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존 메너드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그동안 화폐주의 시카고 학파(밀튼 프리드먼), 오스트리아 학파(루드힉 폰 미제스), 케인즈주의자(존 메너드 케인즈), 고전주의 경제학파(애덤 스미스)의 발언들을 하나씩 살펴 본 관계로, 이번주에는 오나전 반대편의 공산주의자 칼 맑스(Karl Marx)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까 했는데, 최근 유럽의 재정 정책과 관련해서 시장주의자(시카고+오스트리아 학파)와 케인즈 학파 사이에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관계로, 이를 반영해서 케인즈 이야길 다시 한번 하고 다음주에 맑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마 경제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발언 중 하나인 동시에 누가 인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도 다양하게 변화하는 한 마디가 바로 케인즈의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즉, "장기적으로 봤을 땐, 우린 다 죽고 없는 걸..."이라는 한마디일 거다. 그럼 우선 이 발언이 나온 맥락이 무언지 살펴보자.
사실 이 말을 케인즈가 언제 처음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은데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924년이라고 돼 있는데, 대공황을 겪기 전인 이 당시엔 케인즈도 케인즈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발언의 맥락이 맞지 않다), 어쨌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공황에 대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아담 스미스로부터 꽃피기 시작한 경제학은 신고전주의자들을 탄생시킨 한계 혁명(marginal revolution1)을 거치면서 단순한 사회학적 위상을 넘어서서 사회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과학으로서 자리 잡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런 경제학의 위상 성장에 급제동이 걸리는데 그게 바로 대공황이다. 당대의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컨셉은 비교적 간단했다. 국가 혹은 정부가 감놔라 대추놔라 개입하지 않고, 개개인이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 국가 혹은 사회 전체의 규모로 봤을 때에는, 그 사회에서 생산한 재화는 그 사회가 다 소비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품목이나 산업별로 보면 과잉 투자로 인한 과잉 생산이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지만, 사회 전체의 모든 경제 활동을 높고 보면 과잉 생산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 어차피 한정된 물질적, 인적 자원을 이용하는 상황에서 사회 내의 모든 상품에 대한 수요, 공급, 가격이 평형을 이루는 조건이 있을 텐데, 어느 한 상품에 대한 생산 과잉은 다른 품목에 대한 생산 부족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렇게 평형이 깨진 부분에 대해서 생산 과잉량은 가격 하락을, 생산 부족량은 가격 상승을 유발시키고, 소비자는 가격이 하락한 과잉 생산된 상품을 조금 더 소비하게 되고, 반대로 생산자는 가격이 상승한 생산 부족 상품이 더 많은 이윤을 남길 거란 판단 하에 이들의 생산을 더 늘리려 할 거고, 결국 다시 평형점을 찾아간다는 이야기. 이런 시나리오에 따르면 생산 과잉이 일어난 특정 산업은 가격 하락으로 일시적 침체를 겪을 수 있지만, 경제 활동 전체가 슬럼프를 겪을 수는 없다.
게다가 누군가의 소득은 다른 누군가의 지출이고, 누군가의 소비는 누군가의 소득이란 점에서, 경제 주체 모든 이들이 소득과 소비를 모두 취합할 경우 이는 제로섬일 수밖에 없다는 단순한 논리에 따라 사회 전체의 경제 주체들이 생산한 모든 것은 같은 경제 주체들이 소비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생산력이 소비력을 이끄는 공급주의 입장을 견지한다. 이를 비교적 잘 정리한 게 프랑스의 경제학자 세이(Say)로 이를 세이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이는 논리적으로 아주 간결하고 우아한 맛이 있어서 당대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열병처럼 번지며, 경제학을 언제든지 과학의 반열에 올라서기라도 할 듯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1929년 주식 대폭락에 이어 거의 1930년대 내내 수요가 공급에 못 미치며 장기간의 지독한 경제 침체기에 접어들고 신고전주의 경제학 개념에 적신호가 들어온다.
이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경제학계의 구원 투수가 케인즈다. 그 이전까지 케인즈 본인도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신봉해 왔는데 1930년대의 대공황을 경험하며, 이론적으론 그럴 듯한데 실제로는 뭔가 안 맞는다고 느낀 그는 무료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ployment, Interest And Money, 줄여서 The General Theory)이라는 겁대가리없는 제목의 책을 1936년 내놓는다. 케인즈주의 경제학의 탄생이다.
그럼 케인즈는 그 동안의 이론에서 뭘 바꿨느냐? 일단 케인즈가 자신의 이론을 "일반 이론"이라고 명명한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의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가정한 "일반"은 틀렸다는 데에 있다. 신고전주의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고용이 안정돼 있고, 경제가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성장하는 평형점이 "일반"적이고, 이로부터 간혹 부분적 산업에서의 생산 과잉이나 부족 등의 불규칙한 패턴이 발생할 경우, 이에 대한 조정기간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런데 케인즈는 이런 시각을 완전히 뒤틀고는, 경제학자들의 머릿속 세상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 "일반"적인 상황은 경제가 비평형 상태에서 끊임없이 이쪽저쪽으로 기우뚱거리고 있고, 그러다 간혹 운이 좋으면 신고전주의자들이 말하는 평형점에 있을 때도 있다는 거다.
