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 대해 알고 싶으면 그 친구들을 보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으로 "유유상종"의 개념에 입각해서 통용되는 말인데, 여기엔 사실 그 이상의 통찰력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칭찬에 인색한 편이고, 내 주변에도 칭찬에 후한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해보자. 새로 취직을 했는데, 입사 초기에 직장 상사가 나에게 칭찬을 했다. 일반적으로 나는 내 경험에 의존해서 그 칭찬을 해석하기 때문에, 내가 정말 일을 잘했구나라고 생각해서 우쭐하기 쉽고, 그 직장 상사는 나에게 칭찬을 해준, 나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게 사실 사람들이 엄청 쉽게 빠지는 함정이다.

그렇지만 그 칭찬의 의미와 그 직장 상사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 경험이 아니라, 칭찬을 하는 사람의 경험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즉, 그 직장 상사가 나 이외의 다른 사원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는지, 그들에게도 일상적으로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하는지가 훨씬 중요한 고려의 요소다. 나에게 했던 칭찬이 어떤 뜻이었는지, 그 칭찬을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직장 상사의 경우 칭찬이 지나치게 헤프지는 않은지 따위의 맥락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걸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나와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하느냐를 이해하는 것 역시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친구들을 보라는 말은, 그 친구들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그 친구들과 어떤 언어와 몸짓으로 소통을 하는지를 보라는 말이기도 하다... ...고 나는 생각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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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불허전(名不虛傳) : 이름은 헛되이 전하여지는 법이 아니라는 뜻으로 명성이나 명예가 널리 알려진 데는 그럴 만한 실력이나 사실이 있음을 이르는 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하나 없다 : 좋다고 소문이 난 것이 실지로는 별것이 아닐 때에 하는 말.

아주 흔히 쓰이는 이 사자성어/속담은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상충되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어떤 진리를 내포하고 있는 듯이 사용된다. 예를 들면 얼마전에 키쓰 자렛/게리 피콕/존 데조넷의 공연을 보고는 "히야~ 역시 명성은 헛되이 알려지는 법이 없구만"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와 동시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가 참일 수는 없는 법.

그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크게 두가지 메카니즘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첫째로 인간은 현상에 대한 단순명료한 설명/해석을 좋아한다. 즉, 다양한 사건들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그로부터 일반적인 규칙/법칙을 이끌어낸다. 내가 지금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개별적인 현상--사람들이 두개의 모순되는 속담을 거리낌없이 사용한다--을 관찰하고, 그 현상의 이면에서 작동하는 원리가 무엇인가를 짚어내는 행위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렇게 발견된 규칙/법칙/설명/해석 따위를 다른 개별적 현상에 적용하길 원한다. 이런 규칙들을 찾아내고, 또 적용함으로써 자신의 "지혜"로움을 뽐낼 수 있다.

그런데, 이 관점에서 보면 앞서 든 두 속담의 예와 같이 눈에 띄게 모순적인 두가지 다른 법칙이 존재한다는 건 다소 기이한 일이다. 왜냐하면 서로 모순이 되는 두가지 법칙을 자기 편할 때에 골라쓰는 건 지혜로워 보이기 보다는 멍청해 보이기 십상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상충되는 두가지 속담은 만들어져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두번째 메카니즘이 동작한다. 그 두번째 메카니즘이란 "두개의 속담을 만든 사람이 서로 다른데 이들이 평생 지극히 상반되는 경험만을 하고 살아서 각자 자신의 겨험에 입각한 법칙을 만들었더니 두가지가 따로따로 논다"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닐 거고 여기서 작동하는 게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다.

