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4일, 폴란드를 상대로 온국민적 염원인 월드컵에서의 1승을 거뒀다. 되지도 않는 걸, 홈팀이란 이점을 앞세워 억지로 억지로 올린 1승이 아니라, 시종일관 상대를 압도하며 비교적 쉬운 듯이(실제로 쉬웠을 리는 없다) 거둔 1승이라 그 다음 미국전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무척 커졌다. 실제 전력을 떠나서 축구의 본산지이자, 세계 축구의 주류인 유럽에서 나온 폴란드를 상대로 거둔 승리는, 축구 변방 미국을 상대하기에 앞서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승리에 대한 확신에 가까운 기대를 갖고 임한 6월 10일의 미국과의 일전은 그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1:1 무승부로 끝났다. 게다가 미국과의 일전에서 3:2로 무너졌던 포르투갈이 같은날 벌어진 폴란드전에 4골을 쏟아부으며 부활, 오는 14일 포르투갈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오늘의 무승부는 큰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의 경기는 비록 상당부분 우리가 밀어붙였다고는 하지만, 눈에띄게 문제가 된 골결정력 부족이 아니더라도, 지난 폴란드전에 경기력 저하가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지난 폴란드전과 이번 경기를 비교해서 평가해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축구라는 종목은 그 어떤 구기보다 많은 사람이, 그 어떤 구기보다 넓은 운동장을 사용하는 스포츠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팀당 11명, 양팀 합쳐 22명의 선수 전원이, 뼉다구 하나 놓고 빡터지게 싸우는 뒷골목 똥강아지 새끼들마냥 공 하나 쫓아서 90분내내 뜀박질할 수 는 없는 노릇인지라, 공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활용하는가라는 문제가 대두되고, 이 때문에 개인으로서는 체력의, 팀 전체로서는 전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스포츠이다.
축구에서 전술이란 것은 궁극적으로는 골을 넣어 게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방편이지만, 보다 현실적으로는 수비를 튼튼하게 구축하여 상대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미드필드를 장악하여 볼점유율을 높임으로서 확률 높은 공격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공격의 시작은 수비'라는 말과 '축구는 허리 싸움'이라는 말들을 하는 것이다.
미국전과 폴란드전을 비교하면 이 두가지, 수비와 미들 전술의 운용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우선 수비를 보면, 미국전은 폴란드전과는 달리 공격과 수비 사이의 간격을 촘촘히 유지시키지 않았다. 못한 것이냐, 안 한 것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진실은 오직 히딩크와 선수들만이 알겠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수비라인을 전진시킬 의도 자체가 없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공수간격이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미들에서 강한 압박을 가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까닭으로 인해 미국전에서는 폴란드전에서 보여준, 상대진영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하면서 공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을 죄여 패스미스를 유도, 이를 우리 공으로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폴란드전에서 톡톡히 효과를 본 이런 강력한 프레싱을 포기한 이유는, 다마커스 비즐리와 랜든 도너번이라는, 20세의 발빠른 좌우 윙플레이어들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어느 스포츠에서든 빠른 발은 강력한 무기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넓은 운동장을 사용하는 축구의 특성상 20-30m를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주력은 굉장히 위협적이다. 미들에서의 압박축구는 허리싸움이 전면전으로 전개될 때에는 매우 위력적이지만, 국지적으로 반드시 우수한 전술이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미들에서의 압박은 상대가 공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을 옥죄이는 것이 전술적 키포인트인데, 개인기나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는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두세명이 애워싸며 상대방의 행동반경을 좁힌다고 반드시 차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움직임은 오히려 한두명의 선수가 철저하게 밀착해서 계속 몸싸움을 통한 볼경합을 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특별히 위협적인 상대방과 1:1로 매치업을 해야하는 관계로, 미들에서의 전면전에서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90분 내내 한 선수만 죽어라고 쫓아다니기만 하던 예전 우리나라 수비전술의 핵심이던 전담마크맨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좌우의 이을용과 송종국에게 각각 도너번과 비즐리의 스피드를 1차에서 저지하는 임무가 주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 경기 흐름과 별개로 이 역할만 놓고 보면, 오늘 송종국의 움직임이 특히 돋보였는데, 자기보다 빠른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집요한 몸싸움과 적절한 반칙,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잔반칙 