그러면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중요한 개념을 한가지 도입한다. 바로 총수요(aggregate demand)라는 개념이다. 그전까지 수요와 공급을 바라보는 시각은 굉장히 국지적인 차원에서였다. 즉, 특정 상품의 가격이 X원이라고 할 경우 생산자는 이를 몇개나 만들지, 소비자는 이를 몇개나 살지를 고민하는 차원에서의 공급과 수요였다. 사회 또는 국가 전체의 모든 소비자들이 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상품들에 대한 모든 수요에 대한 별도의 고려 따위는 없었다. 이는 무조건 공급을 따라간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케인즈가 총수요와 총공급이 따로 놀 수 있다고 본 거다.
그 원인--케인즈는 비이성적인 동물과 같은 본능(animal spirit)이라고 생각했지만--이 뭐가 됐든 총수요와 총공급이 따로 노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고, 총수요가 총공급을 밑돌게 되면 바로 대공황과 같은 대규모의 장기적 경기 침체가 일어난다는 거다. 이렇게 경기 침체가 일어날 때, 신고전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시장이 이를 수정하지 못하는 건 가격과 임금이 끈적하기 때문(price and wage stickiness)이란 것, 즉 가격과 임금은 한번 오르면 이는 쉽게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즉,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시장이 작동하려면 과잉생산된 상품들의 가격이 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이들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임금도 같이 떨어져야 이들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서 과잉 생산량을 흡수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이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과잉생산된 상품들의 가격이 여전히 꽤 높다보니 이에 대한 수요가 계속해서 밑돈다는 뭐 그런 이야기.
그럼 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여기서 케인즈에 따르면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논쟁의 핵심인 정부가 등장한다. 공급에 비해 밑도는 수요를 정부가 나서서 매우라는 거다. 즉, 정부가 재정정책을 이용하여(빚을 내서) 모자란 수요분을 채우면 이 돈을 받은 사람들이 돈을 쓰기 시작하고, 앞서 말했듯 한사람의 지출은 다른 사람에게는 소득이기 때문에, 이렇게 돈을 번 사람이 또 돈을 쓰고, 돈이 돌고 돌고 돌기 시작한다.
그래서 요약하면, 경제는 평형 상태에 있는 적이 없기 때문에, 정부는 불경기에는 재정 적자를 통해 수요를 창출하고, 경기 호황기에는 재정 흑자를 통해 수요가 넘치는 걸 막으라는 이야기.
이 이야기를 하자 물론 시장주의자들은 기겁을 하고 나섰다. 정부가 경제활동에 적극 개입하라고? 허걱, 님하 무슨 농담을 해도 그렇게 무서운 농담을... 시장주의자들의 요지는, 정부가 재정 적자를 낸다는 건 누군가로부터 돈을 빌려서 사용한다는 이야기. 결국 경기가 되살아나려면 시장 내에서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돈을 빌려 써야 하는데, 그 돈을 정부가 이미 빌려가버렸기 때문에 쓸 수 없고, 결국 경기 침체를 더 장기화시킨다는 거다. 가만히 냅두면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알아서 조정할 걸 정부가 개입해서 초치지 말라능!
그리고 이에 대한 케인즈의 화답이 바로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해결해 준다고? 암, 좋은 이야기지. 근데 대체 얼마나 기다리면 되는 거유? 우린 다 죽고 나서?", 바로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라는 한마디. 즉, 기다리면 시장이 해결책을 찾을 거란 걸 부정한 게 아니라, 그 해결책을 얼마나 빨리 찾을 수 있느냐에 촛점을 맞춘 거다. 그걸 기다리는 동안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건 경제학자들은 아니라고 그냥 기다리라고 하는 건 무책임하지.
그런데 케인즈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이 말을 다음과 같이 뒤틀어서 해석한다. "뭐, 어차피 언젠간 우린 한번 죽는 인생. 두번 죽는 거 아니니까, 우리 죽고 난 그 뒷일은 알 바 아니지. 그러니까 (정부가) 돈을 여기저기서 계속 빌려서 흥청망청 쓰라고!" 물론 케인즈의 발언은 이런 의미가 절대 아니다. 이 논쟁을 조금 더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 학파별 경기 사이클을 바라보는 관점, 악덕투자(malinvestment), 유동성 트랩(liquidity trap),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 등등 다양한 개념을 설명해야 하는데, 이미 글이 꽤 길어진 만큼 이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만 현재 유럽,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정부가 재정 축소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폴 크루그먼을 비롯한 케인즈주의자들은 "정말 1930년대를 다시 한번 보잔 거야? 미쳤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고, 반대편의 시장주의자들은 "그래, 그래, 그래야 시장 신뢰(market confidence)가 회복되고, 경기도 회복되지"라며 박수를 치는 상황. 그리고 일전에 한번 소개한 적 있지만, 이 시점에서 꽤나 적절한 영상이라 다시 한번 소개.
1 스미스, 리카도 라인의 정통 고전주의 경제학이 경제학 발전에 초석이 된 건 맞지만 이들이 경제학에 대한 모든 부분을 제대로 설명해낸 건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다이아몬드에 비해 물이 훠~얼씬 인간 삶에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물이 다이아몬드보다 훨씬 싸다. 왜 그럴까? 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한 그럴 듯한 답변을 하지 못하면서, 고전주의 경제학이 한때 그 존립의 위기를 맞는다. 그러다가 한계 효용(marginal utility)과 한계 가치(marginal value)의 개념이 등장하면서 고전주의 경제학의 기초가 더욱 탄탄해지게 되는데, 경제학에서 이 한계(margin)의 개념의 도입은 꽤나 혁명적이었기 때문에 이를 한계 혁명이라고 부르고, 이를 토대로 부활한 고전주의 경제학을 신고전주의 경제학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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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y at the Fed!" ㄲㄲㄲ 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