확증편향이란 "세차를 하고 나면 꼭 비가 온다" 따위의 통설이다. 이는 세차를 하고 난 후에 비가 온 일에 대한 인상은 강하게 남는 반면, 세차를 하고 나서 한참 멀쩡하게 돌아다닌 일은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모두 기억한다는 건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 매우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히 그럴 법한 일들은 그냥 빨리 빨리 기억에서 지우면 된다. 예를 들어, 어느날 출근했는데, 아침에 출근하면서 집 문을 잠궜는지 안 잠궜는지 도저히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하루종일 불안해서 일은 손에 안 잡히고 안절부절하다 퇴근해서 집에 가보니 문은 멀쩡히 잘 잠겨 있다. 문을 잠근 게 기억이 안 나는 건, 집을 나서면서 문을 잠그는 게 일상이기 때문에, 몸이 자연스레 그 행위를 하지만, 뇌는 이를 특별히 중요한 일로 간주하고 저장해두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대형 사고를 칠 경우, 그런 사고에 대한 기억이 아주 슬로우 모션으로 또렷하게 기억되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면 발을 헛디뎌서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경우, 그 떨어지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진다고 하는데 (물론 죽을만큼 높지는 않은 곳에서 떨어진 사람들의 경험 이야기다) 이런 경험은 무척 드물고(귀하고?), 자칫하면 생사와 직결되는 중요한 사고이기 때문에 그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에 대한 온갖 디테일들이 뇌에 저장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에 대한 기억을 들추면 그 다양한 디테일들을 모두 끄집어내는 과정이 슬로우모션처럼 느껴지는 거다.1

결국 자신에게 있어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사건들은 실제 발생 빈도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기억속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을 한묶음으로 분류하기가 용이해지는데, 이게 확증편향이다. 또한 한번 확증편향을 갖게 되면 이와 상충되는 현상들은 무시하고, 이에 일치하는 현상들만 더 또렷이 기억함으로써 확증편향은 확증편향을 더 공고히 하는 양성피드백(positive feedback)을 갖는다.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성급한 일반화와도 유사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뭔가 기대했던 것만큼 훌륭한 것을 보면 "명불허전"이란 말이 떠오르고, 무언가가 기대에 확 못 미치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네"라고 아무생각 없이 툭 내뱉게 된다. 그렇지만 뭔가 매우 훌륭한 걸 보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이건 먹을 게 많은데!"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말인데, 속담에 담긴 지혜 따위란 원래 이런 식이다. (눈치 챈 사람들은 눈치 챘겠지만, 이런 한마디도 확증편향되겠습니다.)

@ 아~, 이 얼마만의 글인가?

@@ 제목이 좀 낚시성인가? ㅋㅋㅋ

1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 같아 설명을 조금 하자면, 애초에는 낙하하는 동안에 시간을 천천히 느끼는 걸거란 가설 하에 실험을 수행했는데, 그렇지는 않더란다. 실험방법은 숫자가 아주 빨리 지나가는 카운터(뭐, 스탑와치 같은 걸 생각하면 된다)를 사람들에게 주고 낙하를 시킬 경우, 실제로 사람들이 자신의 낙하운동을 천천히 인식한다면 카운터의 숫자를 읽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는 않더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감 낙하 시간은 실제 낙하 시간보다 다들 몇배-몇십배씩 길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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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이 자책골을 넣었는데, 에인세는 자기가 골 넣은 마냥 세러머니를 한다. 물론 그냥 자기네 팀이 득점을 했다는 게 기뻐서일 수도 있지만 아르헨티나 선수들 중에서는 유독 에인세가 즐거워하는 것 같고, 카메라에도 많이 잡힌다. 그런데 이번만이 아니라 자책골이 들어가면 유독 세러머니를 요란하게 하는 선수들이 한명씩 꼭 있는데, 잘 보면 대부분 자책골을 넣은 선수와 가까이에 있었거나 볼경합을 하고 있던 선수인 경우가 많다. 에인세의 경우에도 공을 기다리며 공이 오는 타이밍에 발길질을 했는데 박주영이 끊어먹는 바람에 헛발질을 하고 말았다.

아니, 그렇게 세러머니를 하면 자기 득점으로 인정이 되기라도 하는 거야? 왜들 그래? 요새처럼 고화질 카메라가 도처에서 촬영을 하는 세상에, 도대체 누가 골을 넣었는지 분간을 못할 리가 없잖아. 이와 유사한 현상으로, 소위 다이빙을 통해 파울을 유도하려는 선수들 중에서도 파울이 선언이 안 되면 유난히 화를 내는 애들이 있다. 예를 들면 포르투갈의 씨발도. -_-,, 요새 세상에 리플레이 몇번 보여주면 다이빙을 했는지 안 했는지 티가 다 나는 세상에서 왜들 그럴까? 자기 발(혹은 머리)에 맞지 않고 골이 들어갔다는 것쯤, 상대팀 선수와 접촉이 없었는데도 자기가 쓰러지고 있다는 것쯤 본인들이 제일 잘 알 거 아냐? 리플레이 한두번이면 뽀록 다 나는 세상에 왜들 그럴까?