등을 섞어가며 영리한 플레이로 다마커스 비즐리를 '다막혔스' 비즐리로 만들면서 짜증을 내게끔 유도, 히딩크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반면에 순수하게 이 1:1 매치업만을 놓고 보면 이을용은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는데, 미국이 비즐리에 의한 좌측 공격보다 도너번에 의한 우측 공격에서보다 날카로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또, 우리팀 실점 장면을 보면, 오프사이드 트랩시 호흡이 안 맞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실제 그 상황에서 이을용이 있던 자리가 이을용 있을 자리가 아니었지 않았나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몇가지만 짚어보자면, 상대가 지공을 펼치는 것이 아니고, 역습으로 들어오는 시점에서 이을용이 중앙을 수비하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온 것 자체가 의외고, 이때 도너번이 우측에 완전히 프리하게 놓여 있었는데, 비록 그가 공간을 치고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를 무방비로 놓아둔 것은 전술적인 관점에서는 실책이며, 상대의 역습에 대해 오프사이드 트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위치 선정 및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이을용의 실수다. 다른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수비수들과 오프사이드 트랩에 대한 미스켜뮤니케이션이 생긴 것은 반쯤은 당연한 결과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느냐는 이을용의 의욕과잉의 결과라고 보여진다. 히딩크 축구의 강점은 선수 전원이 온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니는 네덜란드식 토탈사커를 구사한다는 점인데, 어제의 스타일은 여전히 많은 운동량을 요구한 경기이기는 하지만, 폴란드전에서 보여줬던, 전면전을 통한 미들 장악과는 약간 다른 경기 양상을 보였음에도, 이을용은 도너번의 방어라는 국지전과 미들에서의 전면전을 모두 수행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반면에 송종국은 공격에서는 지나친 오버래핑을 삼가하고, 우측에서 전방의 설기현, 이천수, 황선홍 등에게 공을 침착하게 연결시키고, 수비에서는 비즐리를 철저하게 방어하는 일인 일역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보면, 둘의 움직임이 어떻게 달랐고, 왜 달랐는지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아무튼 편의상 수비와 미들을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술적으로 이들이 완벽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고, 모든게 팀전술로 통합이 되는데, 발빠른 공격수를 둘이나 보유한데다가, 클라우디오 레이나라는 베테랑 플레이메이커의 존재를 감안하면, 상대의 패스 한방에 의한 스피디한 역습에 대비를 해야만 했고, 수비라인을 평소보다 조금 뒤쪽으로 밀어놓은 것은 이에 대한 대비였다. 좌우의 이을용, 송종국까지 이들의 공격 차단의 1차 저지선으로 잡은 것을 감안하면 20살 풋내기들을 상당히 존중한 전술이었다. 게다가 자칫하면 수세에 몰릴 수도 있는 전술임에도, 우리가 경기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던 건, 미드필더들의 놀라운 운동량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의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남일, 유상철의 공격가담과 공격형 미드필더(또는 처진 공격수)인 박지성의 꾸준한 수비 가담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상으로 인한 전반 38분의 박지성의 교체는 히딩크로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오늘 이천수의 움직임은 수비 가담면에서 박지성의 빈 자리가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20살 풋내기들한테 시작부터 너무 겁을 먹은 게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오늘 경기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이 둘을 막는데 상당한 에너지를 집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최강의 미들진을 갖춘 팀중 하나라는 포르투갈이 이 두 젊은 선수의 스피드에 이리저리 휘둘린 것을 생각해보면, 정석대로의 허리싸움이 늘 최상의 선택은 아니다.
미국의 아레나 감독은 좌우에 빠른 선수들을 기용하여, 우리 미들을 분산, 압박의 강도를 약하게 한 후, 레이나를 중심으로 볼을 키핑하면서 수비의 빈틈을 노려 역습을 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보여지는데, 첫 득점 장면을 포함한 몇차례의 역습을 제외하면 그다지 실효를 못 봤다. 송종국의 비즐리에 대한 수비가 아레나 감독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끈적끈적했던 것이 한가지 이유일 거고, 또 다른 이유라면 레이나와 함께 미국의 중앙 미들을 맡은 오브라이언의 소극적인 경기운영을 꼽을 수 있다. 지나치게 확률 높은 공격만을 시도하려했는지, 공을 전진시켜도 될 찬스에서도 다시 뒤로 공을 돌리면서 템포를 늦추는 것은, 정공보다는 역습에 무게를 둔 아레나 감독의 의도를 고려하면 자충수였다. 확률이 낮아보인다고 역습을 아끼고, 자기 진영으로 기어들어가면 상대방으로서는 별 위협을 못 느끼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게 되고, 이는 경기의 주도권을 상대방에게 그냥 넘겨주는 것과 같다. 게다가, 한국보다 하루 휴식을 덜 취한 까닭인지, 의외로 체력이 빨리 고갈되면서 후반전에는 엄청나게 수세로 몰리게 된 점을 고려하면, 조금 무모해 보여도 힘이 있었을 때, 몇차례 공격을 시도하는 것이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었다.
