늘지도 줄지도 않고, 물가에도 큰 변화가 없다. 다만 국가내 산업의 구조가 바뀌었을 뿐. 이게 재정정책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학교를 짓고 나니 미처 몰랐는데, 학생들이 통학하기에 학교 주변의 도로들이 조금 위험해 보이는 거다. 그래서 학교 주변 도로 정비를 하는 김에 전국 각지의 도로도 한꺼번에 정비하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사업구상을 해보니 또 100억 정도가 필요하다. 그런데 얼마전에 세금을 100억 올린 까닭에 다시 세금을 올리려니 국민들이 좋아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이번엔 통화정책을 집행하기로 한다. 그래서 중앙은행에 가서 돈이 한 100억 필요한데, 간만에 인쇄기 좀 돌리는 게 어때? 그래서 오만원짜리 신권을 20만장 발행한다. 그리고는 도로 정비에 필요한 인력을 모집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최근 농사 짓는 일이 지긋지긋하던 농부들이 대거 도로 정비를 하러 몰리는 바람에 쌀 생산량이 100억원어치 줄었다고 해보자.

이 경우에는 국가가 쓴 100억이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의 실소득이 줄지 않았다. 다만 쌀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쌀 농사 해서 100억을 버는 대신 도로 정비를 해서 100억을 벌었을 뿐. 그렇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쌀 생산량이 줄어듦에 따라 국민들에게 평소에 쌀을 사먹는데 쓰던 돈이 남았기 때문이다. 이 남은 돈은 결국, 더 비싼 값에 더 적은 양의 쌀을 사 먹거나, 쌀 대신 밀가루나 옥수수, 콩 등을 사먹는데로 옮겨가게 된다. 그런데 그 결과로 밀가루, 옥수수, 콩의 공급량은 그대로인데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에 이들의 값이 또 오른다. 결국 화폐 가치가 하락해서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이게 통화정책이다. 통화정책을 사용할 경우에도 국가 전체로 봤을 때 산업의 구조만 바뀌었을 뿐, 국가 전체의 부는 줄지도 늘지도 않았다. 다만 시중의 화폐의 양이 100억원어치 늘어남에 따라 상대적인 화폐 가치가 하락한 것뿐이다. 이때 주머니에서 세금으로 빠져 나가지는 않았지만, 갖고 있는 돈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소득은 감소한 것과 같은 효과가 나온다. 그래서 통화발행권을 국가가 쥐고 있는 시스템 하에서 인플레이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금이다.

그래서 국가는 돈을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이를 매우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특히 정치적 계산에 영향을 받을 경우 국민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중앙은행은 행정부로부터 독립된 기관으로 존재하고, 중앙은행장은 대통령이나 국회의 입김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는 독립적 권한을 부여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의 제1의 역할은 정부가 온갖 재정정책으로 죽을 쓰든 말든, 눈 질끈 감고, 인플레이션을 조절하는 거다. 이미 몇차례 말했듯이,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생산량이 증가할 경우, 이에 맞춰 시중에 돈을 더 푸는 거다. 그렇지만 이를 정확히 맞출 수는 없기 때문에 보통 인플레이션이 매년 0~3% 정도 발생할 수 있게끔 여분의 돈을 푼다. 약간의 디플레이션에 비해 인플레이션을 선호하는 까닭은 앞선 글에서도 밝혔듯이 아무도 월급이 감소하는 걸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심리적 요인 때문. (물론 정치와 경제라는 게 태생적으로 쉽게 분리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보니, 중앙은행장이라는 자리가 철저하게 비정치적인 자리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실제로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조절하는 메카니즘은 뭘까? 사실 시장에 돈을 풀기만 하면 인플레이션은 발생한다. 벤 버냉키(Ben Bernanke) 말대로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면서 하늘에서 돈을 뿌려도 그만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뭔가 불공평하잖아. 때마침 헬리콥터 밑에 있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누구는 꽁돈을 줍고 누구는 못 줍는 거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Ben "Helicopter" Bernanke