추측을 하자면, 아마도 습관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프로 축구 레벨이 되면 카메라가 십수대에서 수십대씩 돌아가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지만, 대부분의 축구 선수들이 축구를 시작해서 몸에 길들이는 레벨에서는 카메라가 없는 경우가 많다. 뭐, 요새야 가정용 캠코더도 워낙 흔해서 어릴 때부터 운동하는 모습들을 많이 비됴로 담아놓기 시작했지만, 지금 성년인 선수들이 어린 시절만 해도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을 테니. 즉, 카메라가 없는 곳이라면 그저 눈깜짝할 새에 심판들을 속여 넘기기만 하면 그만. 그런 환경에서는 상대팀 자책골도 내골로 만드는 속임수, 다이빙을 통한 파울 유도도 기술이다. 그리고 습관이란 무서워서 그런 기술이 몸에 밴 상태에서는 카메라가 있다고 갑자기 개버릇 남주지 못하는 게 아닐까? 이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해서는, 카메라가 점점 하위(?) 레벨의 축구 경기에도 보급이 됨에 따라 이런 행동에 변화가 있는지 두고 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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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서 약팀이 강팀을 상대하는 일반적인 전술은 보통 선수비 후공격이다. 이는 "어쩌다" 이기면 좋고, 비겨도 그만, 그렇지만 지는 것 만큼은 피하자는 심정으로 상대적으로 무승부의 확률을 높이고, 이기거나 질 확률을 낮추는 거다. 이런 전략을 선택하는 이유는 약팀이 강팀이랑 맞불을 놓을 경우 비길 확률이 줄어드는 대신, 상대적으로 이길 확률은 조금 올라가겠지만, 질 확률은 그에 비해 더 많이 올라간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통계에 기반한 건 아니고, 그냥 설명의 편의를 위해 가상의 예를 하나 들어보자. 약팀이 강팀과 맞불을 놓을 경우 이길 확률 : 비길 확률 : 질 확률이 2:2:6 정도라고 해보자. 이 경우 이기거나 비기는 경우에 만족할 수 있다고 하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을 확률은 (이길 확률 20 + 비길 확률 20 =) 40% 정도. 자, 그런데 선수비, 후공격을 함으로써 이길 확률 : 비길 확률 : 질 확률을 1:5:4 정도로 재배분할 수 있다면? 그러면 결과에 만족할 확률을 (10+50=)60%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전략이 성공을 하면 좋은데, 이런 전략으로 맞서다가 실점을 할 경우 그 이후에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게 좋을까? 보통은 약팀이 실점을 하고 나면 보통 전술을 바꾼다. 예를 들어 어떤 시점, 예를 들어 경기 시작 30분 후에 한골을 먹고 1:0이 됐다고 해보자.

결국 문제는 1:0으로 뒤진 상황에서 남은 60분간의 경기 운영을 어떻게 할 거냐인데, 1:0의 점수가 된 처음 30분의 경기를 제외하고, 남은 60분간을 새로운 경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계속 선수비 후공격 전술을 유지할 경우, 남은 60분간의 경기에서 확률 분배는 1:5:4로 유지가 된다. 그런데 남은 60분의 경기 동안의 무승부는 이미 1실점을 한 상태에서 전체 90분의 경기 결과를 종합하면 결국 1:0 패로 기록되기 때문에, 남은 60분간의 경기에서 승리를 해야만 전체 90분의 경기에서 무승부 이상을 거둘 수 있다. 즉, 선제골을 내줄 경우 전략에 수정을 가하지 않는다면 무승부 이상을 할 확률은 10%, 패배할 확률은 90%가 된다.

반면에 상대팀과 맞불 전략으로 수정함으로써 남은 경기에서 2:2:6의 확률 배분을 갖고 경기에 임한다면 90분 경기에서 무승부 이상을 할 확률은 20%, 패배할 확률은 80%로 바꿀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약팀의 전략 수정은, 설령 그게 50보 100보일지라도 그나마 성공적인 경기 결과를 얻을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돌파구일 수도 있다.

