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 나 살 찐 거 같아.
남자 : 아냐, 지금이 딱 보기 좋아.
여자 : 그래? 정말? 좀 찐 거 같지 않아? 솔직하게 얘기해봐. 다이어트해야 되면 다이어트 하게.

이어질 대화에서 남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1)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돼? 조금은 빼도 될 거 같아.
2) 아니라니까, 정말 지금이 보기 좋아.

이 상황에서 1번을 고른 남자는 대부분 머저리 취급을 당한다. -_-,,


한 회사의 회식 자리, 술도 다들 조금 올랐겠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데...

부장 : 다들 나 때문에 고생 많지? 내가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성격이 좀 급하다보니 자네들 자꾸 닥달하게 되는구만.
직원들 : 아닙니다, 부장님. 별로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장 : 에이, 아니긴. 뭐, 오늘 말 나온 김에 그 동안 불만들 있었던 거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는 자릴 갖자고.
직원들 : 불만이라뇨, 부장님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부장 : 아냐, 아냐, 정말 내가 기분 안 나빠할 테니까, 솔직하게들 다 얘기해보라고. 그래야 나도 뭐가 문젠지 알고 고쳐야할 부분이 있으면 고치지.

다음 상황에서 직원들이 취해야 할 반응은?

1) 부장님은 다 좋은데요, 이게 문제에요. *^$%# %$@^&%&%.
2) 부장님이 저희한테 얼마나 잘해주시는데요. 그런 거 없습니다.

이걸 잘못하면 조금 극단적이긴 해도 이런 상황(클릭)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집들이를 하면서 친구들을 초대한다. 필요한 건 다 갖췄으니 맨손으로 오라고 한다. 이런 경우에 친구들의 적절한 반응은?

1) 맨손으로 오랬으니 정말 맨손으로 간다.
2) 아무리 맨손으로 오라고 했더라도, 예의상 맨손으로 가는 건 결례라 선물을 사 간다.

여기서 1번을 선택하면 그 집엔 두번 다시 초대를 못 받는다. -_-,,


친구가 급하게 돈이 필요하다며 목돈을 빌려 달라고 한다. 친구끼리는 돈 거래는 하는 게 아니라고 믿어서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며 정말 힘들면 이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한다. 이 경우 돈을 빌려간 친구의 적절한 반응응?

1) 안 갚아도 된다고 했으니 정말 안 갚는다.
2) 안 갚아도 된다고 했지만, 이돈은 내 돈이 아니라 친구의 돈이니 천천히라도 사정이 좋아질 때 갚는다.

이때 갚지 말랬다고 진짜 안 갚으면, 그걸로 절교하는 거다. -_-,,


이런 모든 케이스들이 다 진실과 시그널링의 줄타기이다. 앞에서 여자, 부장, 집주인, 돈 있는 친구들은 모두 자신에 대해 자신은 너그럽고, 자신이 결점(?)이 있는 사람이란 걸 받아들이고 있으며, 상대방의 솔직함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상대방이 그걸 알아주길 바라고 그런 시그널을 보낸다. 그리고 이런 시그널을 보내는 시점에는 대부분 자신의 이 시그널들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상대방이 2번 대신에 1번의 행동을 보이면,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다. 왜일까?

사람은 자기 진심이 뭔지 자기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진심을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의식할 수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감정이 자신의 진심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착각에서 기인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우리의 감정과 사고체계는 극히 한정돼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더라도 받아들일 각오가 돼 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리고 자신이 너그럽고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는 시그널을 남들에게 보내는 과정에서, 그 시그널에 상대방은 안 속았는데, 정작 자신이 속아서, 자신이 정말 너그럽고 열린 마음의 소유자라는 착각을 한다. 스스로가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열린 마음을 갖고 잘해주다니, 난 정말 괜찮은 사람인가 봐'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상대방이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못 알아준다는 인식이 되기 때문에도 역시 기분이 나쁜 거다.

조금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유로,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고 했기 때문에, 그 조건 하에서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칭찬을 한다면 그 칭찬은 정말 자신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는데, 상대방이 그 기대를 무너뜨렸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듣길 원하는 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스스로가 진실이라고 생각한 내용을 확인해주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2번을 잘 하는 사람이 예의 바르고 착한 사람, 1번을 하는 사람은 고지식하거나 눈치 없고, 때로는 거칠고 무례한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진실은 거의 항상 은폐된다. 왜냐하면 내가 정말 다른 사람의 직언을 듣고 싶어서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말하는 상황일지라 하더라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그말이 진심인지, 그저 난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고 있는 건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방 입장에서는 후자라고 가정하는 게 안전하고, 그냥 내가 듣기 좋은 말만 하게 되기 일쑤다.

