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 사립고 300개, 영어몰입교육에 이어 이젠 0교시와 우열반이란다. 이번엔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란다. 근데 그럼 학생들의 자율성은?

방종이라 불리는 무한한 자유는 언제나 개체--개인일 수도 있고, 집단 혹은 사회적 시스템일 수도 있다--와 개체간 충돌을 유발한다. 그래서 누구의 자유라도 어느 정도의 구속을 가할 수밖에 없다는 건 (물론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세계에선 돈 있으면 자유의 한계도 없는 것 같다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을 작동시키는 기본 원칙이다. '자율성을 보장한다'는 주장만 분리해서 놓고 보면 언제나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그 미묘한 균형을 흔들어 누군가에게 조금 더 큰 자유를 누리게 할 때엔, 그로 인해 조금 더 억압받는 개체가 생겨나는 법. 그래서 현실 세계에서 '자유의 보장'은 '자유의 억압'과 궤를 같이 하고, 이 '자유의 보장'이라는 숭고해 보이는 가치는 실제로는 전혀 숭고할 게 없는 정치적 선택이 되는 거다.

내 정치적 선택을 묻는다면 물론, 학교에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학생들이 누려야할 기본적인 자유--공부 외의 삶을 누리며 사는 여유--를 담보로 하는 거라면 옳지 않다는 거다.

이쯤에서 우리 MB님이라면 '그래도 사교육비를 낮추기 위한 공교육 강화의 일환으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다'라고 하시겠지. 그런데 문제는 (사실 공교육 강화에 대한 정의가 빗나가 있기 때문에 저런다고 공교육 강화가 되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저런 제도들을 통해 공교육의 질이 향상된다고 하더라도, 사교육 부담이 줄진 않는다는 거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교육의 본질은 '상대성'에 있다. 학교가 개판이라 학교에서 배운 게 없다보니 뭐라도 배우기 위해,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학원을 가는 게 아니다. 학교가 개판이기로 말하면 미국의 국공립 학교들이 훨씬 더하다. 문제는 공교육에 1등이 있고 꼴등이 있다는 거다. 공교육이 개판이면 그 개판인 속에서 1등을 해야하고, 공교육이 훌륭하면 또 그 속에서 1등을 해야 한다.

한국의 사교육 시스템은 철저하게 이런 공교육의 상대성에 기생해서 성장한다. 학교에서 잘 가르치냐 못 가르치냐는 관심 밖이다. 한국의 사교육은 공교육 시스템 내부에서 매겨지는 서열의 꼭대기에 서기 위한 시스템이지, 제도권 교육이 '이런 건 필요없으니 안 배워도 됩니다'라고 한 것을 개인적으로는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보충해주는 시스템이 아니다. 서울대를 가거나 '사'자 붙은 직업을 가져야 인간 대접을 받는 줄세우기식 풍토에 대한 고민과 개혁없이, '교육의 질=학습량 내지는 학습효율' 정도의 시대착오적 인식을 갖고 공교육의 질을 올린다면, 사교육의 질이 그에 따라 올라갈지언정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는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아는 것(물론 여기서 더 안다는 것은 진리나 지식의 확장의 개념이 아니라, 성적의 개념일 뿐)이 있어야만 하는 현실이 존재하는 것이 사교육의 본질이란 이야기다. 사교육을 없애는 방법은 2가지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경쟁을 완화/제거하거나, 학생들을 학교에서 일주일에 7일, 하루에 24시간 뺑이치게 만들거나.

그러지 않으면서 사교육비를 절감할 대책이 있다고 떠드는 당신은 아주 멍청하거나 혹은 아주 뻔뻔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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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벨로 2008/04/18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아. 공교육 강화한다고 사교육이 줄어드는 게 아닌데 도대체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애들만 학교 안팎에서 더 죽어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