따라서 기대하는 결과가 무승부 이상이라면 전략을 바꾸는 게 유효한 선택이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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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 표현명 KT사장 "아이폰 보상판매 대신할 방안 고민"
기사 : '아이폰4 때문에…' 보험사 울상

Kmug의 댓글에서 봤는데 자동차 신모델 나왔다고 보상판매해주지 않잖아. 마찬가지로 전화기를 비롯한 각종 전자제품에 대해서도 보상판매를 해줄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명 사장이 고민을 하고 있는 데에는 물론 소비자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하는 마음일 수도 잇겠지만 두번째 기사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태에 대한 사전 대비의 의미도 있을 거다. 물론 보험 사기가 일어나더라도 비용 부담은 KT가 아니라 보험사가 하는 거지만,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것. 결국 이런 사태가 터지면 차후에 보험료 인상이 뒤따를 확률이 높은데, 소비자가 그 보험료를 납부하는 대상은 보험사가 아니라 KT이기 때문에 소비자의 눈엔 KT가 악역이 될 테니까.

아무튼 새로운 기종이 나왔다고 보상 판매를 안하냐는 불만을 토하는 풍경은 어딘가 좀 이상하다. 그리고 보험 계약 조건을 의도적으로 악용해서 새로운 전화기를 받아내는 것 또한 조금 이상하다. 우리는 돈의 이동 방향에 유난히 민감하기 때문에, 생산자나 기업이 소비자를 착취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빈번하지만, 그 반대의 소비자의 생산자나 기업에 대한 착취(라는 표현은 좀 이상하지만)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다.

사실 이런 현상에 대해 내가 할 말은... 음, Tyler Cowen의 말로 대신 : Stop Whining

요약하면 소비자 잉여를 즐기는데 집중하란 말이다! 제발 쫌!

KT든 SKT든 국내 통신업계에 불만이 많지만, 제품 출시 반년남짓만의 보상판매와 곤련해서는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입장. 소비자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소비자들 버릇나빠지게 부추기는 거--영어로는 spoiling한다고 하는데 우리말로 적당한 표현이 없나?--랑은 다르다고 보는 지라... 게다가 지나치게 소비를 부추기는 정책이기도 하고...

@ 물론 소비자 잉여란 건 주관적 가치 판단의 개념이라 주변 환경이 변하면 그 정도가 변하게 마련. 그렇지만 물건을 사던 시점에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새로운 제품이 언젠가는 출시될 거라는 사실--정도는 계산에 있던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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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football이란 대단히 직관적이고도 멀쩡한 이름을 놔두고, 축구를 soccer라고 부르는 미국인들은 대체 뭔가 싶었는데, 축구가 중국어로 足球--우리식으로 읽으면 족구지만 중국식으로 읽으면 대충 쥐키유(zúqiú) 쯤 될까?--라는 사실을 알고는, 혹시 이게 미국으로 넘어가서 변형된 게 아닐까란 생각을 문득 했다. 물론 증거 따위는 없다. 이건 뭐 추측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100% 상상이라고 보면 되겠다. ㅡㅠㅡ

@ 쥐키유쥐키유쥐키유쥐큐쥐큐쥐켜쥐켜쥐켜쥐커주커주커주커쑤커쑤커쑤커쑤커 싸커! (뭐지? 글로 써놓고 보니 보리보리보리보리하다가 갑자기 쌀이 튀어나오는 이 느낌은? -_-a)
@@ The name of the game is football, you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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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0:1 패배와 동시에 월드컵 조별 예선 1라운드가 끝났다. 지금까지 뭔 일이 있었는지 간단 요약.

1) 파리 날리는 월드컵

남아공 사람들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부부젤라 소리, 영락없는 똥파리 소리다. ㅠ.ㅜ 경기장에서 부부젤라 불어대는 건 재미있는지 모르겠는데, 티비로 보고 있으면 중계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안 들릴 지경. 뭐, 어차피 스포츠 해설치고 도움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게다가 일본어로 하는 해설 알아듣지도 못하니 안 들린들 상관은 없지만, 그렇다고 파리 날리는 소리를 듣고 있어야겠뉭? orz 님들아, 자제효. 그렇다고 위원회가 나서서 부부젤라 전면금지라며 경기장 입장하는 사람들 수색해서 부부젤라 압수하는 뻘짓은 사양.