그래서 보통은 공개 시장 조작(open market operation)이란 프로세스를 거친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국채를 돈으로 바꾸는 거다. 무슨 말이냐면, 대부분의 국가들은 재정정책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국채를 발행한다. 국가도 개인과 마찬가지로 가끔은 돈을 빌려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선 돈을 빌리는 행위가 만성적이라는 게 문제긴 하다. 관련글: 전인교육) 예산을 책정하고 이에 맞춰 세금을 거뒀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대형 사고들이 터진다거나 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돈이 더 필요할 수 있으니까. 그런 걸 대비해서 세금을 걷어야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필요가 불분명한 일에 세금을 더 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ㅡㅠㅡ

아무튼 국가에서 돈을 빌리는데 신용카드를 긁거나, 청와대를 담보로 잡을 수는 없는 일이고, 국채라는 걸 발행한다. 국채는 다른 모든 채권과 마찬가지로 액면가, 만가일, 쿠폰이 있다. 액면가란 말 그대로 국채에 찍혀 있는 가격으로 채무자, 국채의 경우엔 국가가 빌리는 돈의 액수라고 보면 된다. 만기일이란 국가가 언제 그 돈을 되갚겠다는 날짜를 말하고, 쿠폰은 만기일 전에 국가가 채권자에게 정해진 시기에 내는 이자를 말한다. (참고로, 액면가와 채권 거래가는 사실 다르다.) 결국 국채란 건 고정 금리 대출이라고 보면 되겠다.

자, 그런데 국채랑 인플레이션이랑 무슨 상관이냐? 국채는 철저하게 재정정책의 결과로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 않는다. 갑이 을에게 채권을 주고 돈을 빌려서 새로 집을 지을 경우에, 을은 채권이라는 자산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만기일이 되어 갑이 을에게 돈을 갚기 전까지, 을은 그 돈을 사용할 수 없다. 돈이 필요하다면 채권을 팔면 되지만, 여전히 채권을 산 사람은 그만큼의 돈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 전체로 봤을 때 유통되는 통화량은 일정하고, 그로부터 생산되는 상품(갑의 집)의 가치가 누구의 소유(갑)냐의 차이만이 있을 뿐. 따라서, 국가가 국채를 발행할 때는 강제로 세금을 더 걷은 것은 아니지만, 나중에 돌려준다는 명목하에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게 한 것과 같다.

이렇게 국채를 발행한 경우에 이 돈을 갚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훗날에 필요한 돈보다 세금을 더 걷어서 재정흑자를 낸 후에 이 남는 돈으로 국채를 갚는 방법이 있고, 다른 한가지는 중앙은행에서 돈을 더 인쇄해서 이 돈으로 국채를 갚는 방법이 있다. 전자의 경우엔 한가지 재정정책을 다른 재정정책으로 바꾸는 것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재정정책을 통화정책으로 치환하는 거다. 그리고 이는 앞서 설명한 통화정책과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고 파는 과정을 통해 인플레이션을 조절하고 이를 공개 시장 조작이라고 한다.

신문이나 뉴스에서는 항상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조정한다고 나오는데, 그 이유는 금리가 통화공급의 증감에 대한 한가지 지표이면서 동시에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공개 시장 조작이 금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간단히 정리해보고 오늘 이야기는 마치도록 하겠음.

중앙은행에서 국채를 사들이거나 국채를 팔 때, 사실 아무나 이걸 중앙은행으로부터 사고 파는 건 아니다. 중앙은행은 (아주~ 아주~ 예외적으로 긴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은행들 하고만 거래를 한다. 일반적으로 은행이란 건 갑에게서 돈을 빌려 (예금을 받고), 을에게 돈을 빌려준다. 그렇지만 은행이 빌린 돈을 남들에게 다 빌려주는 건 아니고, 일정 금액은 은행이 쥐고 있다. (안 그러면 사람들이 통장에서 돈을 못 찾을 것 아닌가.) 은행이 빌린 돈 중 얼마나 많은 양을 쥐고 있어야 하는가는 보통 법으러 정해져 있는데, 동네마다 다르지만 10~20% 정도다.