전술의 실패와 성공, 경기의 주도권을 누가 쥐었느냐 여부를 떠나서, 우리가 동점골을 성공시키기까지는 어느 정도는 아레나 감독의 뜻대로 풀린 경기이다. 물론 프리델 키퍼의 눈부신 선방 몇차례가 있었긴 했지만, 맥브라이드의 파트너로 매티스를 선택하고, 도너번을 우측의 윙으로 돌린 점, 켈러와 프리델 사이에서 프리델을 선택한 점 등 선수기용이 여러모로 적중하며, 먼저 실점후 만회골을 넣기위해 집요하게 미국 골문을 두드린 '홈팀' 한국을 상대로 70여분간 리드를 지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인 경기였다. 패널티킥 성공률이 100%인 선수는 없느니만큼, 어쩌다보니 오늘 패널티킥에서 실패하게 된 것뿐이라는 점에서, 이을용을 탓할 이유도, 탓할 생각도 없지만, 전반전에 찾아온 확실한 추격 기회를 놓친 것은 오늘 경기를 필요 이상으로 힘들게 만드는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했다. 한국은 만회골을 터뜨리는데 에너지를 너무 소비해서 만회골 득점과 함께,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고, 이후에는 필요없는 반칙이 자꾸 나오면서 미국의 시간끌기를 도와주고 말았다. 아마 만회골이 전반전에 터졌더라면 후반전에 대량 득점도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미없는 가정을 해본다.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는 의미에서 무승부로 끝나 아쉬움이 진하게 남지만, 상대방에 대해 서로 철저하게 준비해서 처방을 내린 양팀 감독의 전술이 서로 맞물린 좋은 승부였다. 다음 경기는 포르투갈도 진검승부로 미들 장악을 통해 경기를 지배하는 스타일의 팀인 만큼, 치열한 허리싸움을 통한 멋진 경기를 기대해본다.
계속 읽기
오늘의 경기는 비록 상당부분 우리가 밀어붙였다고는 하지만, 눈에띄게 문제가 된 골결정력 부족이 아니더라도, 지난 폴란드전에 경기력 저하가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지난 폴란드전과 이번 경기를 비교해서 평가해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
축구라는 종목은 그 어떤 구기보다 많은 사람이, 그 어떤 구기보다 넓은 운동장을 사용하는 스포츠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팀당 11명, 양팀 합쳐 22명의 선수 전원이, 뼉다구 하나 놓고 빡터지게 싸우는 뒷골목 똥강아지 새끼들마냥 공 하나 쫓아서 90분내내 뜀박질할 수 는 없는 노릇인지라, 공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활용하는가라는 문제가 대두되고, 이 때문에 개인으로서는 체력의, 팀 전체로서는 전술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스포츠이다.
축구에서 전술이란 것은 궁극적으로는 골을 넣어 게임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방편이지만, 보다 현실적으로는 수비를 튼튼하게 구축하여 상대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미드필드를 장악하여 볼점유율을 높임으로서 확률 높은 공격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는 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공격의 시작은 수비'라는 말과 '축구는 허리 싸움'이라는 말들을 하는 것이다.