2) 축구가 지루하다고? 풋, 정말 지루한 축구를 아직 못 보셨구만.

16경기 25골, 경기당 1.56골, 이거 뭐 이래? orz
참고로 지금까지 경기당 평균 골수가 역대 최소였던 대회는 1990년 미국 월드컵으로 경기당 2.21골.
정녕 독일만이 새로운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의 수혜자인가? (독일은 호주에게 4:0으로 승리.)


3) 우리가 아프리카에 있는 걸로 보이니?

축구는 홈어드밴티지가 꽤나 크게 작용하는 편이라 지금까지 월드컵 개최국은 물론 개최대륙들이 그간 많은 수혜를 봐왔는데, 이번엔 뭔가 이상하다.

남아공 1 : 1 멕시코 (무)
아르헨티나 1 : 0 나이지리아 (패)
알제리 0 : 1 슬로베니아 (패)
세르비아 0 : 1 가나 (승)
일본 1 : 0 카메룬 (패)
코트디부아르 0 : 0 포르투갈 (무)

종합 전적 : 1승 2무 3패


4) Chronic Overachiever vs Chronic Underachiever

대회전의 팀전력에 대한 평가 따위와 관계없이 월드컵만 되면 펄펄 나는 독일은 이번에도 4:0으로 호주를 손쉽게 제압하며 chronic overahiever의 위용을 과시.

피파랭킹은 브라질이 1위 탈환을 했음에도 (얘넨 정말 1위 지겹지도 않나?) 많은 이들이 이번 대회 가장 강력한 우승 호보로 유로 2008 우승국인 무적함대 스페인을 뽑았지만, 월드컵만 나왔다하면 만성 부진에 시달리는 스페인은 이번에도 그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스위스에 0:1로 패배.

역시 되는 놈은 되고, 안 되는 놈은 안 되는 것인가, ㅋ. 뭐, 월드컵 만성부진으로 말하자면 잉글랜드도 만만찮지, 사실.

Oopsie, Daisy


음, 이게 단가? 뭔가 매우 싱거운 느낌이군.

아, 그래 이제 2라운드가 시작하는 마당에 이 얘길 안 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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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월드컵
관련글 : The Silent Treatment: Saying “No” by Saying Nothing.

이곳에서 하고 있는 일이 대충 정리가 돼 가는 단계라 이곳 연구실 책임자 및 나랑 같이 일하는 동료가, 근 8달간 도쿄에만 머물렀는데, 뒷정리는 자기들한테 맡겨 놓고 일본 여행이라도 하라길래, 주말에 교토나 다녀올까 한다. 혹시 여기 있는 사람들은 미처 생각치 못했는데, 한국서 교수님이 시킬 일이 있지는 않을까 해서 어제 교수님한테 주말에 바람 좀 쐬고 와도 되겠냐고 이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없네.

오늘 다른 일로 이메일을 하나 또 보낸 게 있는데 그거엔 제깍 답이 왔는데... 흠, 이것은 Saying "no" by saying nothing인가? ㅡㅠㅡ

그렇지만 나는 확인/독촉을 위해 두번째 이메일을 보내는 대신 그냥 Saying "yes" by saying nothing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교토 가서 뭐할까? ㅋㅋ

@ 주말인데 뭐 그런 걸 물어보냐고? 글쎄, 주중 주말의 개념이 없어진지 오래기도 하거니와, 귀국할 즈음이 돼가니--내 생각엔 그럴 일은 없어 보이지만, 교수님이 보기엔--한시간이라도 더 짜내서 일을 마쳐야 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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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을 쓰다보니 길어져서, 결국 새글로... ㅡㅠㅡ

관련글 :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대체 어떤 세상?

