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을 쓰다보니 길어져서, 결국 새글로... ㅡㅠㅡ

관련글 :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대체 어떤 세상?

이하는 너불형의 두번째 댓글 중 일부
− 그럼 이제 "물질만능주의"를 보세. 간단히 말해서 "돈이면 다 돼"라는 얘기지? 이런 사고방식이 나타나는 기본적인 이유는, 현 시스템에서 축적된 자본의 힘이 다른 모든 것의 힘을 압도하기 때문이라네. 대표적인 예로는 작년 말의 소위 "원포인트 사면" 사태를 들 수 있겠군; 이런 시스템을 다른 말로는 "금권에 의한 약육강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네. 아닌가? :)

= 인정.

− 나도 물론 체제가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있다는 식의 환타지는 안 가지고 있삼. 그렇지만 뭔가 인간다운 가치라는 건 종종 본성에 반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본성/본능적 충동을 제어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유지하는 것이 결국 온갖 제도와 체제의 목적이잖아?

= 인정.

− 그러니 누군가 신자유주의나 물질만능주의 따위를 비판할 때, 이건 당연히 인류보완계획 따위 얘기가 아니지; 또한 아예 자본주의를 때려치우자는 얘기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겠고. 그냥 좀 이게 너무 "야만적"이라능? :) 우리가 물리적 힘을 자제하고 약육강식 상황을 벗어난 것처럼, 같은 식으로 더 나은 제도들을 고안/수정하도록 노력하자고 한다면 -- 글쎄 뭐 이게 그렇게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ㅋ

= 이부분도 인정.
여기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뭔가 석연치 않은 건... 문제를 좀 지나치게 단순화한 감도 없잖아 있지만, 어찌됐건 인류 역사를 돌이켜보면 물리적 힘에서 중간에 종교, 혈통 등등 다양한 단계를 거쳐서 일단 현재는 경제적 힘이 짱 먹는 시대로 오긴 왔는데, 본질은 그대로고 결국엔 이놈에서 저놈으로 권력을 셔플링하고 있는 것뿐인가란 의문 때문인가? 뭐, 역사란 원래 그러면서 (아주 더디게) 발전하는 거겠지만서도...

암튼 간에 지금 우리가 어디 와 있는가와는 별개로, 또 현실 세계에서 어디까지 실천 가능한지는 지켜 볼 일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권력을 이놈한테 뺏어서 저놈한테 안겨주는 것보다는 권력을 분산시키는 게 이상적인 방향일 텐데... 민주주의의 현실이야 어쨌든, 민주주의의 정신이란 건 그래서 꽤나 고상한 맛이 있는 거고.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자본 권력을 통째로 들어다가 누구에게 이양하느냐가 아니라, 자본 권력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쪼개느냐인데, 이에 대한 일반적인 해법은 정부가 (각종 규제를 통해) 자본을 견제한다 정도? 그런데 실제로 "정부가 그래야 한다"는 것과 "정부가 실제로 그러하다"는 거 사이에 엄청난 괴리가 있어서 골치.

보통 독일이나 북유럽형 모델--프랑스도 이미지는 좋은데, 실제로는 정부가 자본 권력을 견제한답시고 막대한 부채를 떠안는 바람에 결국엔 그 부담을 세금이나 인플레이션 형태로 서민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어서 장기적으로 봤을 땐 불안한 상태--이 비교적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데, 그런 모델을 지향한답시고, 지금 시점에서 한국 사회에서 정부에 자본을 규제할 권한을 줘봐야 (결국은 자본을 뒤에 둔) 각종 이익집단의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농후. 그리고 최종 승자가 정부를 자기 주머니에 쏙. (뭐,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S사 주머니에 쏙 들어간 것 같긴 하다만...)

뭐, 이런 예야 찾으러 들면 얼마든지 있지만, 오늘 마침 The Economist의 쟁점 중 "중국 위안화 절상해야 하는가?"에 대한 흥미로운 의견이 하나 떴길래 이 녀석으로 선택. 일단 링크:
Debate: Should China allow the yuan to rise?
요점만 추리자면, 중국이 수출 중심 성장을 위해 위안화를 너무 싸게 너무 오래 붙잡아둔 바람에 중국내 인플레이션 징후가 슬슬 나타나는 와중에도 왜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뭉게고 있느냐? 이익집단(수출 업체들)의 로비(?) 때문이라능... 너불형의 첫 댓글에도 언급됐듯, 공산주의란 이름을 달고 나왔던 놈들은 다 병맛 날리고 망한 것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이유.