이 비율이 20%라고 해보자. 이때 사람들이 100억을 예금했으면 80억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줘도 되지만, 20억원은 비상시를 대비해 은행이 쥐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A은행에서 돈을 빌려달라고 오는 사람들한테 돈을 다 빌려주고도 30억이 남았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빌려줄 여유 자금이 10억이 있지만 그냥 은행 금고에 썩고 있는 거다. 뭐, 그게 대수인가 싶겠지만 10억을 빌려줬을 경우 벌어들일 수 있는 이자 수익이 그만큼 줄어드는 거다. 그런 경우에 A은행은 중앙은행에서 쿠폰이 5천만원어치의 국채를 사들임으로써 국가로부터 이자 수익을 매년 5% 벌어들일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 이 A은행의 큰손 고객이 은행을 옮기겠다며 10억을 빼갔다. 그러면 A은행이 받은 총 예금은 90억으로, 현재 은행 금고에 남은 돈은 10억으로 줄어든다. 90억의 20%면 18억이 있어야 되는데, 10억밖에 없으니 8억이 모자란다. 이 경우에 A은행은 국채 중 8억원어치를 다시 중앙은행에 되팔아서 은행 금고의 돈을 18억으로 맞출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은행끼리 돈을 빌려주고 받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때, 결국 은행들은 다른 은행과의 거래, 국채, 혹은 기업 채권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돈을 빌리고 갚을 수 있는데, 결국 어느 경로가 은행의 수익에 가장 도움이 되는가를 살피게 된다.

다시 앞선 예로 돌아가서, A은행에서 10억을 빼간 큰손 고객이 A은행과 같은 규모의 B은행에 10억을 예금한다. 그러면 B은행의 총예금은 110억이 되고, 은행이 쥐고 있는 돈은 30억이 된다. 그래서 B은행에서 A은행이 필요한 8억을 빌려주겠다고 한다. 그러자 A은행은 이율이 얼마냐고 묻고 B은행은 7%를 내라고 한다. A은행으로서는 10억짜리 국채로 매년 5천만원이 들어오는데, 8억을 B은행에서 빌리고 7% 이자를 내려면 매년 5600만원을 내야 하니 600만원 손실인 셈. 그럴 경우엔 차라리 중앙은행에 국채 8억원 어치의 국채를 되팔고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국채를 8억원어치 국채를 사들이는 셈이다!) 2억원의 5%에 해당하는 천만원이라도 매년 버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 그렇게 되면 B은행에서는 이율을 낮출 수밖에 없다. 물론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은행이 단 2개뿐일 리도 없고, 채권의 가격도 수요-공급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라, 국채의 매물이 얼마나 많은지에 따라 (액면가와는 다른) 거래가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이 다 고려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요점은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일 경우, 시중에 현금의 양은 더 많아지고, 이율은 떨어지는 반면, 중앙은행이 국채를 팔게 되면, 시중의 현금이 줄고, 이율은 오른다는 거다.

다른 말로 하면, 이자라는 건 돈의 (액면가가 아닌) 거래 가격이다. 나한테 필요없는 돈이 천만원 있어서, 돈을 경매에 부친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돈을 다른 재화로 바꾸는 게 아니고, 천만원에 대한 이자를 통해 경매에 부친다면, 돈의 가치가 높다면, 즉 돈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면, 이율이 높아질 거고, 그 반대라면 이율이 떨어질 거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시중에 있는 국채를 돈으로 교환함으로써, 시중에 돈이 많아지면 돈의 상대적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이율이 낮아진다. 그리고 물론 인플레이션은 심해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그래서 공개 시장 조작이 하는 통화공급량의 조절은 기준금리와 밀접하게 얽혀 있는 거다.

글이 생각보다 길어졌는데, 내일 이어서 환율과 (마침내!) 유로의 등장에 대해 끄젉거려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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