이하는 너불형의 두번째 댓글 중 일부
− 그럼 이제 "물질만능주의"를 보세. 간단히 말해서 "돈이면 다 돼"라는 얘기지? 이런 사고방식이 나타나는 기본적인 이유는, 현 시스템에서 축적된 자본의 힘이 다른 모든 것의 힘을 압도하기 때문이라네. 대표적인 예로는 작년 말의 소위 "원포인트 사면" 사태를 들 수 있겠군; 이런 시스템을 다른 말로는 "금권에 의한 약육강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 아닌가? :)

= 인정.

− 나도 물론 체제가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는 식의 환타지는 안 가지고 있삼. 그렇지만 뭔가 인간다운 가치라는 건 종종 본성에 반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본성/본능적 충동을 제어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결국 온갖 제도와 체제의 목적이잖아?

= 인정.

− 그러니 누군가 신자유주의나 물질만능주의 따위를 비판할 때, 이건 당연히 인류보완계획 따위 얘기가 아니지; 또한 아예 자본주의를 때려치우자는 얘기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겠고. 그냥 좀 이게 너무 "야만적"이라능? :) 우리가 물리적 힘을 자제하고 약육강식 상황을 벗어난 것처럼, 같은 식으로 더 나은 제도들을 고안/수정하도록 노력하자고 한다면 -- 글쎄 뭐 이게 그렇게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ㅋ

= 이부분도 인정.
여기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 석연치 않은 건... 문제를 좀 지나치게 단순화한 감도 없잖아 있지만, 어찌됐건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물리적 힘에서 중간에 종교, 혈통 등등 다양한 단계를 거쳐서 일단 현재는 경제적 힘이 짱 먹는 시대로 오긴 왔는데, 본질은 그대로고 결국엔 이놈에서 저놈으로 권력을 셔플링하고 있는 것뿐인가란 의문 때문인가? 뭐, 역사란 원래 그러면서 (아주 더디게) 발전하는 거겠지만서도...

암튼 간에 지금 우리가 어디 와 있는가와는 별개로, 또 현실 세계에서 어디까지 실천 가능한지는 지켜 볼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권력을 이놈한테 뺏어서 저놈한테 안겨주는 것보다는 권력을 분산시키는 게 이상적인 방향일 텐데... 민주주의의 현실이야 어쨌든, 민주주의의 정신이란 건 그래서 꽤나 고상한 맛이 있는 거고.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자본 권력을 통째로 들어다가 누구에게 이양하느냐가 아니라, 자본 권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쪼개느냐인데, 이에 대한 일반적인 해법은 정부가 (각종 규제를 통해) 자본을 견제한다 정도? 그런데 실제로 "정부가 그래야 한다"는 것과 "정부가 실제로 그러하다"는 거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어서 골치.

보통 독일이나 북유럽형 모델--프랑스도 이미지는 좋은데, 실제로는 정부가 자본 권력을 견제한답시고 막대한 부채를 떠안는 바람에 결국엔 그 부담을 세금이나 인플레이션 형태로 서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어서 장기적으로 봤을 땐 불안한 상태--이 비교적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데, 그런 모델을 지향한답시고, 지금 시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정부에 자본을 규제할 권한을 줘봐야 (결국은 자본을 뒤에 둔) 각종 이익집단의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농후. 그리고 최종 승자가 정부를 자기 주머니에 쏙. (뭐,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S사 주머니에 쏙 들어간 것 같긴 하다만...)

뭐, 이런 예야 찾으러 들면 얼마든지 있지만, 오늘 마침 The Economist의 쟁점 중 "중국 위안화 절상해야 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의견이 하나 떴길래 이 녀석으로 선택. 일단 링크:
Debate: Should China allow the yuan to rise?
요점만 추리자면, 중국이 수출 중심 성장을 위해 위안화를 너무 싸게 너무 오래 붙잡아둔 바람에 중국내 인플레이션 징후가 슬슬 나타나는 와중에도 왜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뭉게고 있느냐? 이익집단(수출 업체들)의 로비(?) 때문이라능... 너불형의 첫 댓글에도 언급됐듯, 공산주의란 이름을 달고 나왔던 놈들은 다 병맛 날리고 망한 것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이유.