이런 류의 문제는, 사실 정의감에 불타는 개인이 고생고생 끝에 정권을 잡아 봐야 그 기간 동안은 잠깐 갖가지 제도 개혁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런 건 일회성 이벤트 밖에 안 되고, 언어로 표현되는 외형적 체제와는 별개로 정부(라고 읽지만 실제로는 행정에 관여하는 사람들)가 이익집단이 제공하는 금전적 이익을 다 뿌리치고도 소위 "옳은 일"을 하게 만드는 인센티브를 누가 어떻게 제공할 거냐인데, 민주주의 체제에서야 결국 정부가 이상한 짓하면 "선거로 심판"을 해줘야 한다는 사실로 귀결.

그런데 한국 사회는 정부의 이상한 짓에 당하고도 선거로 심판을 안 하는 건지, 내가 생각하는 정부의 이상한 짓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상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지, 어찌됐든 맨날 똑같은 녀석들만 주구장창 예뻐서 다시 한번, 미워도 다시 한번. 결국 사람들이 바뀌면 시스템도 바뀌는데, 또 한편으론 시스템이 바뀌면 사람들도 바뀌는 법인지라, 이 기이한 악순환의 고리 중 어디를 잘라야 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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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부리군 2010/06/16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자네 말대로 "인센티브를 누가 어떻게 제공할 거냐? ⇒ 선거로 심판" -- 이게 현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라는 데는 동의하네만, 오 사실 나는 그런 면에서도 환타지를 안 가지고 있긴 하다네. 이를테면 호모 폴리티쿠스는 호모 에코노미쿠스만큼이나 실세계에서 발견하기 힘들고, 대부분의 개체는 호모 귀차니스티쿠스들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편이지. 아니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 및 경제의 핵심 담론에 무관심하거나 무비판적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현 체제의 안정을 유지하는 근간일 지도? :)

    이런 관점에서 자네의 첫번째 의문을 다시 보세. "본질은 그대로고 ... 권력을 셔플링하고 있는 것뿐인가?" ㅇㅇ 사실 정확히 그렇다고 생각되네. 애당초 "물리적 힘의 약육강식 시스템"( or "This is Sparta!!" )이 왜 무너졌는지 생각해 보면, 사실은 이게 무슨 인간의 고상한 의식에 의해 달성된 결과라기보다는 순전히 시스템간 생존경쟁에서 밀려난 것 뿐이야? 근대국가의 성립 또한, 가장 큰 동력은 대항해시대와 자본주의적 변혁이 촉발시킨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자생존이라고 볼 수 있겠네. 자 그렇다면..

    약육강식 패러다임이 아직도 잘 들어맞는 곳이 있는데: 국제 외교 무대. 아시다시피 모든 외교적 정당성은 자국내 지지를 위해 획득될 뿐, 실제로 밖에서 동작하는 것은 글자 그대로 힘이 전부지. 이유는? 이 레벨에서 서로 빡세게 소모전을 해도 문제가 될 만한 상위 레벨이 없으니까; -ㅅ-

    한편으론, '레비아탄'들이 서로 물어뜯는 무대라도 있으니 최소한 정치적으로는 로컬 한정으로나마 대략 '정의'라는 컨셉이 통용되고 있네만.. 이를테면 이쪽에서 높으신 양반은 저쪽 가면 별 거 아니거나 최소한 그 파워가 대폭 감소되는 데 비해, 이쪽에서 부자인 양반은 세계 어디를 가도 부자라네; 그런 면에서 소위 세계화 시대에 정부는 현실적으로 더 이상 자본의 상대가 되질 못하지.

    최근 내 블로그를 아마도 읽었으리라 생각되지만.. 마을에서 유일한 게임을 호스팅하고 있는 이 거대한 수레는 이미 엄청난 모멘텀으로 굴러가고 있네. 이를 상쇄시킬 만한 에너지는 내가 보기에 지구상에는 없는 것 같군. 앞서 댓글에서 '스타트렉'을 언급했는데, 아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난 ET 대사관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 체제가 뭔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 편이긴 해; -ㅂ-ㅋ