미국전과 폴란드전을 비교하면 이 두가지, 수비와 미들 전술의 운용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우선 수비를 보면, 미국전은 폴란드전과는 달리 공격과 수비 사이의 간격을 촘촘히 유지시키지 않았다. 못한 것이냐, 안 한 것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고, 진실은 오직 히딩크와 선수들만이 알겠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수비라인을 전진시킬 의도 자체가 없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공수간격이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미들에서 강한 압박을 가하기 어려워진다. 이런 까닭으로 인해 미국전에서는 폴란드전에서 보여준, 상대진영에서부터 상대를 압박하면서 공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을 죄여 패스미스를 유도, 이를 우리 공으로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폴란드전에서 톡톡히 효과를 본 이런 강력한 프레싱을 포기한 이유는, 다마커스 비즐리와 랜든 도너번이라는, 20세의 발빠른 좌우 윙플레이어들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어느 스포츠에서든 빠른 발은 강력한 무기이지만 앞서 말했듯이 넓은 운동장을 사용하는 축구의 특성상 20-30m를 순간적으로 치고 나가는 주력은 굉장히 위협적이다. 미들에서의 압박축구는 허리싸움이 전면전으로 전개될 때에는 매우 위력적이지만, 국지적으로 반드시 우수한 전술이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미들에서의 압박은 상대가 공을 돌릴 수 있는 공간을 옥죄이는 것이 전술적 키포인트인데, 개인기나 스피드를 이용한 돌파는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쉽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두세명이 애워싸며 상대방의 행동반경을 좁힌다고 반드시 차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움직임은 오히려 한두명의 선수가 철저하게 밀착해서 계속 몸싸움을 통한 볼경합을 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는 특별히 위협적인 상대방과 1:1로 매치업을 해야하는 관계로, 미들에서의 전면전에서는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90분 내내 한 선수만 죽어라고 쫓아다니기만 하던 예전 우리나라 수비전술의 핵심이던 전담마크맨의 개념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좌우의 이을용과 송종국에게 각각 도너번과 비즐리의 스피드를 1차에서 저지하는 임무가 주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 경기 흐름과 별개로 이 역할만 놓고 보면, 오늘 송종국의 움직임이 특히 돋보였는데, 자기보다 빠른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집요한 몸싸움과 적절한 반칙,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잔반칙 등을 섞어가며 영리한 플레이로 다마커스 비즐리를 '다막혔스' 비즐리로 만들면서 짜증을 내게끔 유도, 히딩크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반면에 순수하게 이 1:1 매치업만을 놓고 보면 이을용은 다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는데, 미국이 비즐리에 의한 좌측 공격보다 도너번에 의한 우측 공격에서보다 날카로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또, 우리팀 실점 장면을 보면, 오프사이드 트랩시 호흡이 안 맞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실제 그 상황에서 이을용이 있던 자리가 이을용 있을 자리가 아니었지 않았나 조심스레 예측해본다. 몇가지만 짚어보자면, 상대가 지공을 펼치는 것이 아니고, 역습으로 들어오는 시점에서 이을용이 중앙을 수비하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온 것 자체가 의외고, 이때 도너번이 우측에 완전히 프리하게 놓여 있었는데, 비록 그가 공간을 치고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를 무방비로 놓아둔 것은 전술적인 관점에서는 실책이며, 상대의 역습에 대해 오프사이드 트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한 위치 선정 및 움직임을 보인 것도 이을용의 실수다. 다른 한편으로는, 처음부터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수비수들과 오프사이드 트랩에 대한 미스켜뮤니케이션이 생긴 것은 반쯤은 당연한 결과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느냐는 이을용의 의욕과잉의 결과라고 보여진다. 히딩크 축구의 강점은 선수 전원이 온 그라운드를 휘젓고 다니는 네덜란드식 토탈사커를 구사한다는 점인데, 어제의 스타일은 여전히 많은 운동량을 요구한 경기이기는 하지만, 폴란드전에서 보여줬던, 전면전을 통한 미들 장악과는 약간 다른 경기 양상을 보였음에도, 이을용은 도너번의 방어라는 국지전과 미들에서의 전면전을 모두 수행하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반면에 송종국은 공격에서는 지나친 오버래핑을 삼가하고, 우측에서 전방의 설기현, 이천수, 황선홍 등에게 공을 침착하게 연결시키고, 수비에서는 비즐리를 철저하게 방어하는 일인 일역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보면, 둘의 움직임이 어떻게 달랐고, 왜 달랐는지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아무튼 편의상 수비와 미들을 구분해서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술적으로 이들이 완벽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고, 모든게 팀전술로 통합이 되는데, 발빠른 공격수를 둘이나 보유한데다가, 클라우디오 레이나라는 베테랑 플레이메이커의 존재를 감안하면, 상대의 패스 한방에 의한 스피디한 역습에 대비를 해야만 했고, 수비라인을 평소보다 조금 뒤쪽으로 밀어놓은 것은 이에 대한 대비였다. 좌우의 이을용, 송종국까지 이들의 공격 차단의 1차 저지선으로 잡은 것을 감안하면 20살 풋내기들을 상당히 존중한 전술이었다. 게다가 자칫하면 수세에 몰릴 수도 있는 전술임에도, 우리가 경기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던 건, 미드필더들의 놀라운 운동량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앙의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남일, 유상철의 공격가담과 공격형 미드필더(또는 처진 공격수)인 박지성의 꾸준한 수비 가담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상으로 인한 전반 38분의 박지성의 교체는 히딩크로서 굉장히 부담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실제로도 오늘 이천수의 움직임은 수비 가담면에서 박지성의 빈 자리가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20살 풋내기들한테 시작부터 너무 겁을 먹은 게 아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오늘 경기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이 둘을 막는데 상당한 에너지를 집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최강의 미들진을 갖춘 팀중 하나라는 포르투갈이 이 두 젊은 선수의 스피드에 이리저리 휘둘린 것을 생각해보면, 정석대로의 허리싸움이 늘 최상의 선택은 아니다.