이런 류의 문제는, 사실 정의감에 불타는 개인이 고생고생 끝에 정권을 잡아 봐야 그 기간 동안은 잠깐 갖가지 제도 개혁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런 건 일회성 이벤트 밖에 안 되고, 언어로 표현되는 외형적 체제와는 별개로 정부(라고 읽지만 실제로는 행정에 관여하는 사람들)가 이익집단이 제공하는 금전적 이익을 다 뿌리치고도 소위 "옳은 일"을 하게 만드는 인센티브를 누가 어떻게 제공할 거냐인데, 민주주의 체제에서야 결국 정부가 이상한 짓하면 "선거로 심판"을 해줘야 한다는 사실로 귀결.

그런데 한국 사회는 정부의 이상한 짓에 당하고도 선거로 심판을 안 하는 건지, 내가 생각하는 정부의 이상한 짓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지, 어찌됐든 맨날 똑같은 녀석들만 주구장창 예뻐서 다시 한번, 미워도 다시 한번. 결국 사람들이 바뀌면 시스템도 바뀌는데, 또 한편으론 시스템이 바뀌면 사람들도 바뀌는 법인지라, 이 기이한 악순환의 고리 중 어디를 잘라야 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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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자본주의나 물질만능주의가 인간성을 파괴한다는 이야기의 취지는 십분 이해하겠는데, 이걸 받아들이더라도 항상 그 다음이 문제다. 왜냐하면 사람이 금전적 손익을 초월한 사랑, 우정, 박애에 감동하기는 쉽지만, 그런 거에 감동하는 것과 실천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

계산적 인간관계의 원흉이 돈이나 물질이라고 해서, 이것들 없이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뭐, 아주 극단적인 경우라면 물물교환을 하면 되니 돈이나 자본은 없애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돈이 없어진다고 비용의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예를 들어 내가 텃밭에다 토마토 농사를 지어서 이웃들에게 나눠줄 경우, 이웃들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토마토를 생산하는 비용, 소위 시간과 노력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

보통은 돈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이웃들이 고마워하고 맛있게 먹어주기를 기대하고, 또 보통은 (설령 맛은 좀 없더라도) 이를 고마워 한다. 이는 내가 시간과 노력이라는 형태로 들인 비용을 상대방이 인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으로 비교적 자연스러운 행위로, 이웃들이 그런 나의 비용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사람에 따라선 섭섭해하기도하고, 불쾌해하기도 하고, 다양한 반응이 나타난다.

본질에는, 내가 들인 비용을 상대방이 인정해주느냐의 문제가 놓여 있는 거고, 금전 거래는 (다소 친밀감은 떨어지지만) 이런 비용을 인정해주는 한가지 형태에 불과하다. 돈이냐 아니냐가 아니고, 상대방의 비용을 흔쾌히 인정하고, 내가 상대방을 위해 비용 부담을 할 준비가 돼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본주의가 문제야"라며 뒤엎어서 사회주의든 제3의 어떤 체제든 만들어내봐야, 그 시스템 속에서 금전적 손익을 초월한 인간관계란 허울에 불과, 결국에는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내가 기꺼이 낼께"보다는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너가 기꺼이 지불할 거지?"의 형태로 남의 골수를 뽑아먹는 기생충만 만들어낼 뿐.

사실 이런 풍경은 이미 우리가 생각하거나 원하는 것보다도 훨씬 자주 벌어지고 있는데, 재산 분배를 놓고 형제들이 싸우는 것도 "야만스럽게말야 형제들끼리 재산 갖고 싸우면 안 되지. 그러니까 (내가 보기엔 이렇게 재산을 나누는 게 정당한데, 설령 네가 보기엔 정당하지 않더라도) 치사하게 꼬치꼬치 따지지 말고 그냥 이것만 먹어"라는 태도를 취하기 때문. 형제들이 한 사람도 양보 없이 전부 다 이런 포지셔닝을 취해버리면 싸움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잖아?

결국 문제는 사회 전반에 걸친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너가 기꺼이 지불할 거지?"라는 인식을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내가 기꺼이 낼께"로 전환시킬 수 있느냐인데 이게 정말 자본주의 vs 사회주의의 문제일까?

@ 물론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계산적 인간관계의 틀 안에 있기 때문에, 금전적 손익을 초월한 인간관계조차도 "우리가 째째하게 돈 몇푼 따지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돈(비용)은 너가 기꺼이 지불할 거지?"의 형태를 띌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확신은 잘 안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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