이런 식으로 진실은 은폐되고, 그걸 캐내는 비용은 비싸지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정말 진실을 알고 싶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온 세상이 바가지를 씌우는 상황인 셈이다. "솔직히 말해도 된다"는 상대방조차 믿지 않는 말 대신에 무얼 떻게 하면, 내게는 정말로 상대방의 가공되지 않은 솔직한 의견이 중요하다는 걸 확신시킬 수 있을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건 정말 답이 없는 거 같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absolutezero.kr/trackback/387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너부리군 2011/03/22 0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의 글에 오랜만의 댓글. 포인트가 하나 빠진 거 같은데 자네는 왜 그런 고민을 하셈? "난 정말로 솔직한 의견을 듣는 게 중요하고 그대로/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가 아니면 "나도 실은 솔직한 얘기를 그대로/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긴 힘들지만 그건 둘째치고 어쨌든 솔직한 얘기를 들었으면 좋겠다"라는 건가? 물론 후자라고 해도 "난 좋은 얘기만 듣는 게 편해"라는 것보다야 낫긴 하지만 어쨌든 이 스탠스는 트릭에 관한 문제이고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야 안 속고 그냥 좋은 얘기나 해 주는 편이 무난하겠지.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전자라고 해도 그건 자네의 이성적 판단/주장/희망이지만 거기에 반하는 건 자네의 감성이고 사실 컨트롤하기 어려운 요소지. 물론 내가 받은 인상으로 자네는 이런 부분을 평균적인 사람들에 비해서는 더 잘 제어할 수 있는 편이라 생각되지만, 어쨌든 이건 막상 상황이 닥쳤을 때 "그래야 해"라는 이성적 당위와 "그래도 기분나빠"라는 감정적 반응 사이에 꽤나 간극이 존재하는, 지속적으로 의식하고 억누를 수 밖에 없는 문제거든. 대체 뭘 믿고(?) "난 할 수 있어"라는 얘기를 할 수 있나? 한다고 해도 정말 그렇게 될까? 이건 계산하면 답 나오는 종류의 문제가 아니지.

    물론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내 자신이 생각은 그렇게 하는 편이라도 실제로는 엄격하게 실천을 하지 못한다는 반성적 고찰에서 기인하는 면도 있겠고.. 혹은 제법 장기간에 걸쳐 자네 글에 태클을 걸고 반응을 확인했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일 지도 몰라?! :P

    이제 결론을 얘기하지. 내 생각엔, 이 이슈에 관해서 "말로" 보장하는 것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네. 일단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는 얘기를 남한테 믿게 만드는 것은 1) 쉽지 않고 2) 성공해도 트릭이라능. 이 건은 오로지 누적된 행동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을 것 같네. 점진적으로. 그게 쌓여야만 비로소 다른 사람들도 그걸 믿을 수가 있겠고, 그게 결국 "인격"이라 부르는 무언가 그런 종류가 아닐까 싶군.


    p.s. 다시 읽어보니 "자신을 속이는 문제"는 자네가 이미 언급했구만 ㅋㅋ;

    • BlogIcon 완전영도 2011/03/22 1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형님 이야기 인정, 특히 제일 마지막에 "말로" 보장하는 건 의미 없고, 소위 "인격"이라고 하는 걸 쌓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진실이 비싸다는 것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누적된 행동을 통해 믿음을 얻는 과정은 꽤나 힘들다는 맥락이고요.

      근데 포인트가 빠졌다시면서 왜 이런 고민을 하냐고 하시니, 뭐, 사실 이런 고민은 거의 늘상 합니다. 아래 링크의 글이랑도 연관이 좀 있는데...

      http://absolutezero.kr/entry/People-are-stupid

      사람들의 솔직한 이야기에 기분 나빠하는 만큼이나 남들이 자신에 대해 뒷다마를 까더라는 사실에도 기분 나빠하는 게 인간인지라, 자기 주변의 사람들 중 누가 자기의 어떤 점에 대해 뒷다마를 까더라는 진실도 거의 항상 은폐돼 있죠.

      그런데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진실이 은폐돼 있는 상황이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을 테니까, 결국 "나란 사람은 평균적인 사람들에게 둘러 쌓여 있는 평균적인 사람"이라고 가정하는 게 합리적일 텐데, 그렇게 되면 나란 인간도 적잖은 경우에 뒷다마를 까이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거든요.

      그런데 이걸 또 뒤집어 보면, 내 주변의 사람들 중 누가 나에 대해 뒷다마를 까는지가 은폐돼 있으니까, 내 주변 사람들 누구라도 나에 대해 뒷다마를 깔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편이 비교적 안전하겠죠. 근데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도 꽤나 피곤한 일인지라, ㅋㅋㅋㅋㅋㅋ, 진실의 비용이 조금 더 쌌으면 좋겠다, 뭐, 이런 거지요.

      물론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도 확인되지 않은 가설(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 대해 뒷다마를 깔 거다)에 비해 확인된 진실(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갖고 있는 솔직한 생각이 뭔지 정확히 아는 것)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더 격렬할 거기 때문에, 그냥 전자를 가정하고 조금 피곤하게 사는 게 더 속편할 것 같긴 합니다만, 그래도 가끔은 궁금하잖아요, ㅎㅎ.

    • 너부리군 2011/03/22 23: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니 이런.. 우째 답도 없는 합리적/객관적 커뮤니케이션 방법론 따위를 고민하고 계시나 싶었더니, 그게 아니라 모던 소사이어티의 일개 구성원 a.k.a. 가면무도회 참여자 1人으로서 뿌리칠 수 없는 실존적 불안을 대략 장황하게 토로하셨을 뿐이라능 말잉가! 파닥파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