미국의 아레나 감독은 좌우에 빠른 선수들을 기용하여, 우리 미들을 분산, 압박의 강도를 약하게 한 후, 레이나를 중심으로 볼을 키핑하면서 수비의 빈틈을 노려 역습을 하는 전략을 세웠다고 보여지는데, 첫 득점 장면을 포함한 몇차례의 역습을 제외하면 그다지 실효를 못 봤다. 송종국의 비즐리에 대한 수비가 아레나 감독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끈적끈적했던 것이 한가지 이유일 거고, 또 다른 이유라면 레이나와 함께 미국의 중앙 미들을 맡은 오브라이언의 소극적인 경기운영을 꼽을 수 있다. 지나치게 확률 높은 공격만을 시도하려했는지, 공을 전진시켜도 될 찬스에서도 다시 뒤로 공을 돌리면서 템포를 늦추는 것은, 정공보다는 역습에 무게를 둔 아레나 감독의 의도를 고려하면 자충수였다. 확률이 낮아보인다고 역습을 아끼고, 자기 진영으로 기어들어가면 상대방으로서는 별 위협을 못 느끼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게 되고, 이는 경기의 주도권을 상대방에게 그냥 넘겨주는 것과 같다. 게다가, 한국보다 하루 휴식을 덜 취한 까닭인지, 의외로 체력이 빨리 고갈되면서 후반전에는 엄청나게 수세로 몰리게 된 점을 고려하면, 조금 무모해 보여도 힘이 있었을 때, 몇차례 공격을 시도하는 것이 정상적인 경기 운영이었다.
전술의 실패와 성공, 경기의 주도권을 누가 쥐었느냐 여부를 떠나서, 우리가 동점골을 성공시키기까지는 어느 정도는 아레나 감독의 뜻대로 풀린 경기이다. 물론 프리델 키퍼의 눈부신 선방 몇차례가 있었긴 했지만, 맥브라이드의 파트너로 매티스를 선택하고, 도너번을 우측의 윙으로 돌린 점, 켈러와 프리델 사이에서 프리델을 선택한 점 등 선수기용이 여러모로 적중하며, 먼저 실점후 만회골을 넣기위해 집요하게 미국 골문을 두드린 '홈팀' 한국을 상대로 70여분간 리드를 지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인 경기였다. 패널티킥 성공률이 100%인 선수는 없느니만큼, 어쩌다보니 오늘 패널티킥에서 실패하게 된 것뿐이라는 점에서, 이을용을 탓할 이유도, 탓할 생각도 없지만, 전반전에 찾아온 확실한 추격 기회를 놓친 것은 오늘 경기를 필요 이상으로 힘들게 만드는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했다. 한국은 만회골을 터뜨리는데 에너지를 너무 소비해서 만회골 득점과 함께, 경기에 대한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고, 이후에는 필요없는 반칙이 자꾸 나오면서 미국의 시간끌기를 도와주고 말았다. 아마 만회골이 전반전에 터졌더라면 후반전에 대량 득점도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미없는 가정을 해본다.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는 의미에서 무승부로 끝나 아쉬움이 진하게 남지만, 상대방에 대해 서로 철저하게 준비해서 처방을 내린 양팀 감독의 전술이 서로 맞물린 좋은 승부였다. 다음 경기는 포르투갈도 진검승부로 미들 장악을 통해 경기를 지배하는 스타일의 팀인 만큼, 치열한 허리싸움을 통한 멋진 경기